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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주례(주례사 전문)

  • 김형효
  • 조회 3517
  • 2005.09.17 11:03
결혼 축하 편지
- 신부 서00 님과 신랑 김00 님께(2002년 8월 20일)

하객 여러분! 신랑, 신부님을 위해 힘찬 박수를 부탁합니다.

신랑, 신부님! 지금 이 순간부터 저 박수의 의미를 새기며 살아가세요. 그렇게 사는 길은 필시 시의 말처럼, 노래의 말처럼, 서로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도 이웃도 사랑하되, 가장 먼저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면 가족도 이웃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신랑과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하신 귀빈 여러분!

오늘 결혼식에 참석하는 데 혹시라도 안면 때문에 몇 푼의 축하금을 건네고 식사나 하고 가시기 위해 참석하신 분이 계시다면, 지금 바로 식당에 가셔서 식사 한 끼 하시고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여러분이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행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원망을 하게 되지요.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요. 피치 못하게 바쁜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는 새로운 생의 출발점에 선 신랑, 신부 앞에 행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10분만이라도 신랑, 신부의 미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단단한 화살처럼 한 몸을 이루고 살아갈 이들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우주를 탐나게 할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를 찾아가는 신랑, 신부의 모습에서 오늘 또 하나의 우주를 발견하십시오. 또 하나의 우주탄생에 있어서 여러분이 산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두 예술가의 결혼식을 참관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빛이 더해지는 것이 예술가의 길인 것을 익히 아실 것입니다.

오늘 젊은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평소 존경하던 신랑, 신부님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조각가인 신랑 김예수 님과 신부 서정희 님을 만난 것은 산촌의 아늑한 산기슭에 위치한 작업실입니다. 산간과 농토가 어우러진 분위기가 익숙한 향수 같은 것을 불러와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또 다른 한 생명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김길눈, 김예수, 김우듬지 참 좋은 이름들이었습니다. 의미가 살아서 팔팔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손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길눈을 뜨고 살아갈 시인이나, 나무의 꼭지점을 향하는 정점의 삶을 살고자하는 화가이거나, 제게는 참으로 부러운 이름들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서정희 님은 흙을 빚으며 삶의 참 의미를 터득하고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어우러짐을 볼 수 있어서 지금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님! 공동의 목표를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동의 목표를 잃는 순간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부부로 하나가 되시는 두 분을 위대한 부부의 탄생이라 명명하고자 합니다. 도자기에 혼을 사르는 사람과 조각과 그림 등 그 경계를 넘나듦이 무한하기만한 사람이 함께 만났으니 얼마나 위대한 만남입니까?

오늘 신랑, 신부가 살아갈 세상은 그야말로 험준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험준함도 내 안에 평화가 있다면 무력하다는 믿음을 꼭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묵묵한 길을 가주십시오. 그대들의 예술이 영화롭기를 바란다면 무지한 범인을 속일 줄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봉오리에도 올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작은 봉오리를 쳐다보고도 한탄하고 그 높이만 측량하려 애를 태우지요. 하지만 한 봉오리, 두 봉오리 올라서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삶과 미래의 삶을 측량하지요. 신랑과 신부가 이루어 가고 있는 예술적 역량을 바라다보며 그저 감탄만 하며 작업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던 저는 두 분의 무한한 역량에 큰 기대의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저는 두 분을 존경합니다. 두 분께서 저를 바라보는 것에 결코 뒤지질 않을 만큼 두 분을 존경합니다. 손과 손으로 빚어지는 작품들이 결코 손의 움직임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랑, 신부님! 님들이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하이에나처럼 뒤엉킨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질서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 마주치고 마주보는 데 익숙하지요. 그런 가운데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신랑, 신부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향하여 함께 길을 가는 길동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길을 가다가 지치고 힘들 때, 그 길 위에서 힘이 되고 격려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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