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변대학은 조선족의 동화 더디게 할 것"
시대의 변화가 우리에게 편리한 문명은 주었을지언정, 우리의 서정적 공간은 축소시켰다. 그 결과 왜소한 인간형을 만들고 있다. 정서적으로 폭 좁은 삶을 강요하는 현실은 폭넓은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떠나볼 공간은 많다. 하지만 우리의 품성을 왜소하게 하는 성장기의 현실은 협애한 인간을 만드는 조건이다. 우리의 미래는 왜소한 정서를 간직한 인간들이 살 것이다. 더구나 경제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되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앞서 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연변자치주가 문명적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인구분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니 뜻 있는 자치주 조선족 어른들의 걱정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고 김학철 선생과 함께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고 정판용(전 연변대총장, KBS 해외동포학술상 수상)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깊이 새겨볼 일이다.
석화 시인에 따르면 선생께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중국 사회에 동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연변대학은 그나마 우리 조선족의 동화를 더디게 할 것이다. 이를 명심할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한다.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행한 치사 중에서 연변대학의 존립근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중국내 조선족이 처한 현실을 예견한 말씀이다. 이러한 현상은 연길시가 도시화하면서 추억할 풍경마저 사라짐으로써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 늙은 시인은 그런 상황을 예견하였을까? 오늘은 짧은 시 두 편을 감상하는 것으로 정리하기로 한다.
밀낟가리
대지의 기쁨 솟아 낟가리되였나?
로동의 땀이 모아 낟가리되였나?
번개같은 낫질도 굼뜨다는 듯
연해연송 솟아나는 밀낟가리 밀낟가리
장알진 손마다 누런 밀 휘여잡고
낫날을 번뜩여 잽싸게 묶으면
아바이들 일손에선 밀단이 날아솟고
기록원의 수첩으론 수자가 날아드네
강기슭 밀밭에는 추경하는 뜨락또르
산언덕 밀밭에는 이삭줏는 학생들
천만인심 밀을 안아 수레채가 휘여들제
소방울 쩔렁쩔렁 황금산 우줄우줄...
천단만단 가린 밀은 행복의 높이런가
천층만층 실은 밀은 산촌의 자랑인가
떨기떨기 피여나는 웃음꽃속에
금빛을 자랑하는 밀낟가리 밀낟가리!
1961년 8월 작
농사일로 소일하던 농촌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시(詩)다. 특히 개척시대를 살았을 이주민들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밀낟가리의 높이가 행복의 높이가 아닐까하는 대목에서는 극빈한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밀 낟가리를 요즘 농촌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이 되었다. 그것은 김경석 시인의 시적 소재인 밀낟가리 같은 것을, 시의 소재로 쓴다는 것은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추억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래 시에서 김경석 시인이 노래한 <들장미와 총각>을 꿈꿀 수조차 없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꽃 중에도 들장미를 즐기는 총각/온 들판 돌았어도 만나지 못했다지?" 안타까운 일이다. <들장미와 총각>이란 시를 보면 금새 웃음이 돋아날 것 같은 농촌 풍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향긋한 꿈들이 다 허망한 꿈에 머물고 말 것이라니, 참으로 암담하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명의 검은 골짝이 지배하는 푸른 초원이다. 푸른 초원이 향기를 내뿜던 그런 고향을 제 아무리 되찾으려고 해도 한번 문명의 파편을 뒤집어쓰고 그 칠흑의 검은 맛에 길들여지면 그걸로 끝장인 것이다. 이제 허망한 세월을 야속하다 말고 생떼의 몸부림을 치면서 푸른 초원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한번 머금은 문명의 검은 그림자는 스스로 거둬 드리지 못하며 다시 회복할 수도 없는 것이니, 연변의 시인 중에서도 긴 호흡의 시를 쓰는 시인, 할 말 많은 시인이란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긴 호흡에 시들도 소개하도록 하고 연길 출신 시인들의 소개를 마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하자.
들장미와 젊은 총각
1
푸른 잎에 받들린 빨간 들장미
늦봄이면 들판에 곱게 피는데
꽃중에도 들장미를 즐기는 총각
온 들판 돌았어도 만나지 못했다지?
한숨만 내쉬는 젊은 총각아
네가 떠난 그때가 언제였느뇨?
꽃마다 피는 시절 따로 있는데
이른봄에 떠났으니 네 어이 만날고?
2
싱그러이 향기뿜는 빨간 들장미
늦봄의 들판에서 방긋 웃는데
꽃필 때를 애타게 기다린 총각
들장미를 꺾으려다 뒤로 물러섰다지?
손가락 찔리운 젊은 총각아
가시없는 들장미 어데 있느뇨?
꽃에 돋은 가시를 겁내고서야
네 어찌 장미꽃을 꺾을 수 있으랴!
1979년 7월 작
김경석
1937년 연길시 출생
1960년 연변대학 어문학부 졸업
연변일보사 기자, 편집사무실 주임 역임
주요작품집으로 <파란손수건>, 동요동시집<빨간리봉> 등 저서가 있음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분회 이사, 연변분회 시문학위원회 부주임
시대의 변화가 우리에게 편리한 문명은 주었을지언정, 우리의 서정적 공간은 축소시켰다. 그 결과 왜소한 인간형을 만들고 있다. 정서적으로 폭 좁은 삶을 강요하는 현실은 폭넓은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떠나볼 공간은 많다. 하지만 우리의 품성을 왜소하게 하는 성장기의 현실은 협애한 인간을 만드는 조건이다. 우리의 미래는 왜소한 정서를 간직한 인간들이 살 것이다. 더구나 경제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되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앞서 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연변자치주가 문명적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인구분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니 뜻 있는 자치주 조선족 어른들의 걱정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고 김학철 선생과 함께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고 정판용(전 연변대총장, KBS 해외동포학술상 수상)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깊이 새겨볼 일이다.
석화 시인에 따르면 선생께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중국 사회에 동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연변대학은 그나마 우리 조선족의 동화를 더디게 할 것이다. 이를 명심할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한다.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행한 치사 중에서 연변대학의 존립근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중국내 조선족이 처한 현실을 예견한 말씀이다. 이러한 현상은 연길시가 도시화하면서 추억할 풍경마저 사라짐으로써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 늙은 시인은 그런 상황을 예견하였을까? 오늘은 짧은 시 두 편을 감상하는 것으로 정리하기로 한다.
밀낟가리
대지의 기쁨 솟아 낟가리되였나?
로동의 땀이 모아 낟가리되였나?
번개같은 낫질도 굼뜨다는 듯
연해연송 솟아나는 밀낟가리 밀낟가리
장알진 손마다 누런 밀 휘여잡고
낫날을 번뜩여 잽싸게 묶으면
아바이들 일손에선 밀단이 날아솟고
기록원의 수첩으론 수자가 날아드네
강기슭 밀밭에는 추경하는 뜨락또르
산언덕 밀밭에는 이삭줏는 학생들
천만인심 밀을 안아 수레채가 휘여들제
소방울 쩔렁쩔렁 황금산 우줄우줄...
천단만단 가린 밀은 행복의 높이런가
천층만층 실은 밀은 산촌의 자랑인가
떨기떨기 피여나는 웃음꽃속에
금빛을 자랑하는 밀낟가리 밀낟가리!
1961년 8월 작
농사일로 소일하던 농촌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시(詩)다. 특히 개척시대를 살았을 이주민들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밀낟가리의 높이가 행복의 높이가 아닐까하는 대목에서는 극빈한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밀 낟가리를 요즘 농촌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이 되었다. 그것은 김경석 시인의 시적 소재인 밀낟가리 같은 것을, 시의 소재로 쓴다는 것은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추억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래 시에서 김경석 시인이 노래한 <들장미와 총각>을 꿈꿀 수조차 없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꽃 중에도 들장미를 즐기는 총각/온 들판 돌았어도 만나지 못했다지?" 안타까운 일이다. <들장미와 총각>이란 시를 보면 금새 웃음이 돋아날 것 같은 농촌 풍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향긋한 꿈들이 다 허망한 꿈에 머물고 말 것이라니, 참으로 암담하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명의 검은 골짝이 지배하는 푸른 초원이다. 푸른 초원이 향기를 내뿜던 그런 고향을 제 아무리 되찾으려고 해도 한번 문명의 파편을 뒤집어쓰고 그 칠흑의 검은 맛에 길들여지면 그걸로 끝장인 것이다. 이제 허망한 세월을 야속하다 말고 생떼의 몸부림을 치면서 푸른 초원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한번 머금은 문명의 검은 그림자는 스스로 거둬 드리지 못하며 다시 회복할 수도 없는 것이니, 연변의 시인 중에서도 긴 호흡의 시를 쓰는 시인, 할 말 많은 시인이란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긴 호흡에 시들도 소개하도록 하고 연길 출신 시인들의 소개를 마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하자.
들장미와 젊은 총각
1
푸른 잎에 받들린 빨간 들장미
늦봄이면 들판에 곱게 피는데
꽃중에도 들장미를 즐기는 총각
온 들판 돌았어도 만나지 못했다지?
한숨만 내쉬는 젊은 총각아
네가 떠난 그때가 언제였느뇨?
꽃마다 피는 시절 따로 있는데
이른봄에 떠났으니 네 어이 만날고?
2
싱그러이 향기뿜는 빨간 들장미
늦봄의 들판에서 방긋 웃는데
꽃필 때를 애타게 기다린 총각
들장미를 꺾으려다 뒤로 물러섰다지?
손가락 찔리운 젊은 총각아
가시없는 들장미 어데 있느뇨?
꽃에 돋은 가시를 겁내고서야
네 어찌 장미꽃을 꺾을 수 있으랴!
1979년 7월 작
김경석
1937년 연길시 출생
1960년 연변대학 어문학부 졸업
연변일보사 기자, 편집사무실 주임 역임
주요작품집으로 <파란손수건>, 동요동시집<빨간리봉> 등 저서가 있음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분회 이사, 연변분회 시문학위원회 부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