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명작에는 명작의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우리는 명작의 시학詩學이라 달리 말할 수도 있다. 미인을 뽑는 데에도 선발의 기준이나 선발의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미스 코리아를 염두에 둔다면 키는 최소한 170cm 이상이어야 하고 8등신의 체격조건에다 가슴, 허리, 히프의 크기가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 얼굴은 시원하면서도 예뻐야 하며 나아가 잘 빠진 육체미 만이 아니라 얼굴에서 지성미도 흘러야 할 것이다. 이처럼 명작에도 최소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많은 명작들을 읽다 보면 공통분모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곧 명작의 조건인 셈이다.
나는 여기서 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과연 명작의 조건 아니 명작의 시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훌륭한 건축물을 지으려면 훌륭한 설계도와 그에 따른 훌륭한 시공 기술 그리고 질 좋은 자재가 있어야 하듯이 좋은 작품을 쓰려면 반드시 이런 명작의 조건들을 한 번쯤은 누구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나 작가라면 그 누구라도 한 생애에 있어 절대평가에서건 상대평가에서건 한두 편 명작급의 대표작을 남기고픈 강한 충동이나욕심이 있으리라 본다. 오늘의 이 발표가 그런 욕구충족에 조금이라도 앞으로 도움이 될수만 있다면 큰 다행으로 여기고자 한다.
1. 명시의 조건
시의 여러 장르중 명시의 대부분은 서정시 쪽에 있다. 서정시는 시의 원형이요 시의 영원한 고향인 동시에 시의 유행성에 훼손을 덜 받으면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정감에 와 닿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서정화시켜 주고 있는 정서들은 사랑과 미움,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 상실감, 허무감, 환멸감과 애수, 무상감, 외로움, 설움, 안타까움, 후회, 애환, 꿈, 자연에 대한 환희나 침작의식 또 경외감 등속이다. 서정시의 효용성이란 바로 이런 정서의 서정화를 통해 시 독자의 감정을 순화시켜 주기도 하며, 위무도 하고 또 고양시켜주는 데 있다.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바로 서정시 고유의 몫이요 기능인 동시에 그 효용성이다.
따라서 서정시는 다른 장르의 시에 비해 정서적 감응력이 강하고 크다. 감동을 주는 시도 서정시에 있다. 그래서 명시의 일차적 조건에는 반드시 서정시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서정시가 명시가 아닌 이상 명시가 되려면 거기엔 반드시 필요충분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그런 조건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짧아야만 한다. 가령 장시라면 압축미가 없고 암기 내지 암송 하기에 힘들기 때문에 명시의 조건에서 벗어난다. 뭐니해도 명시는 암송이나 낭송하기에 알맞는 길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암송할 수 있는 명시는 거개가 단형시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그림의 경우와 대비해서 생각해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르리라 본다. 그림을 감상할 때 그 크기에 따라 적절한 '감상의 거리' 가 있을 수 있는데 요는 최적의 '감상의 거리' 에서 그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와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바로 명화의 일차조건이지 너무 커서 고개를 두리번거려야 하는 정도라면 비록 대작大作으로서 잘된 그림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으나 명화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연으로 보면 4~5연의 시에 명시가 많으며 행이 많을 경우라면 간혹 3연시에도 명시가 있다. 연시이건 비연시이건 전체 행수로 보면 평균 10행 전후에서 25행 내외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명시의 길이는 그 중간인 15행 내외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국시 중에서 명시로 평가받고 있는 시들을 통해 이를 알아 보기로 하겠다. 3연시에는 <성북동 비둘기>(24행), <논개>(24행)가 있고, 4연시에는 <설야>(15행), <진달래꽃>(12행), <국화 옆에서>(13행), <절정>(8행), <님의 침묵>(10행), <꽃>(15행:김춘수)이 있다. 그리고 5연시에는 <광야>(15행), <십자가>(14행), <청노루>(10행), <파초>(10행), <껍데기는 가라>(16행), <향수>(반복구를 제외하면 21행) 등이 있다. 비연시에는 <깃발>(9행), <모란이 피기까지는>(12행)이 있다. 연시 중에서 다소 예외에 속하는 것으로는 <사슴>(2연 8행:노천명), <승무>(9연18행)가 있고, 비연시중에는 <목마와 숙녀>(32행)가 있다.
둘째, 명시에는 음악적 효과를 최대로 살릴 수 있는 운율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해 역시 낭송이나 암송하기에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의 음악성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는 '정서의 건반'을 두드려 주어 마음이나 영혼에 전율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전기에도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반쯤 통하는 반도체 그리고 전혀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있듯이 시감상을 할 줄 아는 도체적 체질의 사람에게는 어떤 소리(음악이나 시낭송)를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는 '영혼의 악기' 또는 '영혼의 건반'이 내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명시에는 생체리듬과 호흡을 같이 하는 그 운율적 악보가 있어 '영혼의 악기'나 '영혼의 건반'을 두드려 공명현상을 일으켜 주기 마련이다.
셋째, 어려운 추상어보다는 편이한 일상어와 정감어가 주가 되어 있다.
넷째, 문장의 형식에는 종속접속사로 연결된 복문이 주가 되어 있다. 단문單文이나 중문重文은 정서나 이미지의 흐름을 단절시키거나 깨뜨리기 마련이다. 이에 비하면 주절과 종속절로 된 복문은 유장한 맛이 있어 정서의 흐름을 잘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단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으면 중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고 또 복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기 마련이다. 문장의 형식을 의복이라 생각한다면 장소에 따라 혹은 목적성에 따라 옷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명시와 복문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셈인데 이 복문의 한 문장이 한 연으로 배열되어 있는 명시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다.
다섯째, 구성면으로 보면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복잡구성이 아니라 단순구성으로 되어 있다. 4단이나 5단 구성이 애용되며 기•승•전•결에 충실하거나 아니면 그 유사구성을 하고 있다.
여섯째, 의미구조는 점층이나 점증식으로 된 확장의미 구조로 되어있거나 아니면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끝 연에서 첫 연의 반복이나 첨삭적인 반복을 보이는 경우다. <진달래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승무>, <목마와 숙녀>가 바로 그 예들이다.
그리고 4연인 경우에는 3연이나 4연에서 그리고 5연인 경우에는 4연 아니면 5연에서 이미지의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고압적인 이미지의 분출이 있다. 통합의 경우라면 비유적으로 말해 졸졸 흘러 내려오던 물줄기가 폭포수를 만난 형국이고, 분출의 경우라면 화산의 분화구를 연상해 보면 된다. 주제나 이미지의 처리를 밋밋하게 평면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강곡선 아니면 상승곡선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일곱째, 관찰이나 상상에 있어 고도한 감각적 예민성도 나타나있다. <성북동 비둘기>에서는 비둘기가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채석장에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비둘기가 입을 닦는다고 되어 있으니 그 감각성이 돋보이고 있다. <국화 옅에서>는 간밤의 국화의 개화나 나의 불면의 밤이 초경험적 범생명의 애정주의와 절묘한 연관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序詩(윤동주)>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초감각적인 시인의 예민한 모습과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감각성이, <설야>에서는 눈 내리는 소리에서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연상해 보는 청각적 예민성이, <향수>에서는 밤바람 소리에서 비인 밭에서 말달리는 소리를 환청해 본다는 초감각성이 각각 나타나 있는 것이다.
여덟째, 극대의 이미지를 다른 평면을 통해 극소이미지로 자리바꿈 시키는 데서 오는 이미지의 압축효과도 이용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내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본다면 '자리바꿈을 통한 이미지의 압축기법'이라 해도 좋을듯 하다. 가령 <목마와숙녀>에서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와 <청노루>에서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 이라는 등속의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아홉째, 시각과 청각의 영상이미지를 최대로 활용하여 시청각적 상상력을 최대로 고조시켜 주고도 있다. 비유적으로 말해 다방이라면 물론 뭐니 해도 커피 맛이 좋아야 하겠지만 부수적으로 실내환경이나 장식 그리고 친절하고 예쁜 레지가 있어 시각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어야 하겠고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이 있어 청각적 즐거움도 주어야 하는 이치와 통한다고나 할까. 좁게 말해 시각적 영상이미지의 활용은 그림으로 보면 그림에 색채 넣기와 상통하며 청각적 영상이미지의 활용은 시적 현실이 전개되는 공간 현장에 효과음으로써 소리 넣기라 하겠다. 가령 색채어를 이용한 전형적인 색채 넣기의 시라면 <논개>, <청포도>, <청노루>를 들 수 있다. <논개>는 죽음과 애국심의 상징인 '붉은 색'과 영원성과 절개의 상징인 '푸른 색'을 최대로 구사해 본 작품이고, <청포도>는 선비정신의 고고성을 나타내는 '흰색'과 지절志節의 상징인 '푸른 색'의 이미지를 최대로 대비시켜 본 작품이며 <청노루>는 청색이미지를 동원하여 때 묻지 않은순수자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효과음으로서 소리 넣기의 예라면 <국화 옆에서>를 들 수도 있다. 봄의 소쩍새 소리와 여름의 천둥소리를 집어넣어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고 있다.
열 번째, 명시에는 표현기교나 기법으로 보아 섬광처럼 번쩍 빛나는 부분이 어디엔가 들어 있어 시 전체의 인상을 밝게 해주고도 있다. 명시의 명구名句라 할 수 있다. 시의 기교나 기법을 나열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적어도 명시에서 자주 보이는 명구는 참신한 비유나 역설 그리고 공감각共感覺적 표현에서 찾아진다. '찬란한 슬픔의 봄'(<모란이 피기까지는>), '거룩한 분노'(<논개>), '소리 없는 아우성'(<깃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진달래 꽃>), '고와서 서러워라'(<승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절정>) 등은 역설적 표현기교에서 나온 예들이다. 그리고 지용의 <향수>에서는 '금빛 게으른 울음'이, 미당의 <문둥이>에서는 '꽃처럼 붉은 울음'과 같은 공감각적 기법이 각각 그 시에다 탄력성을 주고 있는 예들이다.
이상에서 나는 명시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보이는 특징적인 자질姿質들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한두 가지 더 첨가할 수도 있겠지만 이쯤 해두기로 하겠다.
그런데 모든 명시가 위의 조건들을 동시에 구비하여 한꺼번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일도 과일 나름으로 그 맛이 모두 다르듯이 명시에도 그 조건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과일의 영양소인 비타민 C와 같은 기본 필요조건을 명시라면 반드시 구비해 있어야 하되 충분조건에서는 한두 가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열거해본 위의 조건들 중에서 첫째에서 여섯째까지가 명시의 기본조건인 동시에 필요조건이라면 일곱째에서 열번째가 충분조건에 해당된다 하겠다.
명작에는 명작의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우리는 명작의 시학詩學이라 달리 말할 수도 있다. 미인을 뽑는 데에도 선발의 기준이나 선발의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미스 코리아를 염두에 둔다면 키는 최소한 170cm 이상이어야 하고 8등신의 체격조건에다 가슴, 허리, 히프의 크기가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 얼굴은 시원하면서도 예뻐야 하며 나아가 잘 빠진 육체미 만이 아니라 얼굴에서 지성미도 흘러야 할 것이다. 이처럼 명작에도 최소한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많은 명작들을 읽다 보면 공통분모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곧 명작의 조건인 셈이다.
나는 여기서 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과연 명작의 조건 아니 명작의 시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훌륭한 건축물을 지으려면 훌륭한 설계도와 그에 따른 훌륭한 시공 기술 그리고 질 좋은 자재가 있어야 하듯이 좋은 작품을 쓰려면 반드시 이런 명작의 조건들을 한 번쯤은 누구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나 작가라면 그 누구라도 한 생애에 있어 절대평가에서건 상대평가에서건 한두 편 명작급의 대표작을 남기고픈 강한 충동이나욕심이 있으리라 본다. 오늘의 이 발표가 그런 욕구충족에 조금이라도 앞으로 도움이 될수만 있다면 큰 다행으로 여기고자 한다.
1. 명시의 조건
시의 여러 장르중 명시의 대부분은 서정시 쪽에 있다. 서정시는 시의 원형이요 시의 영원한 고향인 동시에 시의 유행성에 훼손을 덜 받으면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정감에 와 닿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서정화시켜 주고 있는 정서들은 사랑과 미움,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 상실감, 허무감, 환멸감과 애수, 무상감, 외로움, 설움, 안타까움, 후회, 애환, 꿈, 자연에 대한 환희나 침작의식 또 경외감 등속이다. 서정시의 효용성이란 바로 이런 정서의 서정화를 통해 시 독자의 감정을 순화시켜 주기도 하며, 위무도 하고 또 고양시켜주는 데 있다.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바로 서정시 고유의 몫이요 기능인 동시에 그 효용성이다.
따라서 서정시는 다른 장르의 시에 비해 정서적 감응력이 강하고 크다. 감동을 주는 시도 서정시에 있다. 그래서 명시의 일차적 조건에는 반드시 서정시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서정시가 명시가 아닌 이상 명시가 되려면 거기엔 반드시 필요충분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그런 조건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짧아야만 한다. 가령 장시라면 압축미가 없고 암기 내지 암송 하기에 힘들기 때문에 명시의 조건에서 벗어난다. 뭐니해도 명시는 암송이나 낭송하기에 알맞는 길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암송할 수 있는 명시는 거개가 단형시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그림의 경우와 대비해서 생각해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르리라 본다. 그림을 감상할 때 그 크기에 따라 적절한 '감상의 거리' 가 있을 수 있는데 요는 최적의 '감상의 거리' 에서 그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와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바로 명화의 일차조건이지 너무 커서 고개를 두리번거려야 하는 정도라면 비록 대작大作으로서 잘된 그림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으나 명화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연으로 보면 4~5연의 시에 명시가 많으며 행이 많을 경우라면 간혹 3연시에도 명시가 있다. 연시이건 비연시이건 전체 행수로 보면 평균 10행 전후에서 25행 내외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명시의 길이는 그 중간인 15행 내외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국시 중에서 명시로 평가받고 있는 시들을 통해 이를 알아 보기로 하겠다. 3연시에는 <성북동 비둘기>(24행), <논개>(24행)가 있고, 4연시에는 <설야>(15행), <진달래꽃>(12행), <국화 옆에서>(13행), <절정>(8행), <님의 침묵>(10행), <꽃>(15행:김춘수)이 있다. 그리고 5연시에는 <광야>(15행), <십자가>(14행), <청노루>(10행), <파초>(10행), <껍데기는 가라>(16행), <향수>(반복구를 제외하면 21행) 등이 있다. 비연시에는 <깃발>(9행), <모란이 피기까지는>(12행)이 있다. 연시 중에서 다소 예외에 속하는 것으로는 <사슴>(2연 8행:노천명), <승무>(9연18행)가 있고, 비연시중에는 <목마와 숙녀>(32행)가 있다.
둘째, 명시에는 음악적 효과를 최대로 살릴 수 있는 운율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해 역시 낭송이나 암송하기에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의 음악성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는 '정서의 건반'을 두드려 주어 마음이나 영혼에 전율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전기에도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반쯤 통하는 반도체 그리고 전혀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있듯이 시감상을 할 줄 아는 도체적 체질의 사람에게는 어떤 소리(음악이나 시낭송)를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는 '영혼의 악기' 또는 '영혼의 건반'이 내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명시에는 생체리듬과 호흡을 같이 하는 그 운율적 악보가 있어 '영혼의 악기'나 '영혼의 건반'을 두드려 공명현상을 일으켜 주기 마련이다.
셋째, 어려운 추상어보다는 편이한 일상어와 정감어가 주가 되어 있다.
넷째, 문장의 형식에는 종속접속사로 연결된 복문이 주가 되어 있다. 단문單文이나 중문重文은 정서나 이미지의 흐름을 단절시키거나 깨뜨리기 마련이다. 이에 비하면 주절과 종속절로 된 복문은 유장한 맛이 있어 정서의 흐름을 잘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단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으면 중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고 또 복문이 어울리는 시가 있기 마련이다. 문장의 형식을 의복이라 생각한다면 장소에 따라 혹은 목적성에 따라 옷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명시와 복문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셈인데 이 복문의 한 문장이 한 연으로 배열되어 있는 명시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다.
다섯째, 구성면으로 보면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복잡구성이 아니라 단순구성으로 되어 있다. 4단이나 5단 구성이 애용되며 기•승•전•결에 충실하거나 아니면 그 유사구성을 하고 있다.
여섯째, 의미구조는 점층이나 점증식으로 된 확장의미 구조로 되어있거나 아니면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끝 연에서 첫 연의 반복이나 첨삭적인 반복을 보이는 경우다. <진달래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승무>, <목마와 숙녀>가 바로 그 예들이다.
그리고 4연인 경우에는 3연이나 4연에서 그리고 5연인 경우에는 4연 아니면 5연에서 이미지의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고압적인 이미지의 분출이 있다. 통합의 경우라면 비유적으로 말해 졸졸 흘러 내려오던 물줄기가 폭포수를 만난 형국이고, 분출의 경우라면 화산의 분화구를 연상해 보면 된다. 주제나 이미지의 처리를 밋밋하게 평면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강곡선 아니면 상승곡선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일곱째, 관찰이나 상상에 있어 고도한 감각적 예민성도 나타나있다. <성북동 비둘기>에서는 비둘기가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채석장에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비둘기가 입을 닦는다고 되어 있으니 그 감각성이 돋보이고 있다. <국화 옅에서>는 간밤의 국화의 개화나 나의 불면의 밤이 초경험적 범생명의 애정주의와 절묘한 연관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序詩(윤동주)>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초감각적인 시인의 예민한 모습과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감각성이, <설야>에서는 눈 내리는 소리에서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연상해 보는 청각적 예민성이, <향수>에서는 밤바람 소리에서 비인 밭에서 말달리는 소리를 환청해 본다는 초감각성이 각각 나타나 있는 것이다.
여덟째, 극대의 이미지를 다른 평면을 통해 극소이미지로 자리바꿈 시키는 데서 오는 이미지의 압축효과도 이용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내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본다면 '자리바꿈을 통한 이미지의 압축기법'이라 해도 좋을듯 하다. 가령 <목마와숙녀>에서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와 <청노루>에서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 이라는 등속의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아홉째, 시각과 청각의 영상이미지를 최대로 활용하여 시청각적 상상력을 최대로 고조시켜 주고도 있다. 비유적으로 말해 다방이라면 물론 뭐니 해도 커피 맛이 좋아야 하겠지만 부수적으로 실내환경이나 장식 그리고 친절하고 예쁜 레지가 있어 시각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어야 하겠고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이 있어 청각적 즐거움도 주어야 하는 이치와 통한다고나 할까. 좁게 말해 시각적 영상이미지의 활용은 그림으로 보면 그림에 색채 넣기와 상통하며 청각적 영상이미지의 활용은 시적 현실이 전개되는 공간 현장에 효과음으로써 소리 넣기라 하겠다. 가령 색채어를 이용한 전형적인 색채 넣기의 시라면 <논개>, <청포도>, <청노루>를 들 수 있다. <논개>는 죽음과 애국심의 상징인 '붉은 색'과 영원성과 절개의 상징인 '푸른 색'을 최대로 구사해 본 작품이고, <청포도>는 선비정신의 고고성을 나타내는 '흰색'과 지절志節의 상징인 '푸른 색'의 이미지를 최대로 대비시켜 본 작품이며 <청노루>는 청색이미지를 동원하여 때 묻지 않은순수자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효과음으로서 소리 넣기의 예라면 <국화 옆에서>를 들 수도 있다. 봄의 소쩍새 소리와 여름의 천둥소리를 집어넣어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고 있다.
열 번째, 명시에는 표현기교나 기법으로 보아 섬광처럼 번쩍 빛나는 부분이 어디엔가 들어 있어 시 전체의 인상을 밝게 해주고도 있다. 명시의 명구名句라 할 수 있다. 시의 기교나 기법을 나열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적어도 명시에서 자주 보이는 명구는 참신한 비유나 역설 그리고 공감각共感覺적 표현에서 찾아진다. '찬란한 슬픔의 봄'(<모란이 피기까지는>), '거룩한 분노'(<논개>), '소리 없는 아우성'(<깃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진달래 꽃>), '고와서 서러워라'(<승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절정>) 등은 역설적 표현기교에서 나온 예들이다. 그리고 지용의 <향수>에서는 '금빛 게으른 울음'이, 미당의 <문둥이>에서는 '꽃처럼 붉은 울음'과 같은 공감각적 기법이 각각 그 시에다 탄력성을 주고 있는 예들이다.
이상에서 나는 명시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보이는 특징적인 자질姿質들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한두 가지 더 첨가할 수도 있겠지만 이쯤 해두기로 하겠다.
그런데 모든 명시가 위의 조건들을 동시에 구비하여 한꺼번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일도 과일 나름으로 그 맛이 모두 다르듯이 명시에도 그 조건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과일의 영양소인 비타민 C와 같은 기본 필요조건을 명시라면 반드시 구비해 있어야 하되 충분조건에서는 한두 가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열거해본 위의 조건들 중에서 첫째에서 여섯째까지가 명시의 기본조건인 동시에 필요조건이라면 일곱째에서 열번째가 충분조건에 해당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