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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의 민들레는 이제 지천의 홀씨로 가득하다.

  • 김형효
  • 조회 3723
  • 2009.05.09 21:32

우크라이나 통신 14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더니 니꼴라예프로 돌아온 5월 3일부터는 날마다 비가 내린다. 아마도 장마철인 모양이다. 봄이 제트기처럼 빠른 속도로 왔다가 빠른 속도로 여름과 장마철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여전히 수도꼭지에 찬물을 적시면 손은 얼음장이 되는 데도, 바깥 날씨는 찬란한 봄을 건너 여름을 향해 속사포처럼 가고 있는 느낌이다. 불과 한 달을 건너 여름으로 모든 꽃이 한 달 사이에 길게 피었던 것처럼 찬란하기만 하더니 이제 꽃잎이 종류별로 차례로 줄을 서서 지고 있다. 지천의 민들레는 이제 지천의 홀씨로 가득하다. 난 시골 출신인데 이렇게 많은 민들레 꽃밭과 홀씨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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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 길을 몇 차례 노을을 안고 걸었다. 거기에서 난 사색도 품었고 또 그곳을 걸어볼 생각이다.

 

삶이 버거운 이들에게 "민들레처럼"은 하나의 위안이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도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그런 마음의 노래하나 부르고 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립을 겪어가며 사는 것이란 생각을 뒤늦게 철들어가는 난 생각한다. 그래 그런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것이었던가? 사실 난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처럼을 노래할 때, 철없이 무덤덤하고 하지만 정말 그런 위안이 필요한 상태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아픔을 모르고 살던 그 아프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 아픔을 건너뛴 후, 그 아픔을 공유하지도 못해서 아쉬운 이들이 있다. 내가 아픔을 몰라서 타인이 그 아픔을 겪는 것을 도무지 알지 못한 바보같은 시절이다. 무섭게 철들어버린 철부지 40대 중반이다. 아! 어쩌랴!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추억의 과거여! 이제라도 타인의 아픔을 찬찬히 보면 내 아픔이 있는지 체감은 하도록 해야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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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을 피웠다가 이제 홀씨로 남은 민들레! 저 홀씨도 또한 꽃처럼 아름다웠네. 오늘은 어버이 날인데 우리의 부모님들도 저렇게 앙상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셨던가?

 

오늘은 대학에 시험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교무실 문을 연다기에 느긋하게 출근하는 대신 한글 자모판을 만들었다. 물감을 사고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화선지에 색색이 붓을 들고 글씨를 써갔다. 어린 시절 꿈 많을 소년 시절에도 이런 호사를 가져본 적이 없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붉은색 글씨, 노란색 글씨, 녹색, 그리고 하늘색 등등으로 혼자서 맞는 학예회다. 어쩌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자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애당초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도 몰래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외면하며 일부러 피해갈 일은 아니고 즐길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름 멋들어지게 쓴다고 썼는데, 좀 어색하기도 하고 무리해서 어수선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나름 모양 있게 만들어 교무실 벽장식을 했다.

이제 내가 마음먹었던 대로 이제는 교무실을 오가는 학생들은 한글의 자모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먼저 교무실에 모든 교수들이 날마다 보게 된다. 처음 장식을 하려고 벽에 긴 화선지에 쓴 한글 자모판을 테이프를 이용해 붙이고 있는데 반응이 온다. 교무실에 있던 갈리나 선생이 맨 먼저 하는 인사말을 묻는다. 나는 곧 안녕하십니까?를 알려주었고 곧 이어지는 질문은 헤어질 때 인사말로 러시아어로 ДО СВИДНИЯ! : 다 스비다니야!(다시 만나요)를 묻는다. 나는 곧 또 만나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 라고 가르쳐 주었다. 뜻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곧 잘도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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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니다. 철부지한의 웃음이 기쁨으로 보이시나요? 저도 꽃이 되려나 봅니다. 철부지꽃~!

 

조금 있다가는 조교 알라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또 만나요. 등 정말 기초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글 즉 한국어를 배우는 한 걸음의 시작이다. 그들이 알고 있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나의 계획대로 그들에게 한글의 단맛을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한글의 자모에 영문 표기 발음을 적었다. 그들도 읽어낼 수 있도록......, 학생이 없으면 학생을 만들어서 가르쳐 가야하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다. 그래야만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훗날 그것이 결실의 한 축이 되어 주리라. 난 믿어본다.

이제 기초적인 한글 어머니, 아버지, 동생, 오빠, 누나, 그리고 친구와 이웃, 학교와 선생님, 많은 먹거리 일상의 필수적인 언어들을 가르쳐 나갈 생각이다. 그것은 교무실 직원들을 시작으로 가르치는 과정이 될 것이고 그런 과정은 내가 만들어가는 교재 개발에 참고할 사항들이 될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하게 내리더니 멈추고 그러다가 다시 내리고......, 비가 멈춘 틈을 타 버스에 올랐다. 바로 학교 앞에 정류장이 있고 아파트 앞에서 서니 다행이다. 3시에 학교에 왔다가 4시 30분에 퇴근이다. 오늘은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기로 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 교수들의 퇴근과 출근은 자유롭다. 그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학생들은 더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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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덩달아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지 무지개를 띄웠습니다. 저 길을 가며 내리던 비를 맞으면서 저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무지개를 근간에는 보지 못했지요. 내 고향, 그리고 한국에서는......,

 

집에 갔더니 집 주인의 딸 이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인터넷 설치 기사가 도착하고 나의 협력자인 나탈리아가 함께 왔다. 그녀의 아파트는 내가 사는 곳과 걸어서 15분 이내 거리다. 하지만, 일부러 와주었으니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터넷을 연결하고 접속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니 눈을 뜬 느낌이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인터넷의 노예가 된 느낌이지만, 내가 가고 볼 공간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문명의 혜택인가? 때로 무력을 느끼게도 되지만 말이다. 모든 문명적인 것에 노예가 되지 말자. 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외면도 말자. 그 길이 바른 길인지 그른 길인지는 내가 어떻게 살고 얼마나 좋은 일상을 위해 투자하느냐가 노예적 삶인지 인간적 삶인지도 결정해주리라. 그렇게 인터넷 접속을 마친 후 한국의 형제들과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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