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난 세상이니 누군가는 바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잘난 그들이 드러나고 싶은 대로 드러날 수 있을 테니까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는 내가 어제는 빌린 자동차를 타고 무안엘 갔다.
해질 무렵의 겨울 초입에 을씨년스러움도 두려울 것 없는 멍청이 여행자
아벨라 95년산, 자동차 내선 일체가 부조화라 온열기도 되지않고
주유보기도 바라볼 수 없어 꺼져가는 생명도 감지 할 수 없었다.
오직 내가 살아오고 있는 나의 감을 믿으며 막연한 천하를 누비는 방랑객처럼
아벨라 95년산도 자신의 감을 믿는 멍청이 여행자 주인 신세만 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목한 길바닥과 볼록한 길바닥에 깜짝 놀라는 운전자처럼
낙엽은 사태를 이루고 겨울초입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고
겨울나들이 가는 해넘이 노을은 퍼질러 엎지러진 화덕속에 갈린 고추무더기 같다.
김장 김치 속곳처럼 잘 저려진 겨울 초입의 해넘이 노을이다.
하루를 훌쩍 뛰어 넘어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대하면서 쩔쩔맨다.
어제의 흔적이 날 괴롭혀대는 데 내가 무슨 수로 날 이겨먹을까?
겨울 초입의 매서움을 모르고 덤볐던 멍청이 여행자의 업보처럼
기운도 모자라고 콜록거리며 몸을 흔드는 내 몸 속의 겨울이 무섭다.
퇴근하는 길에 어린 소년이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묻는다.
기능사였다가 자라면서 누군가의 이야기속에 주저앉았다고 했더니
그가 와!라고 놀라며 반긴다. 흐뭇할 겨를도 없이 그는 그의 집으로 안녕하고
나는 오던 길에 밟은 마른 낙엽에 장작개비 불에 타듯 놀란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렇게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고
오늘이 왔다가 간 것처럼
사람들도 내일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날 저무는 밤을 기웃거린다.
횡설수설 술잔을 기울일 동지도 잃고
멍청이 여행자는 낯선 도시의 귀퉁이에 가부좌를 틀어버렸다.
여행자가 길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여행을 멈추면 그의 생명은 끝난 것,
그는 오늘도 아이들 마음 속을 여행하며
아픈 아이들을 달래고 싶어 한다.
한 눈 팔기에 바쁜 아이도
겁없는 운전자의 무책임한 끼어들기보다 몇 배는 더 순정해 보이는
아이들의 거친 투정의 인간적임에 반하며 휴머니즘은 무엇인가 사색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