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7] 헝가리 부다페스트
2009년 3월 처음 우크라이나 땅을 밟았을 때 다양한 건축양식과 건물들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그것은 폴란드를 포함한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더 놀랍게 다가왔다. 대부분 돌 구조물인 건물들은 신화 속 신과 인간들이 떠받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오래된 암각화나 벽화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입체적인 형상은 멀고 먼 시간의 거리를 극복하고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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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도나우 강과 시내 야경을 보며 왕궁의 언덕을 내려왔다. 부다페스트 밤거리 풍경은 20여년 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우크라이나에서 느꼈던 자유와 폴란드에서 보았던 자유로움은 새롭다. 한국에서 들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한국처럼 자유로운 나라는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배우고 살았잖은가? 물론 세상물정 모르고 그렇게 믿어온 것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자유로운 것들을 보게 되면, 충격이었다.
늦가을에서 겨울 초입으로 들어서는 부다페스트 밤거리의 사색을 안고 유스호스텔로 발길을 옮겼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의 사교 모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왕궁의 언덕을 내려와 사슬다리를 건너자 주점이 늘어선 골목이 나왔다. 골목이라고 해서 좁은 길은 아니다. 주점 골목들 사이에 공원이 있어 벤치에 앉아 도란거릴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 처음 온 나그네에게는 바로크 양식과 네오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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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한 단잠을 자고 난 아침,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거리를 걸었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사색이 넘쳤다. 부다페스트는 다양한 인종들이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었다. 터키나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식당을 차려 케밥 집을 운영하거나 중국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낙엽이 거리의 을씨년스러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늦은 밤, 연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끼리 길을 걷는 모습은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잘 갖추어진 거리의 모습은 또 다른 부러움이었다. 한국에서도 몇 해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자전거 도로는 더욱 부러웠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에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활발하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느끼는 것들은 경직된 한국의 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많은 동상들이 있다. 그러나 그 동상들 중엔 오래된 제국의 군인과 역사 속 인물들이 많다. 또 하나, 대부분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가들을 떠받들고 있었다. 또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경배가 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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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의 향기가 느껴지는 오래된 건축물만으로도 도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십여분 길을 걷다보면 멋진 새로운 건축물이 하나쯤 나타난다. 알고 보면 그 모든 건축물들은 대개 박물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다페스트에는 수많은 미술관과 역사, 전통 문화 관련 박물관들이 있다. 한국에서 최근 뜻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조성되고 있는 생활사 박물관들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낯선 나라의 박물관들을 보면서 그 개인들의 정성이 훗날 우리들의 자부심을 만드는 소중한 일이란 생각에 국가와 기업의 관심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음악 관련 서적들로 꽉 찬 서점을 볼 수 있었다. 기억할 수 있는 음악가들의 오래된 악보집이었다. 체코나 오스트리아 필하모닉은 한국에서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헝가리에 부다페스트에서 그들도 클래식을 즐기며 그런 전통을 소중히 간직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기초가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는 음악사 박물관은 그들의 자존심처럼 여겨졌다. 또한 길거리에서 본 오래된 카메라 상점을 보면서도 단순히 골동품점이 아닌 그들이 지켜오고 누려온 문화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부러웠다. 거리가 박물관처럼 느껴지는 거리다. 오래된 카메라 상점에서 세월이 지난 오래된 슬라이드를 한 점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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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엄은 말로 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나라의 격도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우러난 존경의 마음으로 존경받는 국가적 인물들이 있는 나라가 부럽다. 그래서 그 인물들에게 후손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을 갔다 바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필자가 여행하면서 부러운 것들은 스스로 내세워 자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가치들에 존경심을 갖는 것이며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자랑을 국민 모두가 함께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 중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많은 문화 예술가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바탕에는 통일된 역사, 문화적 전통이 있었다.
일상을 소중히 지켜가는 문화적 전통이 그들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통일의 염원과 분단의 상처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도 통일된 문화, 역사적 전통이 있다면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이 바쳐질 자랑스런 지도자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지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학생 때가 지나면 그만인 것이 되고 만다. 어린 손, 어린 시절에는 꽃을 바칠 수 있던 인물들이 나이가 들며 어른이 되면 퇴색해버리고 만다. 바로 어른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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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역사, 문화적 전통을 만들지 못한 어른 탓이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이 꽃다발을 바칠 지도자는 있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고 나면 밋밋한 지도자로 한정되고 만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져 민족의 자랑은 친일, 친미 잔재에 의해 조롱당하고 마는 것이다. 남과 북의 모든 지도자가 뜻을 모아야 할 시급한 일은 통일된 역사, 문화적 전통을 만드는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네 어른들은 어른 행세만 하며 하세월로 보낼 것인가?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오래도록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란 사실을 다시 자각하는 거리의 유랑객의 심정이 되었다. 부다페스트를 한국에서 다시 되새김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왕궁의 언덕에서 보는 부다페스트 시내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슬다리 밑을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 강이 헝가리의 역사를 안고 흐르고 있다. 낯선 나그네의 발길에 고대의 흔적들이 가슴에 각인되는 날이다. 역사는 소중하게 기억되는 순간 더욱 아름답다. 더구나 그 터에 살고 피땀 흘린 동족에게는 더 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