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2] 바르샤바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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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색을 뒤로하고 바르샤바를 산책도 하고 구경도 하였다.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국제적 뉴스의 중심처럼 여겨지던 곳이다. 교과서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시험 문제에 출제되기도 하였다. 그런 인연은 오랜 역사적 전통을 모르는 필자에게도 친근감을 갖게 하는 곳이었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 있는 도시인 바르샤바는 비슬라 강이 동서로 가로질러 흐른다. 상공업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박물관, 식물원, 사원, 공원 등이 많다. 바르샤바는 폴란드 교통·통신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동유럽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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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을 통해서 이곳이 오랜 세월 동안 발달해왔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맨 처음 걸었던 한 나절의 새로운 거리, 영어로 뉴웨이나 뉴로드(New Way and New Road)쯤으로 표기하면 될까? 하지만 새로운 거리가 훨씬 정겹다. 새로운 거리라고 해서 꼭 지금 막 생긴 그런 거리가 아니란 사실은 길을 걸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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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폴란드의 수도로서 주요한 역할을 해온 곳으로 수많은 역사를 폴란드와 폴란드 역사 속에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게 하는 흔적들도 많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그 후 재건되어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전쟁의 질곡을 겪은 나라다. 침략을 하기도 하고 침략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니 역사적인 아픔이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깊고 깊다. 생명을 잃은 가족들도 많고 역사적으로 남은 상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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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에는 바르샤바대학교가 있다. 폴란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많은 화랑과 전시관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국립박물관과 자헹타 화랑이 있다. 이밖에도 극장·박물관이 있으며 바르샤바 역사동우회, 쇼팽 협회 등과 같은 많은 문화단체들이 있다. 공연문화가 활발하다는 것을 거리의 풍경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된 건물들도 있었고 잘 정리된 새로 지은 건물들과 새로운 거리의 인상적인 카페 풍경은 낭만 여행객들을 눌러 앉히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의 '새로운 거리'라는 이름의 도심은 비 내리는 날 찻잔의 향기를 더욱 더 풍요롭게 하는 듯했다. 호젓한 분위기가 전쟁과 아픔의 역사는 다 잊을 것을 나그네 여행길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거리'를 걸으며 커피 향을 맡는 일은 비오는 날 우산 쓴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쉽다. 필자는 그 어느 도시에서도 바르샤바 '새로운 거리'의 모습처럼 커피숍이 늘어선 것을 보지 못했다. 연인들도, 여행객도, 도시의 사람들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색의 거리로 여겨질 만큼 앉아서 찻잔을 들어야 할 것만 같은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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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새로운 거리'의 끝으로 가면 가는 길에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있다. 학술회관 앞이다. 세상을 아우르는 듯한 자세의 코페르니쿠스의 조국이 폴란드란 사실을 이번 여행을 하며 알았다.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오래된 바르샤바 대학을 보고 그곳의 학생들의 바쁜 움직임을 본다.
그들은 날마다 지나온 과거의 역사의 암울과 소통하며 그들 삶과 조국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거리를 꿈꾸며 새로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내 조국의 현실을 뒤로 하고 우리네 청춘들도 날마다 폴란드의 젊은이들처럼 지나온 길의 조국의 암울을 뒤로하고 새로운 걸음을 걸어 나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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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이면서 바르샤바에 생가가 있는 퀴리부인은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였다. 그녀의 생가를 한참을 찾다가 관광객 행렬을 쫓아 걷다가 길을 잃었다. 11월 11일이 폴란드의 독립기념일이란다. 그래서 역사 기행처럼 독립 유적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 그들을 쫓아 걸은 것이 화근이 되어 낯선 여행객의 퀴리부인 생가 및 박물관 방문은 보류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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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폴란드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의 땅 바르샤바를 고증에 따라 복원했다는 구시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고받으며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듯 역사적 과정에서 서로 다른 국가도 그런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씁쓸하고 잔혹하다는 생각이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준 아픔을 우크라이나의 민족 시인 쉐브첸코가 자국민의 아픔과 인류의 상처에 대해 아픔을 노래했듯 또 다른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쯔께비츠(Adam Mickiewicz, 1798~1855)은 독일의 침략과 소련의 침략을 그렇게 아파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결 같이 서로 다른 자신의 아픈 민족사를 노래하며 모두가 하나인 인류애를 강조하였으리라, 모든 시인들의 노래가 그러했을 것이다.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노래 위에 인류의 평화를 갈망하고 갈구하는 호소를 담는 것이리라. 다시 바르샤바에 해가 저문다. 다음은 또 다른 도시 끄라코프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