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빠토리야 고려인 창립5주년 행사 가져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낯선 나라의 생활 문화가 다르다. 사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경우라도 지역별 문화적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세대별 계층별로도 너무 다르고 그런 반증으로 도시의 아이들이 쌀이 쌀 나무에서 열린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비롯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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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사료관 빈 공간을 이용해서 그동안 7개월 동안 지내면서 찍었던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학생들의 수업장면과 예빠토리야 거주 고려인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태극기와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전시해놓았다. 23일 있었던 소수민족문화축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행사였지만, 나름 그 존재의미를 찾기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아쉬운 것은 고려인들의 참석율이 저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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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대부분 농사일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고려인들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하나의 농사짓는 계급처럼 칭하고 있었다. 사실 우크라이나 남부 대부분의 시골에 사는 고려인들은 그렇게 성실한 농사꾼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농촌 생활이긴 하지만 생활의 어려움은 없이 살고 있다. 근성있는 농사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은 조롱(?)처럼 일밖에 모른다고 말한다. 반면 고려인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마그자라고 낮추어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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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전날 김프롤리다 바실리예브나가 한복 두벌을 가림막에 설치하고 그 사이에 액자를 걸려고 해서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궁화라고 했다. 필자 눈에는 풀꽃이었는데 무궁화라고 걸려고 해서 아니라고 말해도 한사코 걸려고 한다. 다음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한복이 걸려잇었다. 하지만 예빠토리야 5주년이 새겨진 기념품에도 그 풀꽃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앞선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그냥 서둘러 일하는 습성에 정확하지 않은 일들을 마구해대는 것이다.
일욕심이 많은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답답하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가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이기도 한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문화는 배우려고 하지만 생활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많은 개입이 필요하다 나서서 생활문화를 배우려 하지 않으면 가르쳐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너무나 어려운 숙제를 마음속에 간직해야하는 지금이 어려운 시기처럼 느껴진다.
행사에는 러시아인과 따따르인들이 사절로 참여해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인근 도시인 심페로폴에서 온 고려인 아이가 한국 가요를 부르기도 했는데 발음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모든 것에 열정이 모자란 이곳의 고려인들을 보면서 자유로움에 탄복하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주고 가고 싶은 봉사자로서 시간이 모자라다는 한탄이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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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요일 수업에 나오지만, 그도 서너 명 많으면 대여섯 명이다. 마치 수업을 고대로 나오듯이 꾸준히 나오지는 않으나 동요를 배우거나 춤을 알려주면 너무 좋아한다. 사실 어제의 소문난 뉴스였던 피겨여왕으로 이름난 김연아 소식도 이들에게는 무관심이다. 이 나라에서는 올림픽의 다른 우주별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그것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운동경기를 보면서 감동하거나 애타게 바라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필자는 조용한 참관자로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행사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바라본 어느 날의 행사보다 필자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우리의 동요를 불렀고 한글을 소개했다. 우리의 말글로 동화를 읽어냈다. 답답하지만 성공적인 데뷔 같은 무대였다. 잠시 후 슬라이드 상영이 있었고 한국을 알리는 동영상도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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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근 지역의 봉사단원으로 있는 장진영(보건분야)단원이 안타까운 질문을 한 것처럼 마치 초대받은 찬조출연진들의 민족행사같은 느낌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렇다할 민요한곡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점, 아직은 다듬어지지 못한 언어, 더구나 행사의 진행 과정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안타까움도 컸다. 하루하루 가르치고 익히면서 숙제만 쌓여가는 안타까움이 괴롭다.
무엇을 즐거워해야할지 무엇을 기뻐해야할지 민족구성원으로서 그 실체를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움이면서 낯선 강요 같아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필자를 주저하게 한다. 어제 이후 처음 예빠토리야를 찾은 사람처럼 그들이 낯설어진다. 7개월을 보았던 그들이지만, 사실 필자가 주고자했던 것 말고 그들이 실제 무엇을 배우려했던가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한 듯 망연자실한 심정이다. 다시 새 길을 향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