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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네팔 시인 먼줄

  • 김형효
  • 조회 2203
  • 2007.03.21 23:17
네팔 시인 먼줄(Manjul)의 시화전



내가 먼줄 시인을 알게 된 것은 네팔을 두 번 째 찾았을 때다. 그때가 2004년 가을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지난해 7월 다섯 번째 네팔을 찾았을 때 그와 나는 만남과 동시에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54세의 늙은 사람<부라만체>이다. 그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설레임이 앞섰다.

나는 지난 13일 그런 마음으로 네팔의 밤하늘 길을 열고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만해문학축전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거리를 갖고 방문하였으니 홀가분하게 그 일에 정진하면 될 듯하지만, 다른 때와 다른 긴장감이 생겼다. 공항에 도착하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는 화가 비케이와 알고 지내던 택시기사 수크만을 반갑게 만났다. 그리고 내가 머무는 카트만두 라짐빳의 내 방을 향했다. 수크만과 고마운 인사를 나누고 비케이와 나는 내 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간의 소식을 묻고 답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네팔 시인 먼줄을 앞서 부라만체라고 칭했다. 그는 이미 네팔인의 평균 수명만큼 살아온 시인이니 네팔사람들 눈에는 늙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의 50대 그 어느 시인보다 혈기가 넘치는 청춘을 사는 청년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보기만 하고도 변할 수 있다. 그에게서 풍기는 인상과 행동거지에서 오는 품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먼줄 형님을 대하면서 나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자락 밑에서부터 용솟음쳐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보는 그는 네팔의 그 어떤 사람보다 역동적이다. 시인의 역동성이 네팔 사람을 생각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 다소 엉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먼줄을 통해 새로운 네팔을 보게 된 것이다. 느리고 수동적이고 모두가 입산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네팔에서 삶의 기약할 것을 보려는 안목이 그의 역동성에서 우러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의 시야말로 민중의 가슴속에 따뜻한 대지로 꽃피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그의 시 노래가 빛 고을의 오월에 불렸던 <님을 위한 행진곡>처럼 네팔 민중 혁명이 성공한 지난해 4월 네팔 거리에서 불렸던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금 그 땅에 4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오늘 마침내 그 혁명의 성공을 기념하듯 그의 시화전이 네팔의 조그만 치과에서 열리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흔히 있을 법한 프로그램이지만 네팔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고급 저택이 늘어서 강남구 일원에서 일반적인 풍경일 수는 있어도 한국 사회 일반의 풍경은 아니지 않은가? 행사는 오후 5시에 시작되었으나, 나는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후배 시인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젊은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향후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네팔에서의 그의 명망에 맞게 제법 규모가 있는 치과 전시장에는 100여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전시회를 여는 마당에 제법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지난해 한국에서의 <네팔현대미술전>을 치른 전력으로 면식이 있는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샤시 비크람 사하 선생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그는 네팔의 사립예술대학 이사장이다, 그는 행사의 주빈으로 행사의 오프닝 맨트를 해주었고 뿌자(기원)의식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날 행사에는 한국에서 그를 찾은 나를 비롯해 독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온 그의 친구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네팔의 다른 시인이 그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그가 자신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화전과는 다른 모습은 그림에 시의 이미지가 첨삭된 것이 아니라 그의 시의 메시지와 맞닿는 그림과 사진전이 동시에 열렸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의 컴퓨터로 프린팅 된 그의 시에 그의 사인을 액자로 만들어 놓고 그 시를 판매하는 점이 우리와 달랐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출판하고 나면 시집을 한 권 달라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 할까? 가난하지만, 아직은 시적 풍요를 볼 수 있는 모습 같아서 부러웠던 것이다. 아직도 시인이 부빌 언덕이 있는 듯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