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ХЕРСОН) 23일~25일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포들의 축제인 까레야다 2009년(КОРЕЯДА 2009ГОД)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지난 주말인 23일~25일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ХЕРСОН)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협회(회장 키예프외국어대 한국어과 교수 강정식) 주최로 헤르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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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고려인 참석자들은 각지에서 헤르손 인근의 고라 쁘리스탄(ГОЛА ПРИСТАНБ, 인구 1만의 작은 도시) 사나톨리(휴양소)에 모여들었다. 필자도 예빠토리야에서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고려인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출발하여 오후 1시에 도착하였다. 현장에서는 고려인 젊은 여성들이 행사 참석자들을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그들도 각 지역의 젊은 일꾼들이었다. 먼저 도착한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함께 한 오후 3시에 모든 참석자들이 고라 쁘리스탄의 중심지를 견학하였는데 도시라고 하기에는 정말 작은 지방이었다. 도시를 알리는 박물관이 있고 근교에는 넓은 강이 흘렀다.
다음 날인 토요일 24일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대회 리허설을 위해 행사가 열리는 헤르손으로 먼저 출발하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사나톨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토요일 오후 5시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고려인협회 회장인 강정식 교수의 개회사로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서 수도 키예프에서 주우크라이나 박노벽 대사님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이어서 현지의 우크라이나 관계 기관장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거의 모든 축사나 안내 방송, 사회는 러시아어로 진행돼, 고려인 행사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우크라이나의 국가가 연주되었고 곧이어 애국가가 들려오면서 비로소 고려인 행사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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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야다(КОРЕЯДА)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사회에서는 설날 축제와 함께 가장 성대한 행사라고 한다. 이번 가을에 열리는 축제 까레야다(КОРЕЯДА)는 문화 예술 행사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였다.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참석한다고 할 정도로 대표성이 있는 행사였다. 실제로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우크라이나 동서남북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고려인들이 참여하여 기예를 자랑하는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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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개막은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의 공연으로 시작되었으나 곧 한복의 아름다움과 함께 전통 춤사위들이 무대를 압도했다. 간간히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현대가요를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고려인들의 노래와 춤에 탄성과 경탄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장꼬이에서 왔다는 11세 여자어린이의 <여자이니까>란 노래를 들으면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노래를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성 가수보다도 뛰어난 감성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우리말도 꽤 잘 할 것처럼 느껴졌다.
부채춤과 화관무, 도라지, 사물놀이 등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사물놀이가 공연되어 리드미컬하고 박력 있는 공연을 기대했으나 아직은 세기가 없는 느낌이었다. 저들이 사물놀이의 흥을 몸에 담는다면, 그럴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 고려인 사회에 신명이 실려서 고려인들의 삶에도 더욱 활기 있는 삶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국기 태권도 시범이었다. 특히 남자 불량배를 물리치는 여성의 호신술을 보는 방청객들은 커다란 환호성을 지으면서 웃음을 지었다. 태권도 시범단은 코이카 사범 두 사람과 우크라이나 태권도 수련생 여섯 명의 합동 시범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몰라도 태권도를 알 정도로 우크라이나에서도 국기 태권도는 알아주는 운동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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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낯모르는 얼굴들이지만, 먼저 보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그들 모두의 모습이었고 인사가 끝난 후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삶이 어느 곳에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런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세상에는 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란 생각도 한다.
이번 행사에는 필자가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예빠토리야의 한글학교 두 어린이도 노래와 춤 공연을 펼쳤다. 필자는 또 한 번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마디 한국어도 하지 못하던 그들이 어느 틈에 그런 춤과 노래를 배웠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동족의 피에 동족의 문화,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가까이 중국 동포들의 공연을 보면서도 놀라웠지만, 이곳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은, 한국에서는 동포들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런 곳들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익히고 배우는 것은 물론 우리의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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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회가 끝난 25일 아침 70세를 넘긴 할머니를 만났다. 필자가 기거하는 방 앞 벤치에서 불편한 다리를 쉬어가는 길이었는데 그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잠시 후 그분의 딸인 김류드밀라라는 분이 합석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된장과 고추장을 다 만들어드신다고 해서 한글도 배우고 쓰시는지 여쭈었다. 필자는 그런 와중에 놀라운 말을 들었다. 도네츠크 인근에도 수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데 1000여 명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글 선생이 없어서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안타까운 소식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가서 몇 주일이라도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분들의 연락처를 받아두었다.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그곳에 찾아가 한글 자음과 모음 그리고 간단한 인사와 예절이라도 가르쳐주고 싶다. 필자는 요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라는 글귀를 써두고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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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 참여한 고려인들은 헤르손에서 1000km가 넘는 도네츠크, 그 인근의 옛 수도 하리코프, 현 수도 키예프, 우크라이나 남부의 니꼴라예프, 예빠토리야, 장꼬이, 심페로폴, 헤르손 등 고려인이 거주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참여했고 그들의 춤과 노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의 열악함을 생각하면 그 모습이 더욱 더 자랑스러웠다. 여성들의 부채춤이나 화관무는 그 화려함에 우크라이나 방청객들도 경탄을 자아내며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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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행사 후 인근의 가까운 문화유적지들을 둘러볼 생각이었으나 행사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어 후일로 여행을 미루고 일행과 함께 예빠토리야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는 이곳에서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먼거리 인근의 도시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 중 한 곳이 오데사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고국에 계신 많은 분들이 우크라이나 사회 극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에게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