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른 변화의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사계절
넓은 영토를 실감하는 것은 이제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처음 키예프에 발을 디딘 것은 겨울 끝자락이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키예프에서 니꼴라예프 그리고 예빠토리야를 거쳐
심페로폴을 지나 다시 키예프에 도착했다.
7개월 10일이라는 기간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가온다.
메마른 대지처럼 헐벗은 나목을 바라보면서 걷던 거리에는
생명포고라 할만큼 신비롭게 싹이 돋았다.
곧이어 꽃이 만개하고 꽃이 화려한 바람을 따라
잎을 날리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더니
이제는 다시 낙엽이 연분홍 색시처럼
그리고 선홍빛 입술처럼 붉은 핏빛처럼 그렇게 붉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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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와
이렇게 천지자연의 신비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나그네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무심한 세월이 가고 나라 안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한 해다.
마치 한 해를 마감짓는 시기에 서둘러 다가온 느낌을 주는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지는 날들이다.
필자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것은 지난 3월 4일이었다.
뮌헨을 경유한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세관검색을 마치고 현지에 선배단원들과
현지행정원의 안내를 받을 때만해도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었다.
다짐은 굳건했지만, 낯설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우크라이나다.
하지만 모든 단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들을 하면서 지내는 것을 보면
함께 온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내 모자람에 많은 노력을 하게 하는
재차 동기를 부여해주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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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키예프를 향하면서 크림한국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도시 심페로폴을 향했다.
현지에는 이미 1년 6개월 활동한 선배단원이 있다. 필자는 키예프행 기차가 저녁시간이라서 선배단원에게 시내 안내를 부탁했다.
기차역 주변은 혼란스럽고 복잡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오면서 улц ким<김 거리>를 발견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 역사 유래를 알아볼 생각이다.
김씨 성을 가진 누군가를 기리는 거리이다.
얼마 전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서 우크베키스탄 한인 중에
김병화라는 분의 거리가 존재했던 우즈베키스탄 이야기를 접했다.
그런데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그것도 멀고 먼 크림반도의 수도인 심페로폴에서
"улц ким 울리짜 김(김 거리)"를 접하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1937년과 1938년에 버려졌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아픈 과거사가 다시 역사와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사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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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심페로폴의 한 건물의 기둥~!
뼈만 남은 건물을 빼대로 삼아 그 건물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런 그들의 건물 복원을 통한 역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배워서
우리의 동족인 고려인들의 과거사를 정리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상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정부와 그렇게 노력하는 동족의 삶이 있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심페로폴은 크림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도시이다.
그곳에 우리의 동족의 거리가 있다.
에빠토리야에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가 왜 그토록 자주 이곳을 오갔는지 알 것도 갔다.
이곳에서 고려인들은 쌀가루를 구하고 그 쌀가루로 찹쌀떡도 만들어먹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것을 알고 이어오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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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람들 생존을 위해 조국에서 떠났고
그 길로 조국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은 낯선 나라에서 강제로 이주당하고 버려졌던 사람들이다.
생면부지의 거리에서 만난 내 동족의 흔적에 사색이 깊어지는 나그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