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작입니다.
우익이 짓밟던 야욕적 시국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무현만이 희망은 아닙니다.
노무현만이 우리에게 절대가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삼십퍼센트를 밑돌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인민재판식 대응으로 팔십퍼센트에 육박합니다.
우리에게 현재는 종말적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시련기는 극과극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어떤 세력도 기득권을 확보하고
느긋하게 포용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 우리를 어둡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야만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칠팔십년대에 우리에겐 합리적이고 저돌적인 재야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재야가 죽고 정치성을 띤 시민사회단체만이 살아 있습니다.
시대는 절망의 꽃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으로 부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인민재판식, 혹은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될지언정,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보다 강력한 희망은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기대 때문에 무너지는 미래를 향한 꿈은
여전히 우리를 개선시키며 부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제 발등을 찍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로움 속에 부활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에 부여된 생존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익이 짓밟던 야욕적 시국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무현만이 희망은 아닙니다.
노무현만이 우리에게 절대가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삼십퍼센트를 밑돌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인민재판식 대응으로 팔십퍼센트에 육박합니다.
우리에게 현재는 종말적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시련기는 극과극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어떤 세력도 기득권을 확보하고
느긋하게 포용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 우리를 어둡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야만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칠팔십년대에 우리에겐 합리적이고 저돌적인 재야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재야가 죽고 정치성을 띤 시민사회단체만이 살아 있습니다.
시대는 절망의 꽃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으로 부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인민재판식, 혹은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될지언정,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보다 강력한 희망은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기대 때문에 무너지는 미래를 향한 꿈은
여전히 우리를 개선시키며 부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제 발등을 찍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로움 속에 부활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에 부여된 생존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