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9] 프라하의 봄 그리고 인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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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억되고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역사는 기억되고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세대에게 역사가 가르쳐준 희망의 메시지 중 하나다. 그리고 상처뿐이라도 내일을 향해 나갈 힘을 축적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간직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살얼음 어는 동토의 역사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불과 3년 전 만해도 우리 민족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황금기처럼 위대한 평화의 역사를 쓰는 것으로 보였다. 마음속으로 민족의 자긍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은 현실은 한국의 보수파? 대통령에 의해 그 모든 것들이 허사로 보일만큼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이전 정부 10년의 역사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들은 체코문화부흥의 상징인 국민극장을 세웠다. 독일의 지배 하에서 체코어조차 사용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1849년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 국민극장건립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국민적 염원을 모아 십시일반 국민극장을 자신들의 존엄한 가치로 세우기도 했다. 지금 그들 체코인들은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고 있다. 잊지 않고 기억되는 역사를 통해 그들은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문명적 토대 위에 세워진 그들의 자긍심은 다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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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가? 프라하를 걸으며 지난 10년 민주정부 역사를 되새겨본다. 오롯하게 우리 스스로 서지 못하는 한 끝끝내 반신불수의 조국을 배우고 살 수 밖에 없다. 불혹을 넘긴 제게 그 의미는 아픔 이상도 이하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있다 여겨진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 청소년들을 포함한 미래 세대들에게 그것을 고스란히 넘겨줄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 10년의 역사가 얼마나 다행스런 경험인가? 그런 점에서 지난 10년 분단 이후 처음이었던 남과 북이 가졌던 대화의 시간들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서로 등을 두드리며 안녕을 말하며 대화의 경험을 축적한 시간들은 얼마나 고귀한가? 그것은 뜻이 다른 남쪽 사람과 북녘 동포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자산을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데올로기 사슬에 옭아매어지는 남과 북의 아이들에게 지난 10년의 기억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 앞에 다가선 새해의 기도는 앞 뒤 없이 평화여야 한다 생각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평화여야 한다. 새해에는 지난 10년의 평화의 기억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도록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새해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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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왕의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았다. "프라하의 봄"이다. 프라하의 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68년 1월 개혁파인 두브체크가 당 제1서기가 되면서 국가 주요요직에 개혁파를 임명했으며, 4월에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①재판의 독립 ②의회제도의 확립 ③사전검열제의 폐지 ④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⑤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⑥국외여행·이주의 자유보장 ⑦경찰정치의 종식 ⑧공업·농업 부문의 개혁 ⑨체코,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 의한 연방제 이행 ⑩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⑪과거에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시민의 완전한 복권 등이다. 두브체크는 이와 같은 개혁조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했다.
언론·집회·출판 등이 자유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동안의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군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5개 나라 군대 약2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두브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소련으로 연행했다. 이로써 프라하의 봄은 끝나고 1969년 4월 당 제1서기가 된 후사크에 의해 사태가 수습되었다. 그러나 그 역사는 그대로 묻히거나 잊혀진 역사가 아니다. 역사적 과정에 축적된 민주화 의지를 안고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 모두에게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그들의 자발적인 독립의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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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도 세계인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는 "프라하의 봄"은 체코인에게만 기억되는 역사가 아닌 세계인의 가슴속에 생생한 살아있는 역사다. 영화에서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의 외과 의사인 토마스(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바람둥이다. 병원에서 간호사와도 섹스를 하는 섹스 중독증에 가까운 인간인 그는 자기 민족을 배반한 당시의 정치지도자를 경멸하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비열한 자들이 비열한 자신도 보지 못한다", "오이디푸스 이후로 도덕은 변질되어 버렸다." 한 시골 소녀였던 테레사(줄리엣 비노쉬)는 "프라하의 봄"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소련군의 만행을 사진으로 찍는다.
"인간의 얼굴을 한 내 나라, 내 민족의 삶"을 기대한다
우리는 때로 내 나라와 내 민족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보다,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의 역사에 더 깊이 있는 인식을 가질 때가 있다. 아는 것은 좋지만 참 불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기 나라의 역사, 자기 민족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 그만큼 제약이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만큼 왜곡이 심하거나 바르게 이야기 되는 풍토가 아니기 때문이란 자괴감도 든다. 그러니 초등학생 이전부터 배우는 고대사 말고는 역사를 인식하거나 바른 역사적 판단을 할 수도 없는 기형적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 의해, 혹은 특정 세력집단에 의해 역사가 감추어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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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가 자랑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로봇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가 "카를 차페크", 시인 "릴케"가 모두 체코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특히 시인 릴케는 프라하에서 사춘기까지 지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보았던 수많은 박물관들이 프라하에도 있었다. 프라하에는 오래된 수많은 성이 눈길을 끌었는데 성당들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건축물의 다양한 건축양식은 모두 프라하에서 비롯되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했다. 처음 찾은 이방인의 눈에는 신비롭기만 했다. 텔레비전에서 본 조그만 상식으로는 지적호기심을 채우는 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1968년 먼 나라 체코의 한 정치지도자 두브체크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가 자유로운 인간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혁조치를 발표한 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사회는 "인간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하고 있는지, 그늘이 너무 크고 깊다. 새해 벽두 어둠이 세상을 지배해도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내 나라, 내 민족의 삶"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다짐하며 현재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워지지 않는 좋은 흔적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