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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고려인에게 바치는 최초의 한국인 시집

  • 김형효
  • 조회 4819
  • 2011.01.24 08:16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오늘의 문학사 간> 표지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번역본을 함께 묶은 시집이다.

김형효 제4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 한국어, 러시아어판 출간

저자가 직접 쓰는 자기 시집의 출간 소식을 어찌볼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네 문화가 자기 자랑삼는 일에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필자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며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의 시집에 직접 책소개를 쓰는 데 대해 독자들의 이해가 있으시기 바란다.

필자는 시를 쓸 때마다 반성문을 쓰는 느낌이다. 세상에 첫 발을 딛던 16세 청소년기부터 지금껏 불화 속에 살고 있다. 철들지 못한 미숙아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세상과의 불화를 뛰어넘는 운명의 요구가 있었을까?

필자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주신 김규동 선생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시인은 발명가 에디슨이어야 한다." 사실 그 말씀을 듣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게 가혹한 채찍을 휘두르시는 노구의 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은 거역할 수 없었고, 내게 깊은 공감 속에 각인되었다. 그 후 어느 곳에 있더라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시집 "어느 겨울밤 이야기"에 표지 글에서도 선생님께서는 세상과 싸움질하는 필자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셨다. 불화가 사라지면 내 존재 의미조차 없어질 것처럼 난 불화를 즐기나보다. 그러니 나를 형성해 온 주변 사람의 고생이 많을 듯하다. 난 항상 지인들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겪는 현실의 불화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숱한 노동 현장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한 두 사람 근무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사업주에 의해 일방 무시되어도 좋은 처지였다. 내 불화의 시작은 그런 현장에서 참고 인내하기보다 부딪혀 싸우는 처지로 살아왔다. 내 삶의 징검다리가 생겼다. 그것은 문학이었다. 시를 읽고 쓰는 과정 속에서다. 시를 쓰며 분을 삭이고 명상의 경험도 가졌다.

모자람을 인식해가는 과정은 더 많은 지적호기심으로 발전해온 듯하다. 그것은 다방면적이었다. 역사, 문화, 정치, 경제적 흐름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또 다른 불화도 보게 되었다. 지금도 그 커가는 불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끈질김을 통해 이룬 성과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은 끈질기게 부딪히는 사람에게 자중을 청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우크라이나의 겨울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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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크첸코 대학내 한국어 관련 전시대 맨 아래 왼편에 한국 시인으로 최초의 번역시집인 김소월 시집이 보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학서 등이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 김형효
icon_tag.gif세크첸코 대학내 한국어 관련 전시대

필자가 처음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지난 2009년 3월 4일이다. 그때만 해도 이곳에 공식적으로 3만5천여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승철 시인의 부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 시인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부탁이 아니라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에 곧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인 시인은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은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장으로 계신 고려인협회장이신 강정식 교수님을 통해 확인했다.

 

  천년의 명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