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빠토리야 한글학교 마지막 수업 진행
작별 인사는 짧을수록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짧은 인사마저 쉽지가 않다. 2009년 3월 4일 출국할 때만해도 내게는 하리코프 정수리학교 한글학교 학생을 만난다는 기대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는 학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와서 서남부의 수호믈린스키 대학교로 임지가 정해졌다. 하지만 방학 기간인 상태라 수업을 진행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임지가 바뀌었다. 남부의 크림지역의 예빠토리야 고려인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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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멀고 먼가? 또한 우크라이나에서도 하리코프와 니꼴라예프는 멀고 먼 곳이다. 그런데 다시 또 긴 포물선을 긋듯이 나의 정처는 예사롭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예빠토리야 고려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내가 한 일은 무엇인지 사색하는 시간이다.
한시도 게으르거나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의 크기나 굵기만큼 내가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구하는 지금, 내가 하지 못한 일은 쉽고 분명하게 목록이 정해진다. 그러나 무엇을 했는가는 짧게 말할 수가 없다.
2년의 시간 그리고 19개월 동안 내가 만난 고려인들과의 시간은 내 자신에게 내 동족의 이해를 깊이한 시간이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지금 얻을 답이 없음은 아쉽지만, 그 훗날의 답을 기약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보련다.
오늘 필자는 우크라이나에서의 2년, 예빠토리야에서 19개월을 정리하며 짐을 싸서 한국으로 보냈다. 당초 예상한 짐 보따리보다도 버거운 무게였다. 내 마음의 무게도 더해진 느낌이다. 학생들 개개인이 준비한 선물을 받은 탓도 있다.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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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집에 모인 나의 사랑스런 동족의 아이들이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선물을 전달했다. 그날은 작별 인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마지막 수업이란 이름을 지어 말했지만, 사실은 수업보다는 인사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필자도 선물을 준비해서 그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기쁜 선물은 학생들이 전해준 기념품이나 물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내게서 배운 한글 노래를 불러준 것이다.
사실 필자는 울보 습성을 지닌 사람이다. 사소한 일에 자주 감동하고 내 아픔은 무지몽매할 정도로 참자고 한다. 그러나 측은지심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은 커서 주제 파악을 잘 못하는 모양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날도 예빠토리야 고려인 한글학교 학생들이 불러주는 한국 노래 18번이 된 곰 세 마리나 아리랑, 아리랑 목동, 고향의 봄은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내 눈가를 적시고 말았다. 작별의 인사에 서툰 필자는 낯선 만남을 즐기면서 작별에 서툴다. 그래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일 다시 고려인 협회장이 자리를 마련해서 아이들과 국수를 삶아 먹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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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자 말하고 나라의 역사와 할아버지 나라의 과거를 말하는 것이 서툴러 미안했던 시간이다. 아직도 내 마음에 고인 눈물만큼 내 나라의 지난 역사를 담은 맑은 호수가 깊지만, 난 그것을 아이들에게 다 비추어 보여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자괴감이 크다.
내가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분명 나는 무엇을 했다 말한 시간들이다. 그러나 돌아서 날 보면 이곳 고려인들에게 그리고 새 꿈을 꾸며 자라나갈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내가 이것을 했다 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한 나라의 말을 20개월 여 만에 터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무리이지만, 문화나 역사… 정말 난해하고 어려운 현실이다. 커다란 벽을 알면서 시작한 나의 일이지만, 그 벽에 갇힌 심정으로 다시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는 것 같아 서글프다. 어딘가 낯선 곳에서 헤매고 있던 내 나라의 아이들과 가족들이었던 그들이다. 이제 그들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작별의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고인 눈물이 맑고 맑은 호수처럼 그들에게 비추어질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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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자랑만 하고 숟가락을 주지 않은 것 같다. 멋진 미래를 자랑질만 하고 돌아선 선생님은 아닌가? 너희들과 나는 동족이다 그러나 너희들과 나는 선 자리가 다르다며 등을 돌리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 주룩주룩 내리는 것은 비만이 아니다. 내 마음에 그들을 담았다. 그들이 선 자리가 마른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돌아서는 사람에게 자유로움이란 없다. 내 모자람에 탄식이 깊어지는 날이다. 내 능력 밖의 일에 안타까운 마음이 클 뿐이다.
언젠가 그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겠지! 막연하지만 아이들에 기대를 두고 난 떠나야 한다. 다시 내 나라로 난 낯선 길을 떠난다. 날 익숙하게 보듬어 주었던 먼 세월의 역사 속에 현재의 아이들이 내게 손짓을 한다. 잘 가요.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또 봐요라는 인사에 답이 옹색하다. 하지만 그래 알았어!라고 답을 하는 내가 비겁한 것은 아닌가? 깊고 깊은 자괴감이 반복되며 날 괴롭힌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그들은 별빛처럼 빛을 밝히며 반짝이고 있을 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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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고려인과 고려인의 미래가 되어 빛날 어린 학생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고백한다. 고려인 여러분과 나의 어린 학생들은 내 마음 속에서 또 다른 빛으로 날 살리며 살아날 것입니다. 내일의 만남 후로 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예빠토리야를 떠난다. 그리고 키예프로 다시 인천공항으로 그리고 또 다른 꿈속으로 걸어가리라. 오늘 짐을 꾸려 한국으로 EMS를 보냈다. 정말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두서없고 가감없이 지내온 시간의 기록들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 관심과 격려에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이렇게 저의 기록들이 제가 살면서 저를 밝히며 다가올 날들이란 생각을 하면서 예빠토리야에서 보내는 마지막 소식을 정리합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