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같으면 너무나 좋아할 황금 휴일이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 금방 온 내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우크라이나는 겹치는 연휴가 많다. 만약 국경일이나 명절로 쉬는 날이 일요일이나 토요일로 겹치면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서 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 반가운 연휴가 아니다. 더구나 일주일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지낸 후 하루의 일상은 낯설다. 연휴나 다름없는 날들이었지만, 눈물로 지낸 날들은 휴식이 아니고, 오히려 고통이 가중되었다. 슬픔을 이야기 할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언어구사가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조차 어렵다. 마치 감옥 생활 같은 일주일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있더라도 나름 의미 있게 보낸다면 한국 생활과 뭐가 다르겠는가? 집에 갇힌 것이 아니라 집에서 일을 하는, 밀린 일이 좀 있어서 그것을 보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종일 교재개발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한국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가끔은 번역기를 통해서 단어 공부도 하였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언어! 회화가 안 되는 사람이 만드는 교재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순수한 일반인이 가장 하고 싶은 말, 꼭 필요한 말들을 찾는 것이다. 하고 많은 말 중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에 꼭 필요한 그러니까 필수 생활 언어다. 억지로라도 일상으로 진입하려고 종일토록 몸부림을 쳤다. 나는 지금 낯선 니꼴라예프에서 혼자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되었다. 그러니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치 사냥개처럼 필요한 말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내 경험을 중심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그 자료를 만들었다. 100개의 문장을 만들어서 한국어로 음을 달고 러시아어로 음을 달았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러시아어를 읽으면 러시아어가 되는 것이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CIS(구 소련연합에서 독립한 나라들)국가 사람들은 러시아어로 읽으면 한국말이 되도록 한 것이다.
하루 종일 문장을 만들고 음가를 찾아 정리하느라 의자에서 허리를 떼지 않고 일을 마쳤다. 만드는 김에 숫자 세기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일, 이, 삼..., 하나, 둘, 셋..., 러시아어로는 아진, 드바..., 빼르이, 브또르이..., 문장을 만들면서 성취감에 홀로 즐거웠다. 후일 혹여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이 이곳에 오겠다고 한다면 나는 이 자료를 이메일로 보낼 것이다. 그 어떤 교재보다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 나갈 것이다. 100개의 문장 중에는 간단한 단어도 섞여 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90여개 문장 중 필수적인 단어가 일부 포함되었다. 하지만 나는 300문장 500문장에 도전할 생각이다. 허리가 아프다. 나는 출근 할 때 교무실 교수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10여부를 복사하였다.
6월로 접어들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2년이라는 장기 체류를 기약하고 와서 그런지 나랏일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더구나 삼천리금수강산이 슬픔에 잠긴 마당 아닌가? 조국은 아픔으로 슬픔에 젖어 있고, 역사의 아픔이 기억되는 날들이 연속되고 있다. 내게는 나라 안에 있을 때보다 가중되는 아픔이다. 사람들은 숫자의 기억에 연연하며 살아간다. 특히 역사에 맞닿으면 그것은 아프거나 기쁨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숫자의 올가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이 만들어놓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에 노예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덫에 걸려 자유롭지 못하니 참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종일토록 작업을 하며 이곳 시간 밤을 맞았다.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난감하다. 연휴 끝에 근처에 사는 학생 이랴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근처를 걸을 생각으로 동반을 청하려던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랴는 지금 다른 도시에 가 있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오면 한 번 만나자고 말했다.
내게는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 혼자 지내며 슬픔에만 잠겨 있었으니 더욱 더 그렇다. 내게는 그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현지인이다. 통화가 끝나고 운동도 할 겸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다. 천천히 걸으며 우거진 신록을 바라보았다. 여름날이다. 마트에 기록된 환율표를 보았더니 환율에 많은 변화가 많다. 필자가 우크라이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환율은 100달러에 860그리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755그리밴이다. 휴일이면 일상보다 버겁다. 자기 개발이라는 취지에서 무엇을 하려도 아직 마땅한 대응을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는 수 없다. 계속 러시아 강의라도 반복해서 들어야지 별 수가 없다.
한국의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었다. 18일은 현대사의 잊을 수 없는 아픔인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다. 올해는 또 다른 아픔 하나가 추가되었다. 전직 대통령이 바윗돌에 몸을 던져 서거하였다. 정략에 상관없이 아픈 것이다. 가슴을 조여 오는 아픔이다. 그렇게 가정의 달은 아프게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누구는 울고 누구는 상관없이 웃고 있다. 누구는 고통에 몸서리를 치는 데 누구는 그 과실(?)로 얻은 허명과 재력으로 그들 앞에 허장성세를 보여주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정의란 무엇일까? 낯선 나라 우크라이나의 시인 쉐브첸코가 이런 불균형과 부정에 대해 "신은 없다"라며 가슴 아파하는 시를 썼던 것을 보았다. 때때로 필자도 그런 질문을 했던 사람이다. 물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1840년대의 시인!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는 제 자리 걸음인가? 아프다.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낙관주의자여야 하나보다. 처절한 눈물로 희망을 키워가고 세상을 희망의 영역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 시인이어야 하는가? 아니 비단 시인뿐이겠는가? 인간이 있는 한 결국 인간이 희망을 만든다고 믿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