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처럼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었는데 2006년 겨울 국도24호선을 걷던 첫 날 길가다
학교의 안부, 풍경의 안부를 묻다가 옛 그리움을 품는 마음으로 찍어두었다.
이제 언제라도 나의 여행길에 낯선 나그네길에 동행이 되어주고 있다.
의젓한 동무처럼 나보다 오랜 세월의 향기로 나를 품는다.
내 고향 사람들은......,
어찌하다보니 낯선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웃음이 나와 참지 않고 홀로 웃었다.
내 고향 사람들은......,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얼척이 없소.
야! 이 새끼 잘 있었냐?
워메, 뭐 허다가 인쟈 얼굴 보여주고 지랄이냐.
어찌되었든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빠짐없이 갖출 결격 사유는 다 갖춘 것이다.
가식도 허식도 없이 똘똘 뭉쳐진 아날로그! 자연 그대로 액면 그대로의 사람들
그래서 그 모습이 홀로 너무 좋아 홀로 멍청하게 웃는다.
내 고향 사람들 말투로 하면 허벌나게 웃었다.
미친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우리네 오지랖은 첨단 과학으로도 분석할 수 없고
생명공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의 생명 같은 그 오지랖 넓은 팔자좋은 사람들의 생기는 분석불가~!
그러니 그 에너지와 그 생기를 누가 값을 정하랴!
내 고향 사람들의 그 모습은
흡사 아름다운 노을에 비친 갯벌 밭 같이 찬란하다.
검은 흙과 어우러진 붉은 노을의 환희처럼 말이다.
내 어릴 적 철부지 동무들은 지금도 얼척 없이 좋아라 한다.
꼭 개구쟁이 그대로다.
다들 지또래의 아이를 가졌거나,
조카를 가졌거나,
심지어 손자, 손녀의 향기를 맡고 사는 친구들 이야기다.
아마도 이 친구들 이 글을 보면 또 지랄을 헌다며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질퍽한 갯벌 같은 끈끈함이 굳어서 죽어버린 혹자는 또 다른 생명이라고 하지만,
빚어진 도자기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내게는 그렇게 갯벌 밭을 품고 사는 사람의 향기가 넘치는 고향이 있다.
내가 가진 재산이라면 그 질펀한 오지랖의 향기가
생명이 다 하는 어느 날까지 바닥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