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길의 리성휘, 마송학 시인
오늘부터 약 5회에 걸쳐 연길 출신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내 대개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그러하듯 연변자치주의 심장부 연길시 출신의 시인들의 작품 또한 소박하고 진솔한 작품이 마치 차분한 진술 같은 분위기로 읽혀진다.
필자는 그러한 작품들이 면면히 맑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투명하게 읽힌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시단의 시적 난해함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시적 성과, 즉 문학적 성과에 집착하여 보기보다는 우리가 민족적 입장에서 바라보길 기대한다. 연변자치주 시인들에 삶의 단면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화 같은 시풍보다는 오히려 바람직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설인 리성휘 시인은 중국내 조선족 시단에 큰 어른으로 연재글에 있어서 맨 처음 시집표지와 함께 짧게 소개한 바 있다. 지난번 연재글을 참조한다면 그 분이 연변자치주 조선족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은 그분이 해방 전에 쓴 <소식>이란 시와 해방 후, 오늘날 같으면 신문지상의 축시로 쓰였을 법한 <환호성>을 감상하면서 해방의 감격을 어떻게 노래했는가 그날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소식
오늘도 끝없이
울부짖는 소리 들었나니
언제나
가시덤불 속에서
아득한 지평선너머의
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순례자의 발 끝에
피방울이 맺힌
서글픈 소식
1942년 작
환호성
들린다 만세소리!
터졌다 환호성이!
일본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 무릎을 꿇었음을 선포하자
<왜 놈은 망하고
우리는 해방됐다!>
얼싸안고 얼싸안고
갈린 목소리로 부르는 만세소리
얼마나 부르고 싶었더냐, 바라던 것이냐
빼앗겼던 조국을 다시 찾은이 만세소리가
항일투쟁때
세 아들을 왜놈에게 빼앗겼던 할아버지
채수염을 부르르 떠시며
일장기 짓밟고 서서 부르는 만세소리
일밭에 나가셨던 아버지
정갈한 랭수에 조밥을 말아
무배추김장에 시장기를 더시더니
무릎을 탁 치시며 일어나 부르는 만세소리
억지로 쓰게하던 뾰족모자 전투모
흐르는 강물에 와락 벗어던지매
부여안고 뚝뚝 뛰며 부르는
마을 젊은이들의 우렁찬 만세소리
만세소리 울려퍼져 산울림 되고
환호성은 메아리로 하늘땅을 뒤흔들 듯
실로 땅속에 묻힌 순국의 렬사들도
이 시각 꿈틀 다시 돌아누웠으리라!
아,
아프고 쓰리던 한 많던 매듭이
영영 풀리던 날
잊지 못할 너 8월 15일이여!
1945년 8월 작
오늘날 감격을 잊어버리고 망각의 세월을 지내는 우리들에게 민족이란 존재의 인식을 심화시켜주고 있다. 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 고난과 좌절로 점철된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지난 세월 역사적 과정에서 삶의 피폐함을 극복해온 역사를 올바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래 두 편의 시를 쓴 마송학 시인은 1934년 연길에서 출생하였고 1955년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오랜 동안 교직 생활을 하였다. 시인은 시집 <가랑잎>, <일편단심> 등을 발표하였으며 연변작가협회와 길림작가협회 회원이며 중국내 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년의 시인이다.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
자 황홀한 저녁노을 보게나
바로 저 산너머 마흔다섯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 있다네
나를 웃게도 하는
내 마음의 한쪼박- 그네들
벗이여, 오늘이 며칠이던가?
나는 벌써 애들이 그립네
1957년 1월 작
나의 선언
나는 나대로 당당한 인간이거니
남의 흥에 춤출건 뭔가
인간이 과연 인간인 것은
량심과 뜻이 있기때문이거니
차라리 일개 돌로 굳어질지언정
약삭빠른 앵무새로 되진 않으리
1993년 4월 작
위에서 보는 바처럼 마송학 시인의 시들은 대개 단촐하다. 긴 여운을 주는 이 단촐한 시편들을 통해 강직하고 우직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에서와 <나의 선언>을 비교해서 보자면 완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는 잔정이 깊이 묻어나는 그런 시적 심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의 선언>에서는 "남의 흥에 춤출 수 없다"는 강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 주고 있다.
오늘부터 약 5회에 걸쳐 연길 출신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내 대개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그러하듯 연변자치주의 심장부 연길시 출신의 시인들의 작품 또한 소박하고 진솔한 작품이 마치 차분한 진술 같은 분위기로 읽혀진다.
필자는 그러한 작품들이 면면히 맑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투명하게 읽힌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시단의 시적 난해함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시적 성과, 즉 문학적 성과에 집착하여 보기보다는 우리가 민족적 입장에서 바라보길 기대한다. 연변자치주 시인들에 삶의 단면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화 같은 시풍보다는 오히려 바람직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설인 리성휘 시인은 중국내 조선족 시단에 큰 어른으로 연재글에 있어서 맨 처음 시집표지와 함께 짧게 소개한 바 있다. 지난번 연재글을 참조한다면 그 분이 연변자치주 조선족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은 그분이 해방 전에 쓴 <소식>이란 시와 해방 후, 오늘날 같으면 신문지상의 축시로 쓰였을 법한 <환호성>을 감상하면서 해방의 감격을 어떻게 노래했는가 그날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소식
오늘도 끝없이
울부짖는 소리 들었나니
언제나
가시덤불 속에서
아득한 지평선너머의
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순례자의 발 끝에
피방울이 맺힌
서글픈 소식
1942년 작
환호성
들린다 만세소리!
터졌다 환호성이!
일본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 무릎을 꿇었음을 선포하자
<왜 놈은 망하고
우리는 해방됐다!>
얼싸안고 얼싸안고
갈린 목소리로 부르는 만세소리
얼마나 부르고 싶었더냐, 바라던 것이냐
빼앗겼던 조국을 다시 찾은이 만세소리가
항일투쟁때
세 아들을 왜놈에게 빼앗겼던 할아버지
채수염을 부르르 떠시며
일장기 짓밟고 서서 부르는 만세소리
일밭에 나가셨던 아버지
정갈한 랭수에 조밥을 말아
무배추김장에 시장기를 더시더니
무릎을 탁 치시며 일어나 부르는 만세소리
억지로 쓰게하던 뾰족모자 전투모
흐르는 강물에 와락 벗어던지매
부여안고 뚝뚝 뛰며 부르는
마을 젊은이들의 우렁찬 만세소리
만세소리 울려퍼져 산울림 되고
환호성은 메아리로 하늘땅을 뒤흔들 듯
실로 땅속에 묻힌 순국의 렬사들도
이 시각 꿈틀 다시 돌아누웠으리라!
아,
아프고 쓰리던 한 많던 매듭이
영영 풀리던 날
잊지 못할 너 8월 15일이여!
1945년 8월 작
오늘날 감격을 잊어버리고 망각의 세월을 지내는 우리들에게 민족이란 존재의 인식을 심화시켜주고 있다. 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 고난과 좌절로 점철된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지난 세월 역사적 과정에서 삶의 피폐함을 극복해온 역사를 올바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래 두 편의 시를 쓴 마송학 시인은 1934년 연길에서 출생하였고 1955년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오랜 동안 교직 생활을 하였다. 시인은 시집 <가랑잎>, <일편단심> 등을 발표하였으며 연변작가협회와 길림작가협회 회원이며 중국내 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년의 시인이다.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
자 황홀한 저녁노을 보게나
바로 저 산너머 마흔다섯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 있다네
나를 웃게도 하는
내 마음의 한쪼박- 그네들
벗이여, 오늘이 며칠이던가?
나는 벌써 애들이 그립네
1957년 1월 작
나의 선언
나는 나대로 당당한 인간이거니
남의 흥에 춤출건 뭔가
인간이 과연 인간인 것은
량심과 뜻이 있기때문이거니
차라리 일개 돌로 굳어질지언정
약삭빠른 앵무새로 되진 않으리
1993년 4월 작
위에서 보는 바처럼 마송학 시인의 시들은 대개 단촐하다. 긴 여운을 주는 이 단촐한 시편들을 통해 강직하고 우직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벗이여, 잠간 머물러주게>에서와 <나의 선언>을 비교해서 보자면 완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는 잔정이 깊이 묻어나는 그런 시적 심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의 선언>에서는 "남의 흥에 춤출 수 없다"는 강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