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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제단에 바친 목숨... 강희남 목사님 자결!

  • 김형효
  • 조회 3456
  • 2009.06.11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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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제단에 바친 목숨... 강희남 목사님 자결!
우크라이나 통신 16
00031322.JPG김형효 (tiger3029)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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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여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어느 곳에서 유래한 말인 줄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읊어대는 사람의 말이다. 마치 격언 같기도 하고 속담처럼 들리게도 되는 이 말 뜻을 거스르고 사는 게 요즘 필자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낯선 나라에 온 지 어느 덧 3개월이 지났지만, 전직 대통령 서거 후의 하루하루는 감옥소의 수인 같다. 감옥의 수인이 어느 날에나 밝은 햇살을 바라보게 되나 출옥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마 필자의 태도가 그런 것은 아닐까?

 

조석으로 조국의 뉴스에 눈 열고 귀 열고 그래서 아프고 답답한 날들이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조국이다. 그래 조국이 평화롭지 않은 가운데 내 삶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조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더 간절하다.

 

어제는 모처럼 월드컵 축구 선수들의 승전보를 알리는 소식에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려온 뉴스는 통일 운동의 선봉에서 평생을 살다 가신 강희남 목사님께서 자결하셨다는 뉴스다. 침울한 뉴스다. 강희남 목사님은 가시면서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평생을 몸으로 실천하시며 살다가신 강희남 목사님을 떠올리며 독립운동가 고 김약연 선생께서 남기신 유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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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 - 윤동주 시인은 김약연 선생의 조카다.
ⓒ 김형효
icon_tag.gif김약연

김약연 선생은 고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지이신 고 문재린 목사님 등과 함께 길림시 용정에서 독립운동을 이끄셨던 분으로 시인 윤동주는 선생의 조카다. 필자는 1998년 길림시 용정의 윤동주 선생 생가에 갔다가 고 김약연 선생의 유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선생이 남기셨다는 유언이다. 선생께서 운명하시기 전 누군가 남기실 말씀을 여쭈었을 때 선생께서는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실천과 함께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들을 세상은 존경하여 모시는 것이리라.

 

선생의 유언은 내 심장에 각이 박히듯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강희남 목사님께서는 89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길을 열어내시려는 마지막 분투로서 자신의 몸을 내놓은 것이리라. 더구나 평생을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시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민족이 공동 번영해나가기를 고대한 살아있는 역사이셨던 분으로서는 그만큼 그런 욕망도 처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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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 목사님 독일 방문시 한 교포의 집 근처에서
ⓒ 김형효
icon_tag.gif강희남

요즘처럼 실천에 장애가 많고 버거운 현실에서 이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야한다는 절박하고 뼈아픈 고통 또한 컸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거나 조국을 떠나서 조국을 바라보는 한 민족이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94세의 노 시인 이기형 선생님께서는 평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는 말씀으로 세상의 복잡한 미사여구를 마다하고 살고 계신다. 선생께서는 "통일이 오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을 지키셔야 한다며 요즘도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신다. 선생님을 잘 아는 분이 아니면 구순이 넘은 시인을 거리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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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씀중 깊은 생각에 잠기신 독립운동가 시인 이기형 선생님
ⓒ 김형효
icon_tag.gif이기형

흔히 말하는 노인은 세상을 오래 사신 분들로 노쇠한 분들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분들은 세상사에 산 증인들이시다. 즉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간문화재로 치듯이 한다면 정치나 역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분들인 것이다. 더구나 앞장서서 그 시대의 아픔을 건져 올려 치료하고 구제하려고 몸을 바쳐 오신 분들이라면 새삼스럽게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분들에 순정 가득한 조국 사랑과 민족애는 그 누구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그분들은 살아오시면서 조국 잃은 슬픔도 분단도 직접 경험하셨기에 민족의 통일과 자주역량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생전의 소원으로 여기신 분들이시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곧잘 한다. 그런데 우리네 저자거리에서는 너무나 모르며 아는 소리들을 많이 한다. 역사와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세상사람 모두가 정치에 박사인 것이 한국 사회의 병폐라면 병폐이리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모르는 만큼 그 소리가 크고 시끄러운 것이 한국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생각된다. 가을날의 낙엽 지듯이 세상과 명을 달리하시는 분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흔히 말하는 분단 이후 세대들이 모르는 실재하는 우리네 역사를 몸 안에 간직하고 사시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세상의 흉흉한 인심 탓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둥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분들을 보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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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민영 선생님
ⓒ 김형효
icon_tag.gif민영

시인 민영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발 밑의 뿌리를 보라!"는 말씀을 곧 잘 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색해야할 많은 말씀들이 앞에서 소개한 몇몇 선생님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말씀들인 듯하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아니라 역사가, 민족의 유산이 사라져 가는 듯해서 너무나 안타깝고 눈물겨운 날들이다. 어찌하오리까? 한탄으로만 보낼 수 있는 세월은 아닌데... 하는 수없이 먼 길 떠난 나그네 신세인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 없는 가혹을 가슴에 안고 중얼거린다.

 

달도 별도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세월이다. 하늘을 바라보다 삶이 버거운 날은 그리운 것들을 떠올렸다. 사춘기 추억 속에 함께 묻어둔 그리움을 떠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 멀리 떠나서 안을 바라다 볼 때는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만 살아날 줄 알았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 이 시절은 아프기만 하다. 안을 들여다보아도 밖을 보아도 그저 중얼거림만 늘어가는 세월이다. 하지만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중얼거림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세상사를 생각하다 슬픔에 잠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세상은 나의 중얼거림보다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병들어버렸다. 그러다 나는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하늘에 달도 별도 아픔인 것을, 공중을 나는 새도 아픔인 것을, 꽃에서 꿀을 따는 벌도 병들어 가는 것을, 꽃을 나는 나비도 병들어 가는 것을, 지금 병들어가는 조국에서는... 그렇게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반짝반짝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행동하라! 죽은 양심을 살려내라! 살아 있는 자여!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죽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부드러운 사랑의 감촉을 느끼며 읊어야만 시가 아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시가 일상에서 아름답게 읊어지려면 자유와 평화가 넘실거릴 때만 가능하다. 그것이 돈으로 넘실거리고 자본이 팽창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예전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노래하라,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라,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고 행동하지 않고 춤출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 됩니다.

2009.06.08 08:5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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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제단에 바친 목숨... 강희남 목사님 자결!
우크라이나 통신 16
00031322.JPG김형효 (tiger3029)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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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여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어느 곳에서 유래한 말인 줄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읊어대는 사람의 말이다. 마치 격언 같기도 하고 속담처럼 들리게도 되는 이 말 뜻을 거스르고 사는 게 요즘 필자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낯선 나라에 온 지 어느 덧 3개월이 지났지만, 전직 대통령 서거 후의 하루하루는 감옥소의 수인 같다. 감옥의 수인이 어느 날에나 밝은 햇살을 바라보게 되나 출옥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마 필자의 태도가 그런 것은 아닐까?

 

조석으로 조국의 뉴스에 눈 열고 귀 열고 그래서 아프고 답답한 날들이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조국이다. 그래 조국이 평화롭지 않은 가운데 내 삶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조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더 간절하다.

 

어제는 모처럼 월드컵 축구 선수들의 승전보를 알리는 소식에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려온 뉴스는 통일 운동의 선봉에서 평생을 살다 가신 강희남 목사님께서 자결하셨다는 뉴스다. 침울한 뉴스다. 강희남 목사님은 가시면서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평생을 몸으로 실천하시며 살다가신 강희남 목사님을 떠올리며 독립운동가 고 김약연 선생께서 남기신 유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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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 - 윤동주 시인은 김약연 선생의 조카다.
ⓒ 김형효
icon_tag.gif김약연

김약연 선생은 고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지이신 고 문재린 목사님 등과 함께 길림시 용정에서 독립운동을 이끄셨던 분으로 시인 윤동주는 선생의 조카다. 필자는 1998년 길림시 용정의 윤동주 선생 생가에 갔다가 고 김약연 선생의 유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선생이 남기셨다는 유언이다. 선생께서 운명하시기 전 누군가 남기실 말씀을 여쭈었을 때 선생께서는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실천과 함께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들을 세상은 존경하여 모시는 것이리라.

 

선생의 유언은 내 심장에 각이 박히듯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강희남 목사님께서는 89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길을 열어내시려는 마지막 분투로서 자신의 몸을 내놓은 것이리라. 더구나 평생을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시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민족이 공동 번영해나가기를 고대한 살아있는 역사이셨던 분으로서는 그만큼 그런 욕망도 처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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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 목사님 독일 방문시 한 교포의 집 근처에서
ⓒ 김형효
icon_tag.gif강희남

요즘처럼 실천에 장애가 많고 버거운 현실에서 이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야한다는 절박하고 뼈아픈 고통 또한 컸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거나 조국을 떠나서 조국을 바라보는 한 민족이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94세의 노 시인 이기형 선생님께서는 평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는 말씀으로 세상의 복잡한 미사여구를 마다하고 살고 계신다. 선생께서는 "통일이 오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을 지키셔야 한다며 요즘도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신다. 선생님을 잘 아는 분이 아니면 구순이 넘은 시인을 거리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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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씀중 깊은 생각에 잠기신 독립운동가 시인 이기형 선생님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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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노인은 세상을 오래 사신 분들로 노쇠한 분들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분들은 세상사에 산 증인들이시다. 즉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간문화재로 치듯이 한다면 정치나 역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분들인 것이다. 더구나 앞장서서 그 시대의 아픔을 건져 올려 치료하고 구제하려고 몸을 바쳐 오신 분들이라면 새삼스럽게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분들에 순정 가득한 조국 사랑과 민족애는 그 누구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그분들은 살아오시면서 조국 잃은 슬픔도 분단도 직접 경험하셨기에 민족의 통일과 자주역량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생전의 소원으로 여기신 분들이시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곧잘 한다. 그런데 우리네 저자거리에서는 너무나 모르며 아는 소리들을 많이 한다. 역사와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세상사람 모두가 정치에 박사인 것이 한국 사회의 병폐라면 병폐이리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모르는 만큼 그 소리가 크고 시끄러운 것이 한국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생각된다. 가을날의 낙엽 지듯이 세상과 명을 달리하시는 분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흔히 말하는 분단 이후 세대들이 모르는 실재하는 우리네 역사를 몸 안에 간직하고 사시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세상의 흉흉한 인심 탓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둥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분들을 보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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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민영 선생님
ⓒ 김형효
icon_tag.gif민영

시인 민영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발 밑의 뿌리를 보라!"는 말씀을 곧 잘 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색해야할 많은 말씀들이 앞에서 소개한 몇몇 선생님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말씀들인 듯하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아니라 역사가, 민족의 유산이 사라져 가는 듯해서 너무나 안타깝고 눈물겨운 날들이다. 어찌하오리까? 한탄으로만 보낼 수 있는 세월은 아닌데... 하는 수없이 먼 길 떠난 나그네 신세인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 없는 가혹을 가슴에 안고 중얼거린다.

 

달도 별도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세월이다. 하늘을 바라보다 삶이 버거운 날은 그리운 것들을 떠올렸다. 사춘기 추억 속에 함께 묻어둔 그리움을 떠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 멀리 떠나서 안을 바라다 볼 때는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만 살아날 줄 알았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 이 시절은 아프기만 하다. 안을 들여다보아도 밖을 보아도 그저 중얼거림만 늘어가는 세월이다. 하지만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중얼거림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세상사를 생각하다 슬픔에 잠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세상은 나의 중얼거림보다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병들어버렸다. 그러다 나는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하늘에 달도 별도 아픔인 것을, 공중을 나는 새도 아픔인 것을, 꽃에서 꿀을 따는 벌도 병들어 가는 것을, 꽃을 나는 나비도 병들어 가는 것을, 지금 병들어가는 조국에서는... 그렇게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반짝반짝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행동하라! 죽은 양심을 살려내라! 살아 있는 자여!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죽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부드러운 사랑의 감촉을 느끼며 읊어야만 시가 아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시가 일상에서 아름답게 읊어지려면 자유와 평화가 넘실거릴 때만 가능하다. 그것이 돈으로 넘실거리고 자본이 팽창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예전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노래하라,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라,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고 행동하지 않고 춤출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 됩니다.

2009.06.08 08:5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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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여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어느 곳에서 유래한 말인 줄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읊어대는 사람의 말이다. 마치 격언 같기도 하고 속담처럼 들리게도 되는 이 말 뜻을 거스르고 사는 게 요즘 필자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낯선 나라에 온 지 어느 덧 3개월이 지났지만, 전직 대통령 서거 후의 하루하루는 감옥소의 수인 같다. 감옥의 수인이 어느 날에나 밝은 햇살을 바라보게 되나 출옥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마 필자의 태도가 그런 것은 아닐까?

 

조석으로 조국의 뉴스에 눈 열고 귀 열고 그래서 아프고 답답한 날들이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조국이다. 그래 조국이 평화롭지 않은 가운데 내 삶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조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더 간절하다.

 

어제는 모처럼 월드컵 축구 선수들의 승전보를 알리는 소식에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려온 뉴스는 통일 운동의 선봉에서 평생을 살다 가신 강희남 목사님께서 자결하셨다는 뉴스다. 침울한 뉴스다. 강희남 목사님은 가시면서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평생을 몸으로 실천하시며 살다가신 강희남 목사님을 떠올리며 독립운동가 고 김약연 선생께서 남기신 유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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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 - 윤동주 시인은 김약연 선생의 조카다. ⓒ 김형효 김약연

 

김약연 선생은 고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지이신 고 문재린 목사님 등과 함께 길림시 용정에서 독립운동을 이끄셨던 분으로 시인 윤동주는 선생의 조카다. 필자는 1998년 길림시 용정의 윤동주 선생 생가에 갔다가 고 김약연 선생의 유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선생이 남기셨다는 유언이다. 선생께서 운명하시기 전 누군가 남기실 말씀을 여쭈었을 때 선생께서는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실천과 함께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들을 세상은 존경하여 모시는 것이리라.

 

선생의 유언은 내 심장에 각이 박히듯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강희남 목사님께서는 89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길을 열어내시려는 마지막 분투로서 자신의 몸을 내놓은 것이리라. 더구나 평생을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시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민족이 공동 번영해나가기를 고대한 살아있는 역사이셨던 분으로서는 그만큼 그런 욕망도 처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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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남 목사님 독일 방문시 한 교포의 집 근처에서 ⓒ 김형효 강희남

 

요즘처럼 실천에 장애가 많고 버거운 현실에서 이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야한다는 절박하고 뼈아픈 고통 또한 컸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거나 조국을 떠나서 조국을 바라보는 한 민족이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94세의 노 시인 이기형 선생님께서는 평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는 말씀으로 세상의 복잡한 미사여구를 마다하고 살고 계신다. 선생께서는 "통일이 오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을 지키셔야 한다며 요즘도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신다. 선생님을 잘 아는 분이 아니면 구순이 넘은 시인을 거리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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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씀중 깊은 생각에 잠기신 독립운동가 시인 이기형 선생님 ⓒ 김형효 이기형

 

흔히 말하는 노인은 세상을 오래 사신 분들로 노쇠한 분들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분들은 세상사에 산 증인들이시다. 즉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간문화재로 치듯이 한다면 정치나 역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분들인 것이다. 더구나 앞장서서 그 시대의 아픔을 건져 올려 치료하고 구제하려고 몸을 바쳐 오신 분들이라면 새삼스럽게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분들에 순정 가득한 조국 사랑과 민족애는 그 누구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그분들은 살아오시면서 조국 잃은 슬픔도 분단도 직접 경험하셨기에 민족의 통일과 자주역량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생전의 소원으로 여기신 분들이시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곧잘 한다. 그런데 우리네 저자거리에서는 너무나 모르며 아는 소리들을 많이 한다. 역사와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세상사람 모두가 정치에 박사인 것이 한국 사회의 병폐라면 병폐이리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모르는 만큼 그 소리가 크고 시끄러운 것이 한국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생각된다. 가을날의 낙엽 지듯이 세상과 명을 달리하시는 분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흔히 말하는 분단 이후 세대들이 모르는 실재하는 우리네 역사를 몸 안에 간직하고 사시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세상의 흉흉한 인심 탓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둥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분들을 보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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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민영 선생님 ⓒ 김형효 민영

 

시인 민영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발 밑의 뿌리를 보라!"는 말씀을 곧 잘 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색해야할 많은 말씀들이 앞에서 소개한 몇몇 선생님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말씀들인 듯하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아니라 역사가, 민족의 유산이 사라져 가는 듯해서 너무나 안타깝고 눈물겨운 날들이다. 어찌하오리까? 한탄으로만 보낼 수 있는 세월은 아닌데... 하는 수없이 먼 길 떠난 나그네 신세인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 없는 가혹을 가슴에 안고 중얼거린다.

 

달도 별도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세월이다. 하늘을 바라보다 삶이 버거운 날은 그리운 것들을 떠올렸다. 사춘기 추억 속에 함께 묻어둔 그리움을 떠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 멀리 떠나서 안을 바라다 볼 때는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만 살아날 줄 알았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 이 시절은 아프기만 하다. 안을 들여다보아도 밖을 보아도 그저 중얼거림만 늘어가는 세월이다. 하지만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중얼거림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얼거림으로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세상사를 생각하다 슬픔에 잠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세상은 나의 중얼거림보다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병들어버렸다. 그러다 나는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하늘에 달도 별도 아픔인 것을, 공중을 나는 새도 아픔인 것을, 꽃에서 꿀을 따는 벌도 병들어 가는 것을, 꽃을 나는 나비도 병들어 가는 것을, 지금 병들어가는 조국에서는... 그렇게 아침 이슬 같고 밤하늘 별빛 같은 반짝반짝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행동하라! 죽은 양심을 살려내라! 살아 있는 자여!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죽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부드러운 사랑의 감촉을 느끼며 읊어야만 시가 아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시가 일상에서 아름답게 읊어지려면 자유와 평화가 넘실거릴 때만 가능하다. 그것이 돈으로 넘실거리고 자본이 팽창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예전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노래하라,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라,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고 행동하지 않고 춤출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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