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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 일을 돕는 필자 토마토, 가지, 수박, 오이, 양배추 등의 작물을 직거래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4박 5일 중 3일 동안 그들의 일을 도우며 여러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농사일을 체험하며 한국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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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열린 고려인 농부의 생일잔치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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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판에서 수확한 가지 김이스크라 씨의 아들인 스타쉬가 승용차에 가지를 실어나르고 있다. 바로 곁에 농로 숲에 지어진 움막에서 상하품을 골라내어 직거래가 이루어진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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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첫날 필자는 우크라이나인 농부들과 함께 가지를 수확하는 일을 도왔다. 반나절도 못되는 두 시간 정도의 노동에도 허리를 굽혔다 펴기가 힘들었다. 필자의 고통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김이스크라의 아들인 최스타시(31세)가 다가와 이제 그만두시라고 몇 차례 말을 건네 온다. 나는 못이기는 척하며 밭에서 수확을 거두는 일을 그만 두고 농로 옆 숲에 자리 잡은 움막으로 따라갔다. 그곳에서 토마토와 오이, 수박, 참외의 일종인 드냐(레몬 모양), 가지 등을 수확해온 것을 골라내는 일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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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빠로쟈 시내의 한 커피숍 커피 라이프라는 커피숍이다. 자빠로쟈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커피숍으로 무선 인터넷도 가능했고 커피맛도 좋았다. 바로 앞에는 환전소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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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빠로쟈 시의 한 관공서 의회청사로 들었다. 바로 그 앞에는 오성호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왕복 8차선 레닌대로 곁이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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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는 무사히 일을 마쳤으나 넷째 날에는 지쳐 일어날 수 없었다. 노동과 멀어진 내 몸이 약해져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시내로 나가 인터넷도 하고 자빠로쟈 시내풍경을 취재하기도 하였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레닌대로 주변은 텔레비전에서 본 유럽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그날 밤을 다시 텐베체슬라브씨의 장모님 댁에서 기거한 후 낮에는 다시 텐베체슬라브씨 출근길 동행이 되어 자빠로쟈 시내에 홀로 내려달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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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인 도매상인들과 함께 현지인들에게 환영받아 기분이 좋았다. 그들에게 고려인 농부들의 삶을 취재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더욱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런 반응에 고려인 농부들도 함께 웃으면 반겨주었다. 즐거운 시간이 된 이유 중 하나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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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을 기다리는 풍요한 토마토 고려인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해줄 풍성한 수학물. 자식들 기르고 공부 가르치고 낯선 땅에서 소외감없이 살아가게 하는 풍요로운 수확물들이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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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과 같이 다시 레닌대로에 섰다. 혼자서 현지인들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시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였다. 자빠로쟈는 규모 있는 도시였다. 시내 한복판에는 키예프에서나 보았던 오성호텔도 있었다. 도심에서 바라본 의회청사의 규모도 매우 컸다. 오래된 성당과 유럽이나 고딕풍의 건물들 그리고 아치형 조형물과 어우러진 빌딩들도 눈에 띄었다. 텐베체슬라브씨의 이른 퇴근 시간에 맞춰 고려인 농부를 찾기로 했으나 그는 오지 못하고 그의 아들을 만나 다시 농사짓는 고려인들을 찾았다.
이틀 전 자빠로쟈 시내에서 유일하게 두부를 만들 줄 아는 고려인 한 분이 이곳의 농부들에게 두부배달을 위해서 찾아왔다. 그때 필자도 그를 따라 다른 고려인들을 만나고 싶다며 동행했다. 그래서 이곳 들판에 고려인들을 두루 볼 수 있었다. 그곳 인근 들판에서 농사짓는 고려인들은 어림잡아 20여 가족은 되었다. 그날 필자는 러시아에서 자빠로쟈에 와 농사를 짓던 한 고려인 농부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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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샤와 엄마, 아빠! 드네쁘르뻬체롭스키(днепрыпечеровский)에서 온 미샤네 가족이다. 그들은 자빠로쟈에서 한 시간 삼십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서 농사철 동안 자빠로쟈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 그들의 웃음처럼 맑고 밝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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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으로 갈라진 농로 헤르손 지역은 장마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자빠로쟈는 가뭄으로 벅찬 날들이다. 오죽하면 농로가 저리 갈라졌을까?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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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토가 스스로 창조물이다. 토마토를 골라내다가 웃음이 나는 토마토를 보았다. 시름깊은 노동 속에서 웃음을 주는 토마토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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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모이는 고려인들을 함께 만나볼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생일잔치는 들판에 움막에서 열리기는 했지만, 결코 간소한 잔치가 아니었다. 그곳 농부들에게는 모처럼의 즐거운 잔치가 열리는 것이기도 했다. 멀리 러시아에서 그의 두 딸과 부인까지 생일잔치를 위해 찾아왔다. 자빠로쟈 시내의 거래처 사람들 그리고 인근 들판에 고려인들이 두루 찾아왔다. 들판 생일잔치에 모인 숫자가 50여 명을 넘어섰다.
초대를 받은 필자는 생일을 맞은 러시아에서 온 농부의 이름을 물었으나 옆자리에 다른 고려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메모를 못했다. 필자는 나서서 노래라도 한 곡 하고 싶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또 우리네 민족이 모이면 왠지 노래 가락이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있어서다. 그러나 그날은 아쉽게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서로 정겹게 주고받는 술잔에 훈기가 넘쳐서다. 노래 한 곡조가 지친 노동을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는 흥취를 깰까 조심스러워서 참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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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농부의 아내와 딸들 왼쪽의 두 딸이 필자를 반겨주었다. 그들은 둘 모두 한국에 다녀왔고 결혼을 해서 러시아에 살고 있다. 물론 그의 어머니도 러시아에서 왔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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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잔치를 맞은 러시아에서 온 농부 생일잔치를 맞은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이다. 사진을 찍자는 필자에게 겸연쩍어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 그 모습도 더 좋아보인다. 내 동족이니 더 그러한 마음이 들 것이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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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함께 한 그의 두 딸이 특히 필자를 반겨 주었다. 참 다행인 것은 그들이 한국에 다녀왔지만, 필자를 반겨주는 것으로 보아 핍박은 받지 않았나 보다는 생각을 해서다. 가끔씩 한국에 다녀왔던 고려인들이 상처를 안고 돌아온 경우도 있다. 그들은 필자와의 대면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뒤 없이 우리가 지켜야할 민족에 대한 예의를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싶다.
지금 고려인이나 조선족이라 불리는 그들 모두는 우리의 종족으로 우리의 문화적 속성 그 향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조건을 이겨가는 장한 사람들이다. 필자는 지금도 중국 땅에서 만난 조선족들과의 만남을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벗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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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첩이 쌓인 국수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농부의 생일 잔칫상에 올릴 국수 그릇들이다. 50여명의 고려인과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이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농부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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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잔치에 초대된 고려인들 생일잔치에 초대된 고려인들이 필자의 촬영 요청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응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한탄이 깊었으나 나는 그들을 달래주지 못했다. 모자람이 넘친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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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의 아내들 저물녘에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고려인 농부의 아내들이 잘 차려입고 잔칫집을 찾아오고 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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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래된 고향 하늘아래 누이와 형님들이 주었던 정감을 느끼며 생각한다. 그리운 형제들이다. 그들이 내 동포다. 어쩌면 훗날 지금은 가끔씩 문화적 충격으로 고통도 주고 불편도 주는 이곳의 고려인들을 그리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정성을 다하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그들의 여름날의 뙤약볕에서의 노동 후의 가을날이 풍요로운 날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고려인 농부들에게 올해는 가혹한 시련의 해였다. 올 여름 많은 비가 내려 대규모 수박농사를 짓는 그들이 수확기에 많은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전통을 잇는 고려인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들에게 올 한해가 고통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내년에라도 올해의 손실이 만회되어 원하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추석을 맞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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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 잔치에 잘 차려진 잔치상 맨 앞에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저멀리 고려인들이 보인다. 모두가 즐겁고 밝은 모습으로 피곤한 하루를 지워버렸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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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처음 먹어본 떡이다. 생전 처음이다. 저 떡 안에는 만두 속같은 고기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참 맛 있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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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자빠로쟈 고려인과의 만남 마지막 이야기로 한국에서 살다온 김이스크라씨의 가족사와 그녀가 경험한 한국 그리고 필자와 나눈 대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