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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는 낯설음은 행복하다

  • 김형효
  • 조회 2902
  • 2005.09.05 21:38
-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심장부 연길시
   
 
 
낯선 것은 언어의 장벽에 있는 것이었다. 대화가 쉽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의 무기력이 그 낯선 불안함에 일조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아! 그 옛날 선조들은 어찌 이 낯선 이방의 땅에서 힘차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순간 나는 또 한번 한없이 초라해진다.

어렵사리 연길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침 장춘 공항 검색대 안전요원에게 함께 붙들렸던 여성분과 옆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 나는 무슨 연유로 보안요원에게 붙들렸는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그도 역시 컴퓨터를 가지고 오는 길이란다.

그녀는 조선족 교포로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입학선물로 줄 컴퓨터를 사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인 것이다. 들쭉날쭉한 중국의 세관 업무에 불만이 많지만 소수민족(조선족)으로서 당당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참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한다. 나 또한 동병상련의 입장 아닌가? 같은 조선족(?)이고 한민족 아닌가? 아무튼 그녀는 본체만 가지고 오는 것이라 600위엔을 지불했다고 했다.

그녀는 분당에서 봉제공으로 일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배편으로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곡절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벌써 두 번째 고향 방문길이라 한다. 연길에 사는 부모님과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이것 저것 선물 짐을 싸들고 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함께 한국에 갔던 동무들과 이번에 함께 고향을 찾는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간혹 창 넘어 드넓은 벌판을 바라본다. 이 광활함에 넘치는 기상을 간직하고 살았던 선조들의 기상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낯설음이 없는 땅, 단 한 번의 인연이었다. 오랜 역사의 서정적 줄기 아래 오랜 인연을 지울 수 없이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주의 심장부인 연길시다. 연길 공항에는 벌써부터 마중나온 이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급하게 짐을 챙기고 김진호 선생에게 감사의 표시로 연변 시인들에게 전하려고 가져온 북한 시인 시선집 한 권을 건네고 작별인사를 마쳤다.

짐 가방을 끌고 몇 걸음을 걸었다. "김형효 선생"이라고 종이 박스에 매직펜으로 쓴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연변의 민족시인 조용남 선생과 권순진 시인의 부인 오화숙 선생이 함께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남 선생은 작년에는 연길 역에서 또 한번 연변대 조문계 교수이신 권철 선생과 맞아주시고 벌써 두 번째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신세질 일이 많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내 손에 끌고 오는 짐들을 받아들었다.

일행 사이로 곧 한 사람의 택시기사가 따라붙는다. 우리네 풍속처럼 그들도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계속 따라오면서 무어라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택시 기사가 무어라고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10위엔을 달라고 하는 것이란다.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사실 10위 엔이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에서 10위엔이면 밥 한 끼 값이니 중국 현실에서 보면 작은 값도 아니다. 선생께서는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아타면 5위엔이면 된다면 끝내 흥정을 뿌리치셨다. 그리고 곧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우리는 바로 선생 댁으로 향했다.

작은 택시 안에 짐 가방을 가득 실어 조수석이 가득 들어찼는데도 운전기사는 아무런 타박이 없었다. 사모님이 편찮으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 없이 선생 댁에 이끌려 왔다. 사모님과 선생님께 예를 갖추고 짐을 정리했다. 사모님께서는 늦은 저녁을 준비하시느라 바쁘다. 여전히 낯선 이방에서의 친절이다. 아! 이 평온함, 믿음이 있는 낯설음은 행복하다. 짐을 정리한 후, 식사를 한다.

선생께서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알코올 도수가 45도가 넘는 "성주(星主)"란 술을 따르신다. 술잔 가득 따른 술을 거푸 세 잔이나 들이켰다. 소주 한잔도 버거운 내가 받아 마신 술이 거뜬하다. 긴장이 독을 푼 것인가? 식사를 마치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보고 있는 권순진 시인에게 전해줄 컴퓨터와 부품들, 그리고 책과 몇 가지 준비한 선물을 전했다. 오화숙 선생이 영업용 택시를 불러 차가 도착하자 짐을 실어 배웅을 하고 난 후, 선생과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곧 어설픈 첫날밤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생께서는 그 틈에 저간의 연변에서 있었던 문학사업들에 대해서 말씀하였다. 심연수 시인의 시비는 당초 7월에서 8월로 미루어졌다고 했다.

연길은 연변자치주의 수도와 같은 곳이다. 주정부와 주요 관공서가 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문화, 경제, 행정,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중심지이다. 물론 문화 예술인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연길 출신은 아니지만, 연변자치주 훈춘시 태생이며 현재 생존한 조선족 시인으로 조선족 문학의 큰 어른이신 조용남 시인의 시 한편을 감상하고 다음 연재에서는 약 5회에 걸쳐 연길 출신 시인들에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진 후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자.

지금 소개되는 조용남 시인은 얼마 전 작고한 김학철 시인이 자신의 유골을 두만강변에 뿌릴 때 함께 참여할 사람으로 지명할 정도로 곧은 기개를 간직하고 살아오신 생존하는 조선족의 역사이다. 지난해에도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바 있지만 후일에 다시 한번 소개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꽃의 언어

조용남

1935년 훈춘태생
1957년부터 10여년에 걸친 장기간의 추방생활


꽃의 언어는 무성의 언어다
꽃은 소리없이 말을 한다
가뜩이나 소란스런 이 세상에서
꼭 소리내여 말해야 할가

꽃은 미소로써 말한다
꽃은 사랑을 위해 태여난 족속
내심의 사랑을 표백하는데는
하나의 미소면 족하지 않는가

온갖 소음과 거짓 맹세로 떠들썩한
귀 아픈 이 세상에서
쩡쩡 울리는 백마디 장담보다
하나의 조용한 미소가 그립다

<994년 2월 5일 병실에서>


아마도 병실에서 받아든 꽃을 보며 꽃의 아름다움에 탄하며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 시인의 심성을 보고 있는 듯하다.

시인 조용남 선생과는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었기에 후일에도 상세한 소개를 재차 할 것이며, 또한 그 자체가 조선족 민족문학사의 이해를 돕는데 필요하기도 하다. 연재물에서 계속 조용남 시인과의 대화, 그리고 시인의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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