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이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 면적보다 훨씬 넓은 나라다. 한반도의 3배 그러니까 어림잡아 남한의 6배는 된다. 동서남북으로 드넓은 벌판이 있고 우크라이나 전역을 동서로 나눈 것처럼 남북을 흐르는 긴 강이 있다. 그 강은 흑해까지 뻗어 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스칸디나비아 바다에서 흑해로 흐른다고 하면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해가 쉬우리라. 그 긴 강이 드네프르강인데 그 강은 수도 키예프도 동과 서로 가르며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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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머물고 있는 니꼴라예프는 남서쪽이다. 이곳에도 이미 소개한 바 있는 것처럼 풍요로운 벌판과 넓은 강줄기가 흐른다. 그리고 그 강은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그 강을 따라 물길이 이어져 터어키로 가서 유럽이나 중동지역으로 이탈리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이 나라 우크라이나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대륙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외침을 받은 이유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란 설명을 맨 처음 들은 것은 국사시간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바로 우크라이나도 그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많은 침략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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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터키, 몽고, 러시아... 광활한 영토에 풍요가 넘치는 강이 있어 그저 사람 살기에 천국이다. 그렇게 좋은 이 나라가 그토록 시달림을 받았던 것은 비옥한 영토와 지정학적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외침 속에서 시인 쉐브첸코가 우크라이나의 풍요에 대해 수차례 노래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풍요를 상징하는 내륙의 강을 노래했으리라. 그리고 해양문화도 병행되는 이 나라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자원이 넘치는 나라다. 물질문명의 발달 이전의 이 나라가 문화적으로 풍성했던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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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필자는 우크라이나 해양문화의 중심지인 크림반도의 소도시인 예빠토리야로 간다. 얼마전 이곳 니꼴라예프에서 동물원에 갔다가 고려인 4세, 5세쯤 되 보이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난 그들 10여명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면 친근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한 사람도 한글을 몰랐다. 하지만, 그 중 한 아이의 할머니가 한국에 가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아이도 곧 한글을 배울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오랜 조국이 우리를 만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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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는 예빠토리야에 고려인 협회 사람을 내일 아침 만나기로 했다. 필자가 이곳에 와서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로 만나는 고려인이다. 정중한 마음으로 깨끗한 몸가짐으로 그를 만나 대화하리라. 손잡으리라. 아주 오래전 할머니, 할아버지의 혈맥을 따라...
나의 노래여(1847년)
나의 노래여 나의 노래여
나의 다정한 그대여
이 고난의 시간
날 버리지 마오
회색 날개 돋친 비둘기마냥
넓은 드네프르 강에서
이리로 날아오라.
이 거친 황무지에서
맨발의 키르기즈 사람들과
거닐어 보자구나.
그들은 가난하고 헐벗었지만
아직은 자유의 몸
하나님께 기도하나니
나에게 날아오라.
사랑하는 노래여.
나 그대를 아이마냥
조용한 속삭임으로 애무하리.
그리고 그대와 함께 눈물지으리.
*망명지에 있던 쉐브첸코가 사랑을 노래한 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신분적 차별 때문에 죽을 때까지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