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3] 분단의 아픔 나누지 못하는 한국 안타까워
빈 말투성이 속빈강정이라도 대화 필요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낭만과 여유로운 사색에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오늘 여행기를 쓰기 전 필자는 몸과 마음이 짓눌린 무거운 마음이다. 조국의 하늘에 먹장구름이 덧씌워지는 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역대 세계의 수많은 전쟁이 그러했듯 전쟁은 평화로움을 담보하지 못한다. 빈 말투성이 속빈강정이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만이 지겹고 지치더라도 평화를 가져다준다.
현대 역사에서 지구상의 수많은 전쟁을 수행한 결과 절대 권력자가 다친 경우는 거의 없다. 예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 침략을 감행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후세인을 사형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지휘할 뿐 다치지 않는다. 절대 권력이 민족과 국민을 상대로 무모한 병정놀이를 하는 동안 국민은 불안하고 민족의 미래도 어두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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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무너진 바르샤바 거리를 일으켜 세운 기적 같은 폴란드인의 저력을 보았다. 그 끝에서 우리의 어두운 하늘을 보게 된다. 세계의 모든 민족 그리고 국가는 갈등과 분열 속에 성장해왔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족이 남남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는 곳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우리 모두가 국제사회에서 창피한 민족임을 자각을 할 때란 생각이다. 만신창이같은 민족의 모습으로 무엇도 자랑스러울 것이 없다.
남한이 잘났다 해도 남한이 잘난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에게는 남북이 모두 분열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그 어떤 기적도 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한강의 기적을 말하는 우리에게 분열이 남았다면 그것은 헛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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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 와서 폴란드를 새롭게 인식
오전 9시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끄라코프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비 오는 밤거리를 보았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새로운 거리를 지나 구도심지역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오랜 과거 폴란드인들이 살아온 역사적 저력을 숨결처럼 간직한 옛 수도인 끄라코프로 향했다. 바르샤바의 짧은 2일간의 여행을 마친 것이다. 이번 여정은 분단된 조국에 사는 사람으로 조화롭게 분단을 극복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찾으려던 계획을 미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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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 와서 폴란드를 새롭게 인식한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지를 선택하게 된 곳이 폴란드의 옛 수도인 끄라코프다. 그리고 오시비엥침이라 불리는 아우슈비츠를 찾으려는 것이다. 물론 700년 소금체취의 역사를 간직한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도 찾을 생각이다. 폴란드를 보려면 끄라코프를 보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끄라코프가 폴란드의 흥망성쇠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폴란드는 그다니스크 조선소를 중심으로 일어난 1980년대 자유노조 운동으로 기억된다. 자유노조 운동이 시작되며 폴란드는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재 폴란드가 한국과 같은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아무튼 사회주의 체제의 폴란드인들에게 이념과 자유의지를 확인하게 한 가장 큰 현대 역사적 변화는 80년대 자유노조운동을 시작으로 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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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틴숲' 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려다 사망한 바 있는 카친스키 대통령 역시 자유노조 운동의 핵심 멤버로서 노조 지도자 바웬사의 참모였다. 아무튼 끄라코프에는 폴란드 역사가 서려있다. 때마침 폴란드 독립기념일이어서 거리에는 각종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카틴숲 학살'은 1940년 4월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소련의 비밀경찰들이 1년 전 독-소 불가침조약 직후 폴란드를 침공해 포로로 잡은 폴란드군 장교와 지식인 등 2만 2000여 명을 집단학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그들은 하나인 아픔을 독립기념일을 맞아 함께 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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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처럼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은 그런 모습이 부러워서다. 우리는 광복절을 함께 기념하면서도 아픔을 서로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운동가 이기형 시인께서 남북이 하나되지 못하고 민족공조는 못하면서 한일공조를 하는 웃지 못할 세상을 언급하시며 쓴 웃음을 짓던 모습이 서늘하게 앞가슴을 친다. 정말 아프다.
발밑에 떨어진 불덩이를 본 놀란 마음이 여행자의 시선을 여행지를 소개하는데 두지 못한 것 같다. 바르샤바 중앙역을 오전 11시 18분 출발한 기차는 여행자의 아픈 사색을 싣고 끄라코프에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다. 끄라코프는 한 눈에 봐도 정겹고 평화가 어린 느낌이었다. 시내로 접어들면서 오랜날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끄라코프를 찾은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그런 사색을 한번쯤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