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 여성시인 김영춘 시인
김영춘 시인은 도문(두만)에 있는 석현 종이 공장 사보편집실에서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다.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며, 연변 조선족 여성 시인회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두만강 시회(동인회) 회원으로 창작적 노력에 더 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접한 연변의 여성들에게서 느끼는 감성은 어린 시절에 느끼던 고향 땅의 누이들에 모습 그대로다. 짙은 모성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잔정에 넘치는 모습 때문이다. 여전히 현대 여성을 자처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그들을 보면 평화로운 대지를 느끼게 된다. 그런 정서적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은 제한된 활동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상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대개의 연변 여성들이 새로운 물결과도 같은 물질의 풍요를 쫓아 가족과 등을 돌리거나 이질적인 것들에 현혹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 김영춘에게도 현대적인 것들이 그에 삶의 결을 거칠게 노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를 반증하고 있는 시가 곧 <현대승냥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현대적인 것들, 바로 그것이 진정 시인 김영춘을 슬프게 한다는 것이다.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 건/너의 눈이였다"고 시의 첫 구절부터 비장할 만큼 단호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그 옛날의 네 눈빛......"을 떠올리며 당당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오던 과거를 존귀하게 인정하며 애달픈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문명에 하수구에 머리를 처박히고 살면서 자신의 존귀함 자체마저 부정하는 처량 맞은 신세로 전락한 인간군상들을 안타깝게 관조하는 시인의 눈빛은 고향 땅의 순진한 누이의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거친 사막의 밤을 지배하는 사나운 승냥이의 눈빛이다. 바로 내 눈앞을 섬뜩 스치고 지나는 듯하다.
현대승냥이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땅사이에 턱 버티고 서서
사납게 울부짖던 용맹한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볼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비린 바람이 불 때마다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 입은 승냥이들
이 겨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실 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순한 너의 눈매였다
시인은 이렇게 슬픈 현대를 부르짖고 살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의 끈을 놓지 않고 <겨울강>의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에서 필자 또한 얼어붙는다.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의 경험을 우리 모두는 한번 쯤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상태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겪는 고난과 경험상태에 대해서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러니 결코 이러한 시적표현이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이라 믿는다.
"하고 싶은 말, 진심과 함께/꽁꽁 얼음 옷에 숨겨놓고" 견뎌내야 하는 차가운 냉가슴 같은 세월, 우리는 이 여린 시인의 가슴에 다스운 체온의 온기를 모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겨울강
하고싶은 말 진심과 함께
꽁꽁 얼음옷에 숨겨놓고
자못 태연한 얼굴로
새롭게 하늘을 마주보고 싶다
거울같은 마음의 흐름에
더는 구름의 웃음꽃 담을수 없고
더는 물새의 노래소리 띄울수 없어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
조용히 마주오는 눈송이 고마웁고
떠들썩 달려오는 아이들 귀엽지만
마음의 감동을 잠재운채
산옆에 말없이 누워있다
그 절망과 희망 사이의 안개 속을 가는 여자라니, 그것이 바로 시인 김영춘의 모습은 아닐까? 황량한 거리, 도문(두만강변)강변의 쓸쓸함을 따라 걷는 시인 김영춘의 고독의 사슬은, 바로 안개 같은 현실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표변하듯 변화하는 세월의 무게를 지고 절로 안타깝게 절망하며 사는 시인의 참 진실이 아니겠는가? 절름발이의 현실을 살아야 하는 그가 시인적 삶을 거부하지 않는 한, 아무도 절망하지 않는 현실, 아무도 부정할 줄 모르는 현실세계에 희망의 씨앗은 싹트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 그는 안개 속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허허벌판의 생명수 같은 존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모성의 대지처럼.....
안개 속의 녀자
영문없이 내가 미워졌습니다
내가 미워진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
그래서 소리쳐 울고싶었는데
눈물은 나오질 않습니다
안개낀 갈림길에서
나는 이제 어데로 가야 하는지
슬프게도 나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떠있는 하늘을
목아프게 자꾸만 쳐다보아도
해는 나를 못본체 돌아서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외로와보입니다
하냥 내 가까이에 숨쉬지만
그냥 알듯말듯한 산과
꽃도 나무도 모두 외로와보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기다립니다
바람을 기다리는 안개 속의 여자, 그는 오늘 도문의 새벽 종소리, 아니 <도문역의 새벽종소리>에 아침 잠을 깨우는 일상에서 떠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역사(驛舍)에 모습이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떠날 사람은 어서 떠나라고/눈물어린 노래로 손젓는 모습인가" 하고 쓰린 속내를 내보이며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만에 만난 시우를 떠나 보내는 시인은 헤어짐이 안타깝지만, 이는 시우와는 만남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살면서 끝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이 모습은 우리의 눈에 선하게 비쳐지는 장면이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오라는 것인지, 어서 떠나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모성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장면 말이다.
도문역의 새벽종소리
떠날 사람은 어서 떠나라고
눈물어린 노래로 손젓는 모습인가
지페 한장 만지작이며
어데로 갈가 주춤거리는데
때앵...때앵...때앵...
은은한 마음의 떨림으로 다가오는
다섯점의 브드러운 음악의 소리
안개 낀 두만강가에 서서
흘러간 옛노래에 눈물 한줌 뿌리고
추운 밤 함께 숯불 지피던
고마운 시우들에게 악수 석줌 드리고
나는 이젠 정말 떠나야 하는것
연분홍 차표 한장 끊어들고
마음을 부르는 유혹의 세계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올라야 하는것
하늘다리 건너 파란 렬차 타고
꿈이 파도치는 낯선 풍경으로
작은 날개 파닥여보는 갈망에
이제 또 어느 역의 종소리 들려올는지
잠든 도문을 깨우고
잠든 내 마음도 깨워준
도문역의 새벽종소리...
역사에 안타까움을 보여준 시인은 이제 젖먹이는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한없이 품어주는 사랑을 보여준다. "젖먹이는 순간마다/나는 물이 된다"는 시인의 깊은 사랑은 연이어서 "주고 주어도/더 주고 싶은/샘터가 된다"고 토로한다. 순정한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듯 끝없이 깊어지는 것인가 보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나는 물이 된다
주고주어도
더 주고만싶은
샘터가 된다
하얀 사랑샘에 매달려
눈 한번 안깜박이고
쉼없이 젖 빠는 아가는
풀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여
작은 나와 큰 세상 이어준다
엄마 되는 길이란
내가 여위여지고
아기가 커가는
아프면서 예쁜 려행인가봐
그런 어머니 가슴을 간직한 시인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서울로 떠나 있을 조선족 오빠와 평양 간 언니를 노래하며 민족의 하나됨을 목놓아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그 노래는 너무나 태연하다. 아니 그의 변죽은 "훈민정음 모르는 조선족 남편"을 질책하는 것으로 빗겨나 있다. 사랑이 깊어지면 세상만사를 두루 품에 안는 깊은 사랑을 하게 되는 건가 생각된다.
한 여성 시인의 노래가 기승전결을 이루며 현대와 민족, 그리고 개인의 일상의 서사까지 두루 어우러지고 잇다는 점에서 난 이 여성 시인의 흐름을 따라 우리 민족이 하나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슬픔일랑 거두고, 저 제국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하면서...
편지
편지를 보며
혼자서 운다
훈민정음 모르는 조선족남편은
흘겨보며 담배만 피우고
나는 혼자서 운다
한강의 기적을
금강산 신화를
은행잎 단풍잎에 적어보낸
서울 간 오빠와
평양 간 언니의
슬프고 아름다운 얘기에 취해
행복해서 운다
헤여진 마음 이어주는
편지가 있어
내 눈물은 아직도
샘물처럼 맑은가
한때 필명은 김충. 1968년 장백현 12도구향에서 출생. 연변제일사범 졸업. 연변민족문학원 수료. 시 <현대승냥이>등 100여 수 발표. 수필 <아름다운 악수> 등 15편 발표. <96-97 전국조선족가요응모> 1등상, <제1회 조선족녀성백일장> 은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두만강시회 회원. 연변조선족 녀류시인회 회원. 현재 중국 길림석현제지업유한책임회사 <석지소식문화> 편집부에서 근무.
김영춘 시인은 도문(두만)에 있는 석현 종이 공장 사보편집실에서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다.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며, 연변 조선족 여성 시인회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두만강 시회(동인회) 회원으로 창작적 노력에 더 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접한 연변의 여성들에게서 느끼는 감성은 어린 시절에 느끼던 고향 땅의 누이들에 모습 그대로다. 짙은 모성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잔정에 넘치는 모습 때문이다. 여전히 현대 여성을 자처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그들을 보면 평화로운 대지를 느끼게 된다. 그런 정서적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은 제한된 활동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상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대개의 연변 여성들이 새로운 물결과도 같은 물질의 풍요를 쫓아 가족과 등을 돌리거나 이질적인 것들에 현혹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 김영춘에게도 현대적인 것들이 그에 삶의 결을 거칠게 노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를 반증하고 있는 시가 곧 <현대승냥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현대적인 것들, 바로 그것이 진정 시인 김영춘을 슬프게 한다는 것이다.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 건/너의 눈이였다"고 시의 첫 구절부터 비장할 만큼 단호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그 옛날의 네 눈빛......"을 떠올리며 당당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오던 과거를 존귀하게 인정하며 애달픈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문명에 하수구에 머리를 처박히고 살면서 자신의 존귀함 자체마저 부정하는 처량 맞은 신세로 전락한 인간군상들을 안타깝게 관조하는 시인의 눈빛은 고향 땅의 순진한 누이의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거친 사막의 밤을 지배하는 사나운 승냥이의 눈빛이다. 바로 내 눈앞을 섬뜩 스치고 지나는 듯하다.
현대승냥이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땅사이에 턱 버티고 서서
사납게 울부짖던 용맹한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볼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비린 바람이 불 때마다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 입은 승냥이들
이 겨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실 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순한 너의 눈매였다
시인은 이렇게 슬픈 현대를 부르짖고 살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의 끈을 놓지 않고 <겨울강>의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에서 필자 또한 얼어붙는다.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의 경험을 우리 모두는 한번 쯤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상태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겪는 고난과 경험상태에 대해서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러니 결코 이러한 시적표현이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이라 믿는다.
"하고 싶은 말, 진심과 함께/꽁꽁 얼음 옷에 숨겨놓고" 견뎌내야 하는 차가운 냉가슴 같은 세월, 우리는 이 여린 시인의 가슴에 다스운 체온의 온기를 모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겨울강
하고싶은 말 진심과 함께
꽁꽁 얼음옷에 숨겨놓고
자못 태연한 얼굴로
새롭게 하늘을 마주보고 싶다
거울같은 마음의 흐름에
더는 구름의 웃음꽃 담을수 없고
더는 물새의 노래소리 띄울수 없어
침묵으로 응고된 사색...
조용히 마주오는 눈송이 고마웁고
떠들썩 달려오는 아이들 귀엽지만
마음의 감동을 잠재운채
산옆에 말없이 누워있다
그 절망과 희망 사이의 안개 속을 가는 여자라니, 그것이 바로 시인 김영춘의 모습은 아닐까? 황량한 거리, 도문(두만강변)강변의 쓸쓸함을 따라 걷는 시인 김영춘의 고독의 사슬은, 바로 안개 같은 현실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표변하듯 변화하는 세월의 무게를 지고 절로 안타깝게 절망하며 사는 시인의 참 진실이 아니겠는가? 절름발이의 현실을 살아야 하는 그가 시인적 삶을 거부하지 않는 한, 아무도 절망하지 않는 현실, 아무도 부정할 줄 모르는 현실세계에 희망의 씨앗은 싹트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 그는 안개 속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허허벌판의 생명수 같은 존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모성의 대지처럼.....
안개 속의 녀자
영문없이 내가 미워졌습니다
내가 미워진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
그래서 소리쳐 울고싶었는데
눈물은 나오질 않습니다
안개낀 갈림길에서
나는 이제 어데로 가야 하는지
슬프게도 나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떠있는 하늘을
목아프게 자꾸만 쳐다보아도
해는 나를 못본체 돌아서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외로와보입니다
하냥 내 가까이에 숨쉬지만
그냥 알듯말듯한 산과
꽃도 나무도 모두 외로와보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기다립니다
바람을 기다리는 안개 속의 여자, 그는 오늘 도문의 새벽 종소리, 아니 <도문역의 새벽종소리>에 아침 잠을 깨우는 일상에서 떠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역사(驛舍)에 모습이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떠날 사람은 어서 떠나라고/눈물어린 노래로 손젓는 모습인가" 하고 쓰린 속내를 내보이며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만에 만난 시우를 떠나 보내는 시인은 헤어짐이 안타깝지만, 이는 시우와는 만남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살면서 끝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이 모습은 우리의 눈에 선하게 비쳐지는 장면이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오라는 것인지, 어서 떠나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모성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장면 말이다.
도문역의 새벽종소리
떠날 사람은 어서 떠나라고
눈물어린 노래로 손젓는 모습인가
지페 한장 만지작이며
어데로 갈가 주춤거리는데
때앵...때앵...때앵...
은은한 마음의 떨림으로 다가오는
다섯점의 브드러운 음악의 소리
안개 낀 두만강가에 서서
흘러간 옛노래에 눈물 한줌 뿌리고
추운 밤 함께 숯불 지피던
고마운 시우들에게 악수 석줌 드리고
나는 이젠 정말 떠나야 하는것
연분홍 차표 한장 끊어들고
마음을 부르는 유혹의 세계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올라야 하는것
하늘다리 건너 파란 렬차 타고
꿈이 파도치는 낯선 풍경으로
작은 날개 파닥여보는 갈망에
이제 또 어느 역의 종소리 들려올는지
잠든 도문을 깨우고
잠든 내 마음도 깨워준
도문역의 새벽종소리...
역사에 안타까움을 보여준 시인은 이제 젖먹이는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한없이 품어주는 사랑을 보여준다. "젖먹이는 순간마다/나는 물이 된다"는 시인의 깊은 사랑은 연이어서 "주고 주어도/더 주고 싶은/샘터가 된다"고 토로한다. 순정한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듯 끝없이 깊어지는 것인가 보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나는 물이 된다
주고주어도
더 주고만싶은
샘터가 된다
하얀 사랑샘에 매달려
눈 한번 안깜박이고
쉼없이 젖 빠는 아가는
풀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여
작은 나와 큰 세상 이어준다
엄마 되는 길이란
내가 여위여지고
아기가 커가는
아프면서 예쁜 려행인가봐
그런 어머니 가슴을 간직한 시인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서울로 떠나 있을 조선족 오빠와 평양 간 언니를 노래하며 민족의 하나됨을 목놓아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그 노래는 너무나 태연하다. 아니 그의 변죽은 "훈민정음 모르는 조선족 남편"을 질책하는 것으로 빗겨나 있다. 사랑이 깊어지면 세상만사를 두루 품에 안는 깊은 사랑을 하게 되는 건가 생각된다.
한 여성 시인의 노래가 기승전결을 이루며 현대와 민족, 그리고 개인의 일상의 서사까지 두루 어우러지고 잇다는 점에서 난 이 여성 시인의 흐름을 따라 우리 민족이 하나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슬픔일랑 거두고, 저 제국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하면서...
편지
편지를 보며
혼자서 운다
훈민정음 모르는 조선족남편은
흘겨보며 담배만 피우고
나는 혼자서 운다
한강의 기적을
금강산 신화를
은행잎 단풍잎에 적어보낸
서울 간 오빠와
평양 간 언니의
슬프고 아름다운 얘기에 취해
행복해서 운다
헤여진 마음 이어주는
편지가 있어
내 눈물은 아직도
샘물처럼 맑은가
한때 필명은 김충. 1968년 장백현 12도구향에서 출생. 연변제일사범 졸업. 연변민족문학원 수료. 시 <현대승냥이>등 100여 수 발표. 수필 <아름다운 악수> 등 15편 발표. <96-97 전국조선족가요응모> 1등상, <제1회 조선족녀성백일장> 은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두만강시회 회원. 연변조선족 녀류시인회 회원. 현재 중국 길림석현제지업유한책임회사 <석지소식문화> 편집부에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