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동포를 만나며 고민이 깊다
설 연휴에 크림 지역의 고려인이 모여살고 있는 두 도시를 찾았다. 한 곳은 크림의 수도인 심페로폴이었고, 다른 한 곳은 장꼬이(ДЖАНКОИ)라는 곳이다. 두 도시 모두 고려인 협회 15주년 행사를 찾았다. 이미 심페로폴 행사에 대해서 소개한 바 있다.
두 도시의 행사가 서로 다른 날 열려서 모두 찾을 수 있었다. 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예빠토리야의 고려인 협회장인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안내를 받아 행사에 참석했다. 이번 장꼬이는 크림 지역에서도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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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지낸 지 곧 일 년이 된다. 지난해 3월 4일에 우크라이나에 왔으니, 이제 보름 모자란 일 년이다. 이곳에 와서 유행가 제목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말처럼 정말 바보처럼 살았음을 실감한다. 그것은 나이 46세가 되도록 내 동족이 세상에 얼마나 살고 있는 지를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건성건성, 대략 몇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을 이제는 좀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특히 국가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자신의 동족이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조국은 그 통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런 생각을 지금에야 하면서 참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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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심페로폴에서 행사를 마치고 오던 길에 "한국인들은 왜 고려인들을 무시하는가?" 하는 기사를 본 한 분께서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없고 조금 자신보다 못한 틈만 보이면 그냥 무시하는 버릇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메일을 보내오셨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듯하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의 나이 어린 시절에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았다. 성적순으로 친구를 갈라 세운 적도 없고 경제력의 차이가 있다고 깊은 상처가 될 말들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장꼬이에서 돌아오면서 곧 기사를 작성하고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책이 길어졌다. 물론 필자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별 힘이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범위에서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느끼는 한계가 크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지적하는 모든 문제들은 우리의 공동체적 가치 속에서 그 이해를 넓히고 민족문제에 대한 하나의 가치가 정립되어야할 것으로 매우 큰 숙제다. 어쩌면 통일과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해보아야할 의미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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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되나?
낯선 나라에서 길 잃은 짐승(?)처럼 우리 민족이 살아가고 있다. 어제도 필자는 예빠토리야의 소수민족어 선생들과 시문화국 관계자들을 만났다. 지역의 정치인들까지 참석했다. 거기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을 접하며 또 다른 소외를 느꼈을 고려인들의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자신이 선 땅이 조국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서글플까? 그것도 자신의 조상도 성씨의 유래나 그 역사는 물론 문화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올바로 알지 못하고 그저 까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고려인)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껍데기만 고려인이라고 한탄하며 말하던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한탄을 때때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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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더욱 아픈 것은 어쩌면 자신의 종족들이 말하는 말버릇이 아닐까? 바로 우리다. 사실 그것은 비단 고려인에게만 행해지는 만행(?)은 아니다. 중국 동포에게도, 덜하지만 일본 동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하는 말이니 독자들께서 들었거나 무심결에 그런 말을 함께 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도 모르고 체면도 모르고 문화도 모르고 받으려고만 하는데 뭐 동포는 무슨 동포인가?"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체면도 모르고 문화가 다른 형제는 남인가?
이런 경우의 역지사지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그냥 기계적인 역지사지만으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편의주의적으로 역지사지하면 간단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결과만 초래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 숱한 세월 건너에서 온 사람들이 전혀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니 조국의 사람들은 그저 중국 동포도 일본 동포도 고려인도 사해의 모든 동포들이 생존이 가장 큰 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지금 그 자리에 살아준 것만으로 고마워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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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만들어주자 반가워하며 먹어보려 했던 그들, 떡국을 끓여 "우리 전통"이라고 말하자 "그러냐"면서 맛있게 먹으며 기뻐하는 그들, 우리 말 한 마디를 서툴게 하고서 "제대로 말했소!"라며 겸연쩍게 웃는 환갑이 넘은 사람들, 형제애를 말하는 시를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고려인 4세~5세 아이를 생각해보면 안 될까?
그리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 너머에서 서로 웃고 있는 민족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서로가 동포애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 어느 곳에서도 반길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마음자세로 살아간다면 아마도 우리가 우리를 쉽게 무시해버리는 요즘의 세태도 능히 극복되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