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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김혜순

  • 김영춘
  • 조회 12870
  • 추천시
  • 2010.11.04 09:23
서울  / 김혜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또 유리문이 나온다.

유리문 안쪽엔 출구라고 씌어 있고, 바깥쪽엔 입구라고 씌어 있지만 그러나 나가든 들어가든 언제나 너는 어떤 몸의 내부에 속해있다. 마치, 난자를 만난 정자가 그녀의 집에 영원히 체포되듯 너는 거기에 속해 있다. 내부의 사람이면 누구나 유리문을 밀고 나가 또 하나의 유리문을 향해 걸어가야 한며, 그곳을 나와서도 또 하나의 유리문을 열어야 한다. 밤이 오면 어떤 유리문들은 네온 사인을 달고 여기가 정말 출구에요 말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어떤 유리문을 열면 거기 매맞은 얼굴들이 한 방 가득 들어 있고, 어떤 유리문을 열면 죽은 네 어머니가 웬일이냐 돌아앉는다. 어떤 유리문을 열면 길 잃은 파리가 윙윙거리는 방안에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이 뒤엉켜 누워 있고, 어떤 방문을 열면 네 시신 위로 구더기들이 한없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유리문은 빗속을 맹렬히 달려 너는 젖은 머리칼을 흔들며 죽어라 그 문을 향해 뛰기도 해야 하고, 어떤 유리문은 지하 깊숙이 미로를 개설하기도 한다. 지하 밀의 매달린 문들의 이름을 믿지 마라. 어떤 문엔 친절하게도 오류역이라 적혀 있기도 하다. 혹은 어떤 문엔 십리를 더 가라고 적혀 있기도 하지만, 그 말을 믿지 마라.

이곳의 사람은 아무도 출구를 모른다. 설탕 병에 빠진 개미처럼. 일생의 시간을 다 풀어내어 만든 실뭉치 속에 숨어 든 파리처럼.

이곳 가슴의 미궁은 그리 넓지 않아 새벽 네 시경, 두 시간이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가지 주파할 수 있지만 몸 밖으로 출구를 찾은 사람은 아직 없다. 가슴속 투명한 미궁의 주인은 오늘 또 세간살이를 몽땅 싣고 정읍에서 올라온 다섯 식구를 접수한다. 그들도 이제 들어왔으므로 출구를 모르리라. 미궁의 유리문들이 점점 늘어난다. 길 위에 길이 세워지고, 물길 아래 물길이 세워진다. 너는 늘 떠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늘 제자리로 돌아온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려 하지만, 늘 역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벙어리 네 그림자는 말하리라. 땅바닥에 누워 네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서 말하리라.

이 길로 가서는 안돼요. 언제나 길은 틀렸어요. 날마다 복선이 증가한다.

유리벽에 뭘 새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너는 유리벽에 매달려 뭔가 새기려 하고 있구나.

꿈 속에 있으면서 꿈 속에 전령을 보내려고, 헛되이 허공 중에 고운 얼굴을 새기고 있구나. 날마다 유리문이 늘어난다. 이 몸을 깨뜨리고 어떻게 밖으로 나가지? 내 몸 밖에서 누가 나를 아직도 부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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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전인가,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는 크게 좋은줄 몰랐다.
그런데, 얼마전 정효구의 "시 읽는 기쁨"에서
이 시를 다시 보았을 때는 너무 좋았다.

정효구의 이 시에 관한 해설을 보면서
답답하던 가슴이 펑~ 뚫리는듯한 느낌이였다.
숨막힌 공간에서 해빛이 스며드는 출구를 본듯한 느낌이였다...

김혜순의 시에 나오는 "서울"이라는 단어 대신에
이 세상 어느 도시의 이름을 바꿔넣어도 다 될듯한 이 느낌...

도시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답답함, 막무가내, 허무, 몸부림...
이 동병상련의 마음...

김혜순의 다른 도시시와 장정일의 도시시... 모두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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