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가와 장인정신 / 김호웅 > 문학(시, 소설)

본문 바로가기

시인 김형효
김형효 작품집
김형효 작품집 < 시인 김형효 < HOME

문학비평가와 장인정신 / 김호웅

  • 김영춘
  • 조회 7522
  • 기타
  • 2007.05.02 16:50
문학비평가와 장인정신

        --- 중국조선족문학비평상 수상 소감



... ...  ...  ...

    밥벌이하기 위해 문학을 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문학을 신성시하는 게 나는 딱 질색이다. 문학은 문학자에게는 그 어떤 신성한 사명이라고 하기보다 무엇보다 먼저 직업이다. 가급적으로 많은 책을 읽고 아는 게 많고 글재간이 있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벼농사를 하는 농민이나 제품을 생산해 파는 노동자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자기의 직업에 능수능란한 재간을 가져야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밥 먹고 술을 마시고 필요한 수면을 취하는 나머지 시간은 책을 보고 컴퓨터에 마주 않아 부지런히 키보드를 친다. 명색이 남의 자식을 가르치는 대학교의 교수라 텅 빈 소리만 하고 노루 때린 몽둥이 삼년 우려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술값을 덜어서 책을 사고 가끔 한국의 어른들을 만나면 비위를 내서 공짜로 책을 얻어 본다. 소설이론 관련 책자들은 5 ,6년 전 여기 앉아 계신 장덕준 교수님께 청을 들어 한꺼번에 10여권씩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랬지만 오늘 이때까지 따뜻하게 술 한 잔 대접하지 못하고 지내는 그런 깍쟁이다. 어찌할 건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수밖에 없다.
 
이 좌중(座中)에 선배, 스승 벌 되는 이들도 많지만, 이젠 이 사람도 어느새 지천명의 고개를 넘고 보니 돋보기를 걸지 않고는 도무지 책을 볼 수가 없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서는 더욱 신선하고 기름진 책들만 골라본다. 싸구려 장국집이 아니라 근사한 레스토랑만 찾아다니는 격이다. 그리고 편식은 절대 금물이다. 이젠 문학작품보다도 역사, 철학, 인류학 관련 책자들을 골고루 보고자 한다. 구석진 연길에 살지라도 세계의 최고의 석학들의 생각을 다르고 그들과 같은 문제를 사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글로벌시대, 이 지구촌에 사는 이상 세계사적 패러다임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주로 문학을 가르치는데, 학생들에게 술잔은 잘 베풀지만 점수 주기에는 좀 인색한 편이다. 가끔 여러 문학상 심사에도 나가지만 안면을 보아주고 서열을 따지고 지어는 큰 고기는 제 초롱에 넣은 그런 염치없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칼 차지 않은 무사를 무사라 할 수 없듯이 공정성을 잃은 비평가는 비평가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다. 오직 재봉사가 자로 재고 가위로 베듯이 문학성이라는 잣대와 공정성이라는 가위를 가지고 임할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오랜 문우들도 낙방거자로 만들고 예쁜 여성문인들도 앵돌아지게 만든다. 가슴이 아플 때도 있지만 나는 원래 잊음이 헤픈 사람이라 그 다음에도 그 식이 장식으로 옷깃을 여미고 제법 철의 법관으로 군림한다.
 
재깔거리는 참새도 오장육부가 있고 찰깍찰깍 밤낮없이 돌아가는 스위스 손목시계도 정묘한 구조와 장치를 가지고 있듯이 한 수의 시, 한 편의 단편소설도 하나의 예술적 생명체로서 구조가 있고 장치가 있고 기법이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언어적 묘미를 따지고 그 구조와 장치를 해부해 설명하고 그 기법을 가르치는 게 내 직업이요, 내 살아가는 자본이다.
 
하지만 문학의 요체를 터득하고 그 구조와 장치, 그 기법과 묘미를 갈파한다는 게 어디 밥 먹듯이 쉬운 노릇인가? 학해무애고작주(學海無涯苦作舟)라고 그야말로 문학의 바다 역시 끝이 없어 애오라지 고통을 감내하고 끈질기게 노를 저어야 구원의 대안에 닿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한국 한양대학교의 정민 교수가 요즘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옛사람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는데 이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를 풀이해서 정민 교수는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세상 사람들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 없다”고 하였다.
 
나도 동감이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그저 하고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치열한 장인정신만이 우리 문학인 개개인을 살리고 우리문학의 빼어난 탑을 쌓아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으름 없는 분투, 정진을 약속드리면서 이로써 수상소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2007년 4월 21일, 장춘에서
  • Information
  • 사이트명 : 시사랑
  • 사이트 주소 : www.sisarang.com
  • 관리자이메일 : tiger3029@hanmail.net
  • 운영자명 : 김형효
  • Quick menu
  • Statistics
  • 오늘 : 117
  • 어제 : 741
  • 최대 : 18,497
  • 전체 : 1,23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