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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토비라 불릴 정도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 김형효
  • 조회 3800
  • 2005.09.05 20:45
연변의 민족 시인들(2), 권순진 시인

   
연변의 토비라 불리는 왕발 권순진 시인

젊은 시인이다. 연변에서는 별명이 토비로 불리는 데, 토비란 우리말로 조폭(?)이란 의미 쯤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물론, 실제 토비는 아니다. 그는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연변이나 용정 등 우리 민족의 자취에 대해 세세한 항목까지 모르는 바가 없다. 그러하기에 그의 가이드를 받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다못해 땅의 평수, 인구수, 그리고 세세한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꿰뚫고 있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연변의 가무단에서 한 때 무용을 하기도 했을만큼 여타 예능에도 뛰어난데, 그가 가는 곳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필자는 그와 함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찾았다. 연변에서 백두산까지는 약5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길거리에 노점부터 백두산의 공안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식사는 무료 접대를 받았고, 백두산 천지를 택시로 오르는 것도 공안의 협조를 받아서 가능했다.

그는 정이 넘치고 노래와 춤에 일갈을 하고 있어 흥겨움도 넘치는 젊은 친구다. 그의 아내는 중학교 선생, 연변의 교원이다. 그는 지난 봄까지 중국에서도 남쪽지방인 해남도에서 한국의 신혼부부를 위한 가이드를 도맡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연변에 돌아와 글쓰기와 가이드일을 하고 있다.

젊은 그가 우리 민족의 구성체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도울 길이 없나 늘 생각하는 필자는 그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가 보여준 정성스러움이 그 어릴적 고향의 정에 넘치는 맏형 같은 품이 넓은 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두만강변을 지날 때나, 용정에 명동학교에서나 그가 우리 민족정신을 꿰뚫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볼 때, 망연자실 나의 모자람에 고개를 수그리게 되었다.

연변의 낯선 하늘에 우리 민족의 긍지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멀리서나마 그의 건필을 빈다. 그리고 올 여름에는 꼭 가서 다시 만나야 하겠다. 그의 시들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데, 그는 시달린 민족의 지난날 속에서 빠져 나와 이제 어여쁜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고 싶단다.

천사

폭포 같은 머리를 곱게 드리고
수줍은 듯 몸을 꼬는
버드나무를 보면
그녀 생각이 난다

귤쪽 하나를 집어
잘근잘근 씹으니
여린 그녀 입술 씹던 느낌이다

그녀 누웠던 자리에
달빛을 조용히 펴놓고 있노라면
그녀가 살아 움직인다

거리에 나서면 사내들 눈뿌리 빼던
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자태로
조용히 내게 걸어온다
하얀 티셔츠에
까만 미니스커트
떠날 때의 차림대로

언제나
내게는 유혹으로 와 닿던
예쁜 가슴을 쑥 내밀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
예쁜 다리를 잔뜩 드러내고

그 모습 너무도 눈부셔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가고 없었다
제 자리로 간 게다
아득히 먼 천국으로

그녀는 오늘도 스무살이다
천국에 간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단다

그녀는 천사로 된 게다
아니
그녀는 워낙 천사였다




해거름
강가에 동그마니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소녀 하나

강바람에
날려오는 향기는
소녀향기일까 봄향기일까

가만히 다가서면
놀란 사슴처럼 달아날까
아니면 웃으며 반겨줄까

해거름
강가를 거닐며
이름 모를 소녀한테 나는
마음을 빨리웠고
혼을 앗기었다

무궁화같이
이쁜 소녀
봄 가슴 설렌다

그리움

멀리 간 숙이가 그리워
남 다 자는 밤
그리움을 밤하늘에 걸어본다
그러면 그리움은 별이 되어 반짝인다

저 빛이 숙이 있는 곳까지 갈까
숙이가 저 빛을 볼 수 있을까
바보스런 생각 굴리다
담배를 붙여 문다
그리움은 또 담배불이 된다
빨면 빨수록 가슴 태우는 빠알간

이윽고
날이 밝는다
그리움은 또 해가 된다
그리움은 이글이글 누리에 타 번진다
그래서 식을 줄 모르는 영원한 존재가 된다

숙아

겨울을 좋아했던 숙아
바람속에 세월은 흘러
계절은 가고 또 오지만
너는 왜 돌아오지를 않느냐?

솜같은 눈송이가 그대로
그리움이 되어 내려 쌓이는 밤
아름다운 추억이 하얗게 깔린
거리를 홀로 거닌다

숙아
애단로 길모퉁이엔
이 밤도 구운 고구마 파는 아저씨의
사구려 소리가 귀 맛 좋다

숙아
기억나니?
어느 동지달 눈 오던 날
해방로 포장마차에서 먹던 팥죽이

얼마나 걸었던가
삼꽃거리를
눈 속에 묻혀
행복에 묻혀

언제나 정답게 느껴지는 하얀 눈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주던 하얀 눈
마주보며 눈 속을 거닐 때
유난히 긴 네 눈초리에 맺히던 하얀 눈

너무나 익숙했던 너의 모든 것들
갈라진지 오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내게로 다가와
내 마음 괴롭힌다

제발 잊어달라는 너의 마지막 부탁
미안해! 들어 줄 수 없어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해도
너만은 잊을 수 없어

이제 다시 만난대도
난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숙아
영원한 내 사랑아

권순진
1967년 중국 길림성 훈춘 출생
1989년부터 작품활동 시작
서정시, 동시, 수필 60여편 발표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문화생활> 신문 편집부 주임


**시작노트**

시는 나의 사랑이다
시와 함께 울고 웃으며 한 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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