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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만난 여자애 /선

  • 김영춘
  • 조회 7697
  • 기타
  • 2007.04.22 18:36
(현재 일본에서 류학하고 있는 저의 제자가 일본체험수기를 여러편 썼는데 그중 한편을 추천해드립니다. )



상해에서 만난 여자애    /  선


전번주 우리일행 ( 나한테서 중국어를 배우고있는 일본의 할머니 할아버지 8명하고 나 ) 은 상해에 3박4일의 려행을 다녀왔다.  재밌는 려행이 되였다하기보다는 정말 뜻깊은 려행이였다.  번화한 거리 - 상해에서 나는 이런 여자애를 만났다.

  공항에서 내려서 우리는 인차 마중나온 JTB의 사람들과 회합했다. 가이드가 한명인데 또 한명의 여자애가 있었다. 몇차례의 대화가 오고가면서 그 애도 내가 손님중에서 유일한 중국사람인걸 알아차렸다. 당날에 우리는 소주 苏州 에 도착했다. 소주에서의 하루밤은 정말 길고도 긴 밤이였다 ...

  모두들 소주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있는데 우리일행중 한명이 도무지 보이지않는다. 첨엔 너무 배고파서 미처 눈치채지못했지만 밥을 거의 먹고난후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한번 인수를 확인해보니 확실히 한분이 보이지않았다. 다른 사람하고 물어보니 몸이 편치않아 아래층에서 휴식하고있다는거였다. 시급히 아래층으로 달아내려갔다.

  아래층의 작은 방에 가이드가 식사를 하고있었고 그 곁의 밥상에는 같이 온 할아버지가 팔베개를 하고 엎드려있었다. 좀 심상치 않았다. 다가가서 어데가 아픈가고 , 어느정도 아프냐고 , 구급차를 부를가고 물었을때 할아버지는 아주 가냘픈 목소리로 「お願いします」라고 말하는것이였다.

  10분도 되지않아 구급차가 달려오고 ... 같이 려행온 사람중에서 내가 대표로, JTB측에선 그 여자애가 대표로 우리는 구급차에 앉아 병원으로 향했다...

  중국병원에 너무 오래동안 가본적이 없어서 난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이였다. 손에 든 인민페도 얼마없고 소주방언도 알아못듣겠고 수속도 밟을줄 모르고 ... 내가 할수있는것이란 할아버지의 통역이다. 그 나머지는 몽땅 그 여자애의 몫이였다.

  여자애는 정말 잘 뛰여다녔다. 나보다 약삭바르고 행동이 민감하고 수속도 척척 밟아오고 . 휴 ~ 정말 다행이다.  중국에선 병보기전에 돈부터 내야하는것같다. 아프다는 사람을 눞혀놓고 挂号 떼오라 이 돈을 물어라 ... 여자애가 척척 해치웠다.  할아버지의 병이 불명하여 많은 검사를 받아야했다. 내가 알고있는 병원의 항목을 거의 다 검사받은것같은 느낌이다. 도중에 어떤 진단서에 할아버지 이름을 잘못 써서 여자애가 병원의 한구석에서 다른한구석까지 뛰여갔다온적도 있다. 제일 인상에 남는 한마디 <我来吧>. 그 여자애는 언제 어데서든지 이 한마디를 반복했다.

  자정을 넘었건만 할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되는 한편이였다. 새벽두시가 거의 되여서 가이드 두명하고 우리일행중의 책임자 두명이 병원에 달려왔다. 할아버지한테 생명위험이 없는걸 확인하고 네명은 다음날의 관광때문에 호텔로 돌아갔다. 병원에 남은건 또 우리 세사람 ...

  나의 머리에 극통이 밀려오기시작했다. 워낙 신체가 좋지않은데다가 몸에 무리를 하여서 머리가 따개질듯이 아파왔다. 근데 할아버지한테는 간호가 필요했다. 일본어를 잘 못하는 그애보다는 내가 곁에서 할아버지의 뜻을 의사한테 똑바로 전하는것이 더 리상적이였다. 근데 이대로다간 내가 언제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이때 그 여자애가 선뜻이 《你去睡吧,这里由我来照顾》라고 권유했다. 그건 안돼 ... 너도 피로하잖아 ... 우리둘은 서로 양보하다가 끝내는 내가 먼저가서 자기로 했다. 나의 신체를 놓고말하면 이미 한계였다.

  병원측에서 슬쩍 눈을 감아줘서 나는 병실밖의 이동침대에 누워 잠시나마 눈을 붙이게 되였다. 나와 할아버지의 모든 물품이 병실안에 있었다. 최악의 경우 나와 할아버지는 단시간내에 일본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낯모를 땅에서 낯모를 사람한테 할아버지의 생명안전, 우리가 들고온 모든 재산을 맡겼다...하지만 나는 그 여자애를 믿었다. 중국이 아무리 험하다해도 ... 한번만은 ... 이 사람만은 꼭 믿고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가 ... 근심때문인지 저도모르게 눈을 떴다. 날씨는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아차, 잠깐 눈을 붙인다는것이 4시간이나 자버렸구나. 서둘러서 병실로 달아갔다. 할아버지는 의연히 점적수사를 맞고있었고 여자애는 걸상을 두대 맞붙이고 기대여앉아있었다. 내가 들어오는것을 보더니만 할아버지의 4시간동안의 정황을 일일이 회보하였다. 내가 여자애더러 좀 눈을 붙이고오라고하니까 그제서야 나가는것이였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

  7시반쯤 되자 주임의사가 출근해서 우리 병실로 와서 다시한번 병세를 물었다. 여자애는 거퍼 한시간도 못자고 또 수속땜에 달아다녔다. 오전에 여러차례의 검사를 마친후 오후 두시를 넘어서야 드디여 병원을 나오게 되였다. 여자애는 전날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못하고 자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우리를 작은 식당에 안내하여 밥을 먹고 또 우리를 호텔까지 데리고갔다. 가는 도중에 택시운전수가 길을 빙빙 도는것같아서 여자애가 의견을 제출해 말다툼까지 했었다. 물론 택시비는 여자애가 내는게 아니였다.

  할아버지가 드실 약도 여자애가 나보다 더 잘 기억했다. 호텔에 돌아간후에도 여자애는 자기의 방에 있지않고 할아버지방에서 간호했다. 오후 다섯시가 되자 손님들이 하루의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서 우리세사람하고 회합해서 같은 차로 상해로 향해 떠났다...

 

  여자애한테 물었다. 왜서 그렇게까지 잘해주냐고 ?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중국사람들은 워낙 로인을 존경한다고...

  여자애를 둘러싸고 또 여러일들이 발생했지만 다 적지는 못하겠다. 그녀한테서 느낀것이란 ,


1. 사업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2. 로인을 존경하는 마음

3. 티없이 깨끗한 마음씨


TO:
연연아 , 고마웠어 ...  이후에도 다시 만날날이 있을거야 ... 힘내 ...


(여기에서 같이 간 일본사람들이 무정하다는 뜻의 플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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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일본생활이 힘들다고 너무 한탄하지 말고 ... 사실 집 나온 사람들은 다 같은 심정입니다. 중국에 있으면서도 고향에 돌아가보지 못한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에도 위의 여자애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피타는 노력을 하고있다는걸 명심하면서 우리도 그들한테 뒤지지 않도록 박차를 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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