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빠로쟈 고려인과의 만남(1)
이번 여름 필자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소개하기 위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무더운 여름날 우크라이나 남부의 주요 도시와 고려인 집단 주거지들을 홀로 찾아다녔다. 가깝다고 해도 2시간 이상 거리이고 먼 거리는 17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확인할 일도 있고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장꼬이 고려인들은 두 번 찾아가 만났다. 그리고 아직 소개하지 못한 자빠로쟈라는 곳의 고려인들을 만나서 취재활동을 이어갔다.
자빠로쟈 고려인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2박3일의 만남에 이어 2주 간격으로 다시 4박5일을 함께 했다. 좀 더 밀착된 그들의 모습을 알고 싶어 그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함께 일을 하며 보냈다.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농활이라는 것을 통해 농촌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처럼 고려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
|
그들과의 생활을 통해 아직은 너무나 멀고 먼 고려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했다. 지금은 가뭇가뭇한 어린 날의 농촌 들녘을 보는 느낌이었다. 들녘에 곡식이 무르익는 여름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위해 뙤약볕의 가혹한 햇살을 두려움 없이 함께했다.
나는 필자가 머물고 있는 예빠토리야에서 대중교통편으로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자빠로쟈를 두 차례 오간 것이다. 마침내 두 번째 방문길에는 고려인들이 재배한 가지, 토마토, 수박, 오이 등의 수확을 도왔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여름날이었다. 많은 고려인들이 그렇듯 자빠로쟈의 고려인들도 우크라이나 일꾼들에 일손을 빌려 일하고 있었다.
|
|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그늘에서 가족과 함께 수확한 작물을 판매하는 고려인들을 보는 마음이 싫지 많은 않았다. 들판에 즐비한 풍성한 수확물도 그렇고 낯선 땅에서 주인이 되어 사는 모습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뙤약볕 아래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을 하는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무 그늘에서 일손을 도우며 고려인과 대화를 나누며 한 이야기다. 저들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춤추고 노는 것이 전부다. 그 재미로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 국적도 없이 떠도는 농사꾼의 행색인 고려인이지만, 그들은 주인처럼 살고 있었다. 지역적으로 우크라이나 중남부에 위치한 자빠로쟈는 아조브해와도 가깝고 남부 크림지역보다는 러시아와 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고려인들은 일찍이 이 지역을 거쳐 남쪽 크림을 향해 이주했다.
|
자빠로쟈는 매우 큰 도시다. 우크라이나 전역을 통틀어 도시 한복판의 레닌대로는 25킬로미터나 되는 4차선 고속도로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매우 큰 자빠로쟈 댐이 있고 수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우크라이나 최초의 민속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고려인들에게는 자빠로쟈 오블라스지(한국의 광역 시도행정구역)의 율랴 티모센코 블록의 당 대표가 고려인인 알렉산드라 신(49)이다.
필자는 자빠로쟈 고려인 협회 회장 텐베체슬라브(51)씨의 안내를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자빠로쟈 고려인들을 만났다. 사실 그는 텐이라는 성씨를 쓰지만 정확히 정, 전, 천 등의 성씨 중 그 어느 것이 정확한 성씨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조국의 작은 아버지의 주소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그는 정씨가 맞는 것 같다. 그의 가족사와 자빠로쟈 고려인들의 삶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