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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들 수 없는 서울..., 눈발과 빗물에 미끄러지는 사람들...,

  • 김형효
  • 조회 5797
  • 2006.01.13 06:55
오늘도 망설이다 출근이다.
그만둘까를 고민하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좋은 소재를 찾듯이
길을 나섰다.

오늘은 바로 영동대교를 넘었다.
운좋게 첫 손님은 청량리 위생병원에 가는 손님이다.
두 여성이 탔는데, 둘은 친구 사이란다.
절친한 친구로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둘이서 나누는 이야기를 얼핏설핏 귀기울이며 듣는 운전기사
올바른 청취의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들어서 문제가 되거나 딱히 기피할 이야기들은 없다.
둘이서 소곤대는 이야기 소리는 마치 누이들의 다정다감을 보는 듯 했다.
나는 그 손님들에게 남자들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런 다정다감을 잃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량리를 에둘러서 장안동으로 그리고 신답역 근처에서
웨이브진 머릿결을 자랑삼는 듯한 우산을 쓴
보기에 예뻐 보이는 여성을 태웠다.
그러나, 보기에 예뻐 보일 뿐인 그녀는 삭막한 모래무지 같다.
화장발에도 격이 있고..., 옷차림에도 맞는 격이 있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나이라는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를 더 할수록 나무가 굳건한 자태를 보여주듯
사람도 그런 모습을 갖추어야 하리라.
세상 만물은 자기 나름에 격에 맞는 품격이 있어야 하리라.
그것이 인정하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요즘 서울 길은 길이 많아 길을 가는 데 어려움이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이래저래 연구를 좀 하면 여간 편리하다.
그러나 택시운전기사와 손님간에는 시비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택시기사들은 곧잘
손님들에게 어떤 길로 갈 것인가 길을 묻는다.
그것이 나중에 시비를 없애는 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요금을 갖고 시비하지 않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이 여성은 포스코 사거리에 아이비스인지 이비스인지 하는
호텔 근처에 간단다.
그래서 길을 가는 데 몇 마디 길을 묻는 과정에
격에 없이 거친 말투를 느낀다.
아, 입 조심..., 그때부터 나의 입은 침묵이다.
괜한 불편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입을 닫는 것이 훌륭한 방책인 것이다.
오직 운전기사의 본분에 맞는 운전에만 열중이다.
그러나 퇴근길 심한 정체가 그런 시간을 길게 한다.

그녀를 내려주고 나는 끝 말을 중얼거린다.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인데
어디서든 좀 더 공손한 말투를 갖기를 바란다.
물론 혼잣말이다.
 
이어서 A4용지 세박스를 싣고 시청앞 동방플라자를 향하는 손님이 탔다.
손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반포대교를 이용하기로 하고 차를 몰아간다.
극심한 정체에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머무름이 길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택시기사들 처우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그러나, 별로 긍정할만한 느낌의 대화가 아니란 생각에
입을 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냥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당혹스런 상황이다.

손님이 내게 "황우석 박사"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나는 우리 모두가 공동범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때 손님과의 언쟁의 수준으로 이야기가 확대된다.
다시 나는 침묵할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당혹스런 대화 도중 침묵할 기회를 찾기란 참 힘들다.

나는 다시 한 마디 한다.
황우석이란 사람의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날 수도
생각할 수 없는 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공동범죄자였으면서
나는 빼고 나쁜 대한민국사람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끝으로 사람이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가리키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물론.., 나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새겨봄직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화도나고 분을 삵히기 싫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용케도 잘 견뎌내었다.
대치사거리에서 겉보기에 멀쩡한 손님이 탔다.
차에 탄 손님은 술에 취해 있었다.
차에 탄 손님은 그냥 앞으로 직진하란다.
그래서 직진했고... 사거리를 두번 지나
어딘지 다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물었다.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더니 손님은 대치사거리로 가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 탑승한 대치사거리로 갔다.

그때다.
봉변이다.
2400원의 요금이 나왔다.
그는 3000원을 손에 쥐더니 3000원을 모아 쥐고 손바닥을 편 채
내 얼굴을 친다.
다 먹어라 이 새끼야!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나를 참게 했는지 모르게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분을 삵혔다.
이거야 원..., 사람 미칠 노릇이다.
차를 세워두고 내릴까를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리면 사건은 심각해진다.
나는 나를 안다.
가만 두지 않을 것을...,
그럼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일은 일대로 멈추게 될 것이고...,
비와 눈..., 우박이 동시에 떨어지는 겨울날 날궂이 하는 것이다.
참았다.
장한 것인지..., 바보짓인지 아직도 잘 분간이 안된다.
하지만 어떻든 대응하지 않아야 했던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서초역 근처에서 교대가는 청년을 태웠다.
데치사거리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경험한 희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중에서도 치과에 치료를 받던 사람이
잡채에 목이버섯을 먹고 돌씹었다고
치료비내라해서 치료비냈다는 말은 과간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엄연한 사실이라니...,
그는음식점에서 일하는 친구였다.
참 동병상련의 약한 자들이 많이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씁쓸하다.

내방역 근처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탔다.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란다.
아저씨 있다가 전화기 한번만 빌려주세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고3이고 차비가 없어서
집에 가서 어머니께 차비 가지고 나오시라고
말씀드릴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알았다고 말하고 길을 간다.
이런 저런 고등학교 3학년의 애환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밤에 운전하는 택시기사들 보면 다 미친 사람으로 보인단다.
난폭운전을 일컫는 말이었다.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가 본 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마음이 쓰리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눈비가 오다가 나중에는 비가 내렸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고 신호를 지키지 않아
위험천만한 상황이 많았으며 지금은 안도하고 있다.
아무튼 지금은 일을 마친 상태다.
아찔 아찔한 상황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동대문 의류센타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두 세 번 헛바퀴 돌다
어렵게 손님을 태웠다.
미아리까지 가는 길이다.
손님은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란다.
평소 새벽 6시경에 퇴근하는데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한다는 데 새벽 네시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새 신부...,
이렇게 바쁜 일상이 오히려 신혼의 긴장을 지속시켜주는 듯하다면서
생활에 만족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설문한 손님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그것도 단순명쾌하지만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이 좋다는 그녀...,
아마도 그런 믿음이 이 늦은 시간에 피곤도 잊고
활기찬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은 아닐까?

그리고 돌아서 퇴근길에 들어서려는 나,
이번에는 청평화시장에 출근하는 손님을 태웠다.
새벽 네시에 문 열어 오후 네시에 문닫는다는 청평화시장...,
우리가 잠드는 순간..., 누군가는 눈뜨는 시간이다.
누군가 눈뜨는 시간 우리는 잠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사람들도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인가 보다. 

세상 사람들아!
당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는 순간이 곧 지구축이 바로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그렇게 젖어들 수 없는 서울에서
눈물처럼 빗물처럼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보지만,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찾아갈 기약이 있어
미끄러져가면서도 웃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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