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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통일 공화국으로 가는 길

  • 웹마스터
  • 조회 1988
  • 2021.02.24 01:24

삼천리 통일 공화국으로 가는 길

 

 

김형효

 

깊고 깊은 밤을 가르고 온 새벽녘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그 아이는 그저 무럭무럭 자라서

한 살 아이가 되고 두세 살 먹은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다.

청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불구인 조국을 모르고 살며 앞서간 사람들만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그렇게 늙어가는 조국을 보았다.

 

점 하나를 찍고 선 하나를 긋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놀이를 하다가

어느 날 한라산과 백두산을 알았다.

그리고는 입을 닫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녕을 묻던 윗마을 할아버지께서

굽은 허리를 펴시더니 점 하나를 찍고

안녕을 묻던 아랫마을 할머니께서는

주름진 치마를 펼치시며 선 하나를 긋는다.

 

오래된 것 없이 항상 어제처럼

주렁주렁 가시가 달린 철조망을 바라보다 잠든 나는

오래된 옛노래를 들으면서 고즈넉하게

편히 잠든 이슬 맺힌 달팽이를 보면서 운다.

 

삼팔선을 두고 윗마을 아랫마을 오가던 사람들이 살던

전설의 나라에서 온 늙으신 할아버지께서

삼팔선을 두고 저 멀리 백두산 기슭을 지금처럼

멀고 먼 곳이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늙으신 할머니를 그린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국경선에는 슬픔이 맺히고 눈물이 강처럼 흐른다.

 

나는 잠꼬대처럼 병든 조국을 치료하자고 외친다.

나는 잠꼬대처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외친다.

나는 잠꼬대처럼 통일 조국을 외친다.

그래야 살 수 있어서다.

나는 잠꼬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외쳐온 수많은 통일 조국의 외침을 보고 흘러간 세월이 무심하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넓고 넓은 광장을 찾아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삼팔선이라고 쓰고 휴전선이라 쓰고

분단선이라 쓰고 비무장지대라 쓰고

지우고 짓밟고 빗자루를 들고 쓸었다가

흰 페인트를 칠하고 붉은 페인트를 칠하고

그래도 안 되어서 온몸을 굴러 조국은 하나라며 울부짖다 해 넘어간 날

 

흰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을 밟고 걷고, 걷고 또 걸어가

나 태어난 세월 1965년 겨울 날을 지나

197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198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199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200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오늘은 2020년 여름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있다,

 

나 거기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조국의 하늘

부끄러워 울어도 우는 것이 아니고

울어도 눈물이 없이 마른 눈을 부비며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 눈물의 족적을 떠올려

100년 전에도 200년 전에도 우리가 우러르던

우리의 한울님이 하나로 맺어준 삼천리 금수강산

대대로 살아온 나라 팔도강산의 메아리 소리도 지금은 없다.

 

! 우리 함께 단군왕검의 하늘, 주몽의 하늘, 광개토대왕의 하늘을 찾아가자.

그 하늘 아래 없는 분단선, 그 하늘 아래 없는 휴전선

그 하늘 아래 없는 삼팔선에서 너도나도 서로 어깨 걸어 보자.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부터 시작한 우리의 기상

백두산 흑풍구에 세찬 바람을 몰고 와 너도나도 깨우리라.

그렇게 우리가 하나였던 지울 수 없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 공화국이 있다.

 

윗마을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굽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백의를 입은 신선처럼 백두 아리랑을 부르시며

오래전 점 찍어둔 그림을 지우신다.

아랫마을 할머니께서는 오늘은 주름진 치마를 펼치시며

오늘은 백의를 입은 신선처럼 한라 아리랑을 부르시며

오래전 선 그어놓았던 그림을 지우신다.

 

그리고는 두 분이 서로 만나 덩실덩실 어울렁더울렁 어깨춤을 추신다.

함께 부르는 아리랑 통일 아리랑

함께 부르는 아리랑 통일 아리랑

점 하나 지우고 선 하나 지우고

그렇게 깊은 어둠을 따라

붉은 횃불이 된 점 하나, 선 하나가 되어

분단선을 태우고 휴전선을 태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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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약력 65년 전남 무안 출생

방송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사람의 사막에서>로 문단에 나옴. 시집 <사막에서 사랑을>4, 산문집<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러 번역시집<어느 겨울밤 이야기>, 2011년 네팔어, 한국어, 영어로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동화<무나 마단의 하늘, 네팔 옥스포드 국제출판사>, 길 위의 사람들<비벡 쉬리전실 출판사>, 행복한 사람들<네팔교과서 편찬위원회> 출간, 네팔어 시집 <하늘에 있는 바다의 노래, 뿌디뿌란 출판사>, 2018. 1회 한국네팔문학축전 개최(카트만두 네팔 국제학술원), 네팔 시인 마덮 쁘라싸드 기미래 100세 기념 문집<거우리>한국어판 출간(네팔시인 72명 시 게재), 한국시인 51100편의 시 네팔어로 번역 네팔어판 편찬 2018, 9월 현 한국작가회의, 민족작가연합 회원, 민족작가연합 서울·경기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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