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주어야할 유산, 물려주지 말아야할 유산
예빠토리야 시 주최 <한국문화의 날> 고려인 공연
필자는 예빠토리야에 머물고 있다. 지금 이곳은 우크라이나 전역은 물론 러시아, 벨라루스, 구소련연합국가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평상시 11월에서 4월까지 상주인구 9만이 안되지만, 지금 예빠토리야는 하루 체류인구가 15만도 아닌 150만을 넘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진출입 도로는 정체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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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철 벌어서 1년을 사는 전형적인 관광도시다. 때맞춰 시문화국에서 관광객에게 볼거리 제공차원의 소수민족 문화공연을 열었다. 어제 8월 13일 오후 6시(한국시간 자정)에는 예빠토리야(2500년 된 고대도시)시의 옛 도심 거리인 까라임스카야(ул. караимская)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고려인 거리문화축제가 열렸다. 행사는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사람이나 관람객 행사참가자 모두가 놀라워할만큼 성공적으로 열렸다.
지금 예빠토리야는 도심 전체가 행사장이나 다름없다. 행사가 시작되기 40분 전 갑자기 뙤약볕 하늘에서 굵은 소낙비가 내렸다. 그치지 않을 것처럼 쏟아지던 비가 멈추자 그때서야 행사장을 찾았다. 우천으로 행사가 미루어지리라 생각했으나 6시 20분 필자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행사가 시작되었다. 정말 하늘이 도운 행사처럼 무덥던 날의 기온이 초가을처럼 선선해지고 공연을 펼치는 사람도 관람하는 사람도 기분좋은 날씨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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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시문화국장인 나탈리야 유리나(50세)씨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예빠토리야 고려인 협회장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는 진행을 도왔다. 행사 초반에는 우크라이나 거주 다른 소수민족의 우정 출연진 축하공연이 있었다. 그동안 다른 소수민족 공연 때 고려인들도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학생들이 우정출연 해왔다.
주요 출연진 한글학교 학생과 장꼬이 고려인 협회 공연단
각 소수민족들의 축하공연이 끝나자 예빠토리야 한글학교의 김하늘(타냐, 12세)과 사비나(하늘꽃, 12세, 그는 고려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혼혈이다)의 우크라이나 노래 공연이 있었다. 둘은 생기 넘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공연은 얼마 전 소개한 바 있는 장꼬이 태권도 사범 게나 김이 이끄는 태권도 시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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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는 장꼬이 고려인 협회의 활약이 돋보였다. 다시 말하면 장꼬이 고려인협회와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주최의 행사였다. 그것은 장꼬이가 비교적 고려인 협회 구성이 오래되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해온 고려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 특성 덕분으로 이해된다. 태권도 시범에 이어 한복을 입은 장꼬이 고려인 무용단의 부채춤 공연이 있었다. 역시 많은 이방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웃음 지어 보았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어!"
곧이어 얼마 전 전화를 걸어 행사에 초대한 시문화국장인 나탈리야 유리나(50세)씨가 사회를 보면서 필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노래를 신청했다. 순서상 그리고 이미 규정된 일처럼 되었고 예고는 있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먼저 관람객들에게 서툰 러시아어로 소개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평소 한국에서 노래방에 가면 부르던 실력으로 불렀다. 전부터 시를 낭송해줄 것을 요청해 와서 오래 전 소수민족 문화축제 때 학생들이 읽었던 시를 준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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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시 "어둠은 바다에 두고 나는 집으로 간다"(세브첸코 대학교 한국어학과장 김석원 교수 번역)는 시를 한글학교 학생인 김타냐(김하늘, 12세)와 이타냐(이별빛,12세)가 함께 읽었다. 다음 순서도 한글학교 학생들인 사비나, 김타냐, 이타냐, 이리사가 함께 필자에게서 배운 아리랑, 곰세마리, 나리나리 개나리 등을 불렀다. 이제 그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둥글게 둥글게"와 우크라이나 노래들을 독창을 하거나 함께 부르면서 고려인 현지학생들의 장기자랑처럼 이어졌다. 오늘 그들은 처음으로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공연의 주체가 되었다. 그 동안의 공연은 소수민족끼리 진행한 연합 공연이었거나 20분을 넘기지 못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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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태극기라는 주체적인 개념의 조국의 상징물 아래서 공연을 열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심중에 깊이 두고 조국이니 민족이니 설파하거나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나이다. 그런 문화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 의식 속에서는 작은 충격파가 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싫지 않은 시선은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로 인식되었으리라 믿어본다.
문제는 우리다. 내국의 두 굵은 주체 남과 북이 문제다. 이번 공연단은 지난 장꼬이 사람들을 연재할 때 소개한 바 있는 장꼬이 고려인협회 부회장인 주타냐(주타티아나, 54세)씨가 인솔해왔다. 그녀는 세계사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친 사람으로 역사적 이해도 깊고 문화적 이해의 폭도 넓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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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꼬이 고려인 협회에 무용단원은 우크라이나인과 고려인이 섞여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태극기 아래서 공연을 펼치며 우리 민족의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해외의 동포들은 한반도기를 펼쳐놓고 공연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 정도 조건을 정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주는 것이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전단계로 광복 65주년을 맞은 이 시대 민족의 작은 자랑거리 하나쯤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는 장꼬이 사범 게나 김을 소개했다. 그를 소개할 때는 남북한이 세계태권도계를 두고 양분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세계태권도 기구의 양분된 구조는 남북관계와 같은 운명을 갖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른다. 다만 남북한의 국경처럼 갈라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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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꼬이 고려인협회에서 예빠토리야 고려인협회를 위해 온 시범단은 게나김이 지도하는 단원들이다. 게나 김은 북한에서 주도하는 ITF(세계태권도협회) 교본을 따라 배운 사범인 것이다. 필자가 그것을 따져서 무엇을 조정하거나 고치겠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올해로 광복65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이방에 사는 고려인들이 내막을 모른 채 벽에 붙어 있는 태극기 아래서 시범을 한 것이다. 굳이 그 내막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지도 않다.
물려주어야 할 유산과 물려주어서는 안될 유산
앞뒤 모르고 협력하는 고려인들의 모습은 정말 다행스럽다. 그것은 무지로 규정하여서는 안될 일이다. 이런 사실을 누가 나서서 알려주거나 가르친다면 대한민국에서 가까운 일본처럼 될 것이다. 남북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동포사회가 조총련과 거류민단으로 갈라진 사례 말이다. 어쩌면 지금 현재도 동포들은 그런 눈칫밥을 가려먹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한국의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세계각지의 동포사회를 그런 흐름으로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여 그런 일이 있다면 암담하고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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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또 소설을 쓴다. 망상 속에 산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광복절이 무슨 염라대왕이 저승사람 이승에 보내듯 생색내는 일을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 특별사면복권이라는 이름으로 광복절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광복절 65주년을 범죄자 혹은 자신들의 정치적 구미에 맞춰 구속하고 단죄한 사람들 풀어주는 날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광복절이 그렇게 천박해져서는 안 된다.
명실 공히 한민족 성원 모두를 자유롭게 할 그런 결단을 할 일이다. 그럴 때만이 그야말로 결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단의 내용은 한민족 성원 모두를 생각하며 할 일이다. 한민족 전체에게 통큰 사면복권은 민족구성원들이 반목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정치를 하는 자들의 일이다. 국내정치적 이해를 위해 필요한 날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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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틈만 있으면 사면복권이라는 것을 건의하거나 무슨 특별한 위업을 자랑하듯 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말한다. 정말 단행할 것은 국민을 기망하고 범법한 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은 자신들끼리 잡아넣고 자신들끼리 용서하는 미덕을 보여준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농간하는 짓이다. 잠시 홧김에 이야기가 샛길로 갔다.
어제 고려인 태권도 시범을 보면서 필자는 물려주어야 할 유산과 물려주어서는 안될 유산을 생각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필자는 말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 아직 잉태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념갈등을 겪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태어나기도 전의 생명조차 예고된 범죄자 혹은 붉은 칠이 예고된 조건인 것이다. 정말 지혜를 말하는 인간들이 사는 나라에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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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5주년 정치권 모두에게 대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분단을 가져온 주체인 일본에 의해 "더 이상 너희들끼리 잘 싸운다"는 그런 처지로 추락하지 않는 민족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오늘 필자는 처음으로 고려인들에게 신세 제대로 진 느낌을 가졌다. 국내의 모든 한국인 그리고 한민족 성원 모두에게 그들은 자랑스런 동포의 역할을 힘닿는 데까지 힘을 다한 것이다. 우리가 물려주어서는 안될 것을 그들을 통해 다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