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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수궁가 듣기 3시간, 혼절할 걸 그랬나!

  • 김형효
  • 조회 3280
  • 2005.09.05 21:34
-  소리꾼 이명국 선생의 판소리 완창무대
 


혼절할 걸 그랬나! 요절복통하다 쓰러져 나자빠져야 하는 걸 그랬나! 지난 토요일 난생 처음으로 판소리 수궁가 완창무대를 접하게 되었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며, 간간히 들어보기도 했기에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특별한 기대를 갖고 무대를 바라보기 보다는 공연 시간이 세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듣고 있으려나 하고 걱정이 앞섰다.

처음으로 완창무대를 본다는 흥미로움과 또 평소에 좋아하기도 하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우에 불과했다. 구성지게 풀어헤쳐 놓는 소리선생 이명국 님의 넘치는 기백, 관중을 압도하는 강한 카리스마(?), 그것은 질풍노도처럼 휘몰아치다가 엉거주춤 추임새 가락에 잠자듯 고요한 치마자락이 살포시 젖혀지는 맵시를 보여주며 눈초리를 뗄 수 없게 하였다.

나는 어쩌면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질근 눈을 감아도 보지만, 무대를 휘젓는 소리선생 이명국의 회초리와 같은 울림을 따라 잡으려면 한시도 헛눈을 뜨고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장중하고 웅장하게 때로는 숨을 쉴 수 없는 만큼 어기차게 몰아치는 무대위의 독재자, 그는 전제군주같은 호령을 내뿜다가 멈추고는 시치미를 뗀다. 그 바람에 관객은 마치 포승에 묶인 죄인이라도 된 듯 오금을 졸인다.

잠자리 한 마리가 무대를 날듯 하얀 치마, 저고리의 나풀거리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객석에서는 옴짝달싹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관객의 오장을 뒤짚어 놓는 <진양조>의 애간장 녹는 눈물샘을 파고드는 소리에는 무아지경에 취해 죽을냥으로 서럽다. 특히 별주부가 토끼간을 구하러 떠나기전에 <주부모친이 만류하는 대목>에서는 그 극에 달한다.

*<주부모친 만류 대목>
"여봐라 주부야 여봐라 주부야 니가 세상을 간다허니 무엇허러 가려느냐 삼대독자 니아니냐 장탄식병이이 든들 뉘 알뜰히 구환허며 니몸이 죽어져서 오연으 밥이 된들 뉘햐 손뼉을 뚜다리며 후려쳐 날려줄 이가 뉘있더란 말이냐 가지마라 주부야 가지를 말라면 가지마라 세상이라 허는데는 수중 인갑이 얼른 허면 잡기로만 위조를 헌다 옛날에 너의 부친도 세상구경을 가시더니 십리사장 모래속에 속절없이 죽었단다 못가느니라 못가느니라 나를 죽여 이 자리에다 묻고가면 니가 세상을 가지마는 살려두고는 못가느니라 주부야 위방 불입이니 가지를 마라"

아! 이 구슬프고 서글픔에 눈가에 고인 이슬을 털어낼 겨를도 없이 이제 차분한 <아니리>가 이어지고 보는 이의 눈과 귀가 바빠지는 <중중몰이>에 속도감을 견디기가 힘들어지면 이제 <잦은중몰이>로 이어진다.

공연장 뒤를 가르는 푸른 강과 푸른 산줄기 속에 온통 젖어들고 싶을 정도로 온몸을 울게하고 웃게하는 수궁가의 묘미가 소리선생 이명국 님에 의해 장구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미처 따라잡지 못할 호흡과 넘치는 기운을 다 감당하지 못한 관객은 넋을 잃고 만다.

그러나 계속되는 이야기를 따라잡아 듣고 보면 이내 숨찬 회오리가 멈추고 호랑이에게 영락없이 잡아먹히게 된 별주부의 잔꾀와 용궁으로 토끼를 유인해가는 별주부의 재치에 넋을 놓게 된다. 아뿔싸! 그 재치와 임기웅변에 놀래기가 겸연쩍게도 이제는 죽을 목숨을 한 토끼의 포복졸도 하기 일보직전의 꾀불이는 모습에서는 탄성을 자아내는 웃음소리로 객석이 가득찬다. 순간, 강력한 흡인력과 강한 카리스마의 소리꾼과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의 간극은 금세 맞닿아 선다.

잠시 후, 뭍에 나온 토끼가 독수리에 잡아먹히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모양을 보고 있으니, 마치 관객은 소리꾼 이명국 선생의 포로였던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들이 마치 퇴선생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독수리의 발치에서 벗어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관객들은 무대의 장구한 소리꾼 이명국 선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관객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퇴선생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소리를 읊는다.

<세월이 여류허여 ~~~~>

관객도 곧 그 뒤를 따라 여류한 세월의 삶 터를 찾아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처마 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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