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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땅 네팔, 문화, 예술인과의 만남

  • 김형효
  • 조회 4091
  • 2005.12.15 02:31
층층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것처럼 비행기는 카트만두에 내렸다. 그곳에서 40일을 보내게 된 것은 예정과는 다른 일정이다. 보다 더 오래 머물기를 기대하고 네팔을 찾았다. 하지만 예정보다 빨리 내가 찾던 다큐멘타리와 다큐드라마 그리고 영화를 구하는 좋은 성과물이 생겨 일찍 귀국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네팔인 이주노동자 친구 밀런을 통해서 만난 네팔인 음악가 럭스만 쉐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처음 보름 정도는 풍토병에 시달리며 생사를 오갈 정도로 심각하게 아파야했다. 그 아픔을 참아낸 후 나는 홀로 지낼 방을 얻었다. 그리고 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몸은 점차 회복되었다.

문학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2004년에도 보았던 빠리잣의 동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변함없이 서 있었다. 내가 머무른 카트만두 사마쿠시라는 지역에 세워진 시인의 동상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을 응시하며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듯한 눈빛을 하고 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그가 다녔던 학교를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로 한 친구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의 가족과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만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신 2004년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국에 소개한 바 있는 네팔 최고의 시인 럭스미 쁘러싸다 데보코타의 원작 <무나마단>이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제작자를 만났고 그가 만든 영화를 통해 럭스미 쁘러싸다 데보코타를 다시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는 죽은 시인이지만, 아직도 수많은 네팔 민중의 뇌리 속에 각인된 시인이었다.

<무나마단>을 통해 그들의 정서가 아시아의 일반 민중적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가족이 공동 운명체로서 삶의 고난을 동시적으로 극복해가는 과정과 가부장적 권위의 틀, 또한 봉건적 역사 유물들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등이다. 무나라는 여성과 마단이라는 남성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데보코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다.

마단의 집안은 가난한 일상을 살며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살아가고 있으나, 빚은 계속 늘고 변제능력은 상실되어갈 뿐 아니라 오히려 늘어만 간다. 이에 치욕스런 일상을 견디어 내는 방편을 찾기 위해 티벳에 돈을 벌러 간 마단, 하지만 그 틈을 타 고리대금업자는 마단의 아내인 무나를 노린다. 가난한 마단의 집안으로 시집온 미모의 여성 무나는 고리대금업자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견디던 마단의 어머니도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병을 앓다 세상을 뜬다. 그때 마단이 많은 돈을 벌어 그야말로 금의환향하였지만, 반겨줄 이 없다. 그는 환각상태에서 무나를 만나고 혼이 나간 모습으로 살아가다 급기야 사망하는 비극적 종말을 고한다. 삼류 소설적 스토리라고 할 지 모르는 이 스토리는 네팔 민중에게는 우리나라의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과 비견될만한 작품으로 네팔 민중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고 있는 이야기다.


그럼 럭스미 쁘러싸다 데보코타의 시 <정글>을 감상해보자.




JUNGLE



럭스미쁘러싸다 데뽀코타(Laxmi Prosad Devkota)

D.O.B 1966(B.S) ~ D.O.B 2061(B.S), 서기 1909년~1959년




Life was crying in the middle of jungle with full of tears

생명이 울고 있어 숲 속에 눈물이 가득하다. 

could find no-where in the middle of my heart.

내 마음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지 모른다.

On the broken hopes there were eyes of sorrows

거기 마음에 상처를 간직한 슬픈 눈이 있다.

Don't know where the sadness and sorrows of my heart.

내 마음에 슬픔이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다.



이 시를 밀런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한국어로 번역했다. 밀런이 해석하고 나는 그것을 시적으로 읽어내는 의역을 한 것이다.

평상에서 문학인들이 대중적인 위치에 있지 못한 것은 어쩌면 서글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힌두교와 불교가 그들의 심리적 공간을 지배하고 있으니 문학이 파고들 여지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데보코타나 빠리잣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좀 더 깊은 착근을 원하며 홀로 사색하기를 그래도 그들이 네팔 문학인들의 고결함을 그래도 지탱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어서 네팔 왕궁 뒷길에 있는 공원(park)이라는 갤러리를 찾아 쁘라단이라는 화가를 만났다. 그는 주로 정물을 그리는 여성 화가였다. 그는 마치 그의 갤러리에서 열리게 되는 일인 전시회 “염원의 종소리”라는 주제의 전시회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전시회가 열리는 첫날 현장을 찾았다. 쁘라단의 작품이 아니라 다른 여성화가의 전시회였다. 인도대사와 네팔의 미술대학 교수가 축사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관람객에 불과한 나는 괜한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밀런에게 자리를 뜰 것을 청했다. 네팔은 엄연히 모국어가 있어 일상생활에서 네팔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지식인층에서는 유창한 영어의 사용이 그들의 과시욕을 채우는 주요수단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느낌과 판단에 대해 밀런도 동의하였다. 나는 다른 자리에서 네팔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언론 활동가들에게 그것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으로 문화 예술 활동가들에게는 치욕스런 일이라는 공감을 서로 주고받았다. 

나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연이어 드라마 연출자와 영화와 다큐멘타리(다큐드라마) 연출자를 만나고 방송국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네팔의 문화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것을 여러 방향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틈에서 그들이 문화를 통해 이겨 가야 할 길이 있고 그것을 통해 살려고 하는 생존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들은 그들 스스로 많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보다 많은 것들을 선진국을 통해 배우고 실천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화일반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필자를 대하는 진지함에서부터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럭스만 쉐스(음악가)와 고팔(드라마 연출자)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다. 그들은 아우어 스튜디오(our studio)를 함께 경영하고 있는 사업파트너이며 처남매부지간이기도 하다. 럭스만 쉐스는 방송국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를 통해 나의 일은 진행되었다. 네팔의 다큐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문제에 대한 접근의 주요 경로가 되었다. 럭스만 쉐스는 그야말로 동반자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네팔 최고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국영 NTV는 물론 두 번째로 큰 방송국 칸티푸르 방송국 사장과도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는 칸티푸르(KANTIPUR)와 이메지(IMAGE) 방송국 관계자와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유일한 국영방송국인 NTV관계자와의 만남은 그렇게 편안한 만남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럭스만 쉐스의 사무실에서 비마(BHIMA)라는 다큐드라마를 감상하게 되었다. 다큐 내용은 한 소년이 네팔의 가혹한 카스트제도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장래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다큐드라마의 제작자인 마니 라즈 아르얄(MANI RAJ ARYAL)을 만나고 이어서 스리람 바제라는 유명한 영화제작자이자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먼저 그들을 내가 머물던 네팔 카트만두 사마쿠시에 있는 나의 방에 초대했다. 그날 한국식으로 닭도리탕을 만들고 도너츠를 만들어 함께 먹고 맥주를 마시며 다정한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며칠 후 귀국을 앞둔 시점에 그들의 초청으로 아우어 스튜디오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향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동시에 프로그램 일체를 전달받기로 했으나 편집이 늦어져 럭스만 쉐스가 다음날 나의 방으로 가져 오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그들이 전해주는 다큐드라마와 다큐멘타리 그리고 영화를 포함해 7편의 프로그램을 받고 그들에게 <목포의 눈물>이 수록되어 있는 한영애의 음반을 선물했다. 나는 7편의 프로그램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네팔에 머둔 동안에 럭스만 쉐스와 많은 만남을 통해 네팔문화의 발전과 평화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향후 서로 협력할 방법을 찾고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의 문화 예술인들과 네팔 문화 예술인들의 친선협회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했고, 그는 동의했으며 네팔 최고의 코미디언인 하리봉서의 집에도 함께 찾아가게 되었다. 그는 이미 1년 전에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 나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내가 네팔 다큐멘타리를 한국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이어서 친선협회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하리봉서는 네팔의 남녀노소가 두루 좋아하는 코미디언이니 내게는 주요한 협력자가 되리라 기대한다. 마치 큰형님처럼 넉넉하고 편하게 맞아주어 참으로 고마웠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다. 그 귀퉁이쯤에 사마쿠시라는 동네에 방을 구한 나는 오는 12월경 다시 출국할 계획이다. 이번에 출국해서 함께 다큐를 찍자고 제안한 럭스만 쉐스의 제안에 동의한 사람으로서 준비해야할 일이 많아 지금 그런 준비들을 하고 있다. 우선 네팔에서 가져온 다큐와 다큐드라마, 그리고 영화는 1~2편에 한정해서 구매하기로 한 대상이 결정되었다. 작은 성공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시작이니, 후일의 기약은 무망한 일이 아니다. 네팔에서 한국 친구가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올까를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참으로 다행스럽고 그나마 낯은 서는 일이란 생각도 한다.

어떻든 낯선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신비의 땅, 네팔과의 만남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조그만 투자라 생각하시고 격려하는 마음을 담아 관심을 가져 주시길 기대하면서 짧은 여행기와도 같은 만남의 일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자전하는 사람들

- 뿌자 -





스스로가 중심인 사람들

소외된 자연을 중심에 두고

한 자락 바람결에 무념무상을 노래하는

그들의 조상은 히말라야의 본령이라

자연의 소외는 그들의 소외며

그러니 그들은 곧 자연이다.

아침 닭울음소리가

차라리 치열한 경쟁의 현실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다.

사람들의 일상은 닭울음소리를 따라간다.

안개가 스멀거리듯

조용히 깨어나는 이른 아침

그들은 어디에선가 아침의 문을 열고

하나, 둘

집과 사원을 찾아 길을 간다.

오직, 뿌자!

기원이 있는 아침을 간다.

길은 뿌자에 있다.


**사람들은 아침 다섯 시 전후부터 바쁘다. 도대체 낮 동안에도 한가롭기만 한 그들의 아침이 바쁜 이유를 처음부터 알기란 힘들다. 상서로운 아침을 맞아 언제나 그들은 신께 경배한다. 그리고 찌아를 마시며 잠시 명상하거나 하루 일상을 이야기한다. 잘 지어진 집들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대를 드러낸 철골 구조물들, 그들은 1층, 2층 집을 지어가며 산다. 3층을 올리고 4층을 기대하듯 학교나 집이나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단장되기 전 건물 모습은 여럿이 어우러지며 폐허처럼 보인다. 멀리 시내를 벗어나 보이는 산들은 거대한 암흑의 돌산처럼 보인다. 바로 내 앞, 내 눈 앞만이 선명한 도시가 카트만두다. 보통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산들은 선명하고 맑고 푸르다. 하지만, 카트만두는 예외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 흙먼지 속의 아이들과 어우러지며 도시의 모습을 더욱 을씨년스럽고 처량맞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마나고 대화하다보면 어느새 그들이 맑은 산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것이 그들을 희망이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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