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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각성의 종소리

  • 전경업
  • 조회 10073
  • 회원시평
  • 2006.04.08 20:57
생명각성의 종소리
-- 김혁 수필 속에 보이는 생명의식

인간은 고독과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교류를 해야 하는건가? 수천 수만, 아니 수십억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인간세상은 날따라 좁아지고 작아진다지만 인간은 외려 더 외로워지고 더 고독에 잠기게 된다. 하여 고소(高所)공포증이 생기고 폐소(閉所)공포증이 생기는가 본다.
하여 인간들은 외롭고 적막함에 대한 초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류를 원하는 것이다.
외계인을 찾고 별나라를 탐구하고 화성과 금성에 등륙하여 인간과 같은 지혜자를 찾는 일과 같은 것들은 단지 과학기술이라거나 재부에 대한 탐욕, 아니면 신비로운 자기 밖의 외계에 대한 흥취에서만 온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근거부족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들이 자기를 외로움에서 구원하기 위해 동류를 잦고 있는 노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류를 찾음으로 서로 교류를 하고 고독과 적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교류는 우선은 자기 내심과의 교류이고 다음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이고 또 그 다음은 자연과 다른 생물이나 자기의 생존공간과의 교류이다. 이러는 가운데서 인간은 자연과 어우러지게 되고 타인과 어우러지게 되고 사회와 어우러지게 된다.
그 지긋지긋한 적막의 습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혁은 달마도를 그리고있다.
화가의 꿈을 가지고 련환활르 모이기 시작해서부터 서투른 솜씨로 만화를 그리던 데로부터 달마도를 만나고 보고 그리기까지 우리는 김혁이 자기의 마음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가는 것을 볼수 있다.
그것은 령혼이 육신과 함께 자라는 길이였고 그것은 령혼이 육신을 이끌고 천국에로 가는 길이였고 그것은 령혼이 육신을 떠나 령혼의 왕국으로 가서 다시 육신을 구하는 길이였다. 그 길은 령혼이 혼잡한 세상의 고독과 적막과 쓸쓸함과 싸운 가렬처절한 전장으로 붉은 피 랑자한 길이였다.
그 길을, 그 길에서 생겼던 에피소드와 경악과 기적을 김혁은 잔잔한 한폭의 달마도로 독자들앞에 조용히 내놓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고독에서 고요로, 적막에서 적열(寂悅)에로 가는 김혁을 볼 수 있다.
한장 한장의 달마도와 함께 김혁은 달마를 따라 마음의 면벽(面壁)으로 무아지경에로 향하고있다.
하여 그는 고독과 적막의 포위에서 벗어나 일상의 장막을 젖히고 자기의 인생을 열어가고("종이를 편다") 생을 준비하고("먹을 간다/ 붓을 쥔다") 인생을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달마도를 그린다")
그러나 이런 령혼의 면벽과정은 언제나 생활의 소란을 피면할수 없고 그 생활의 과정과정에서 인간은 언제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며 또 그래서 그런 현실정시의 과정에 항상 외계와의 교류와 접촉으로 물젖어있다.
그러나 그런 접촉은 처음부터나 아니면 항상 순조로운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는 내적 또는 외적인 작용력으로 인해 때로는 막히고 때로는 열리고 때로는 어쩔수 없는 경우에 닥치기도 한다. 이런 막히고 열리고 막무가내한 경우는 기계나 자연의 힘보다는 인간 자체의 마음의 상설(霜雪)- 도덕, 인륜 이상(異常)으로 해서 더 무섭고 안타까운것이다.
이런 과정과 또 이런 현실에 대한 공포로운 마음을 여실히 독자들에게 꺼내보인 수필이 바로 "우리들의 엘리베이트"이다.
작아서 더 작을 수 없는 공간, 그 공간속에서 오가는 말들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곱고 미운 행위들, 그러나 그런것들은 또 엘리베이트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숨길수 없는 행위들이고 회피할 수 없는것들이다.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처럼 요원하고 멀기도 한것이다. 몸이 닿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멀리 멀리고 서로 버성겨지고 헤어지는것이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것은 그렇게 멀어지거나 버성겨지는 인간사이가 아니라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김혁은 엘리베이트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부터 엘리베이트가 하나의 농축된 세계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남김없이 전해준다.
"깨끗한 몸가짐과 맑진 속마음으로 인생렬차나 진배없는 엘레베이트에 오르면서 새로운 하루를 어떻게 참답게 이어나갈가 속구구를 빼무는것이야말로 진짜 엘레베이트를 활용하는 실러리맨의 참자세가 아닐가"하고 자기의 느낌을 독자들에게 감탄부호와 함께 던져주고있다.
상승과 진보의 상징인 엘리베이트, 한층 오르고 올라서는 또 거기서 뛰쳐나오고, 이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승화를 김혁은 엘리베이트라는 공중장소로서는 가장 작은 공간을 통해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와 느낌을 김혁은 독자들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심깊이에서 온 느낌 그대로 솔직히 말했기에 독자들이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마치도 차 한 잔 앞에 놓고 함께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한담하는 감을 준다.
뿐더러 엘리베이트가 고장이 날가봐, 또 엘리베이트가 혹시 떨어나 지지 않을가, 중도에 갇히지나 않을가, 하는 등등의 엘리베이트를 탈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공포감을 그대로 자기의 경력으로 내보임으로서 독자와 저자 사이의 공명의 성원(聲源)을 만들어 놓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자기 내심으로의 교류와 생활환경, 생활공간과의 교류와 함께 우리들은 또 저도 모르게 외계와의 교류를 갈망하고 다른 객체, 그리고 력사와의 교류를 갈망하게 된다.
수천만년전의 공룡에 관심을 그처럼 돌리는 오늘의 과학연구와 인간들의 마음은 단순히 예술이나 과학에 대한 애착으로만은 해석할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로 인간들은 외계의 세계와 과거, 력사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계선은 날로 희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전자 공룡과 진정한 생물간에 구별점은 구경 어느만큼이나 되는가, 인간은 갖은 방법을 다해 인류의 고독함을 풀려고 시도하고 있다. 비록 그것은 그처럼 어렵고 그런 노력은 그처럼 가렬처절한것이지만.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고독을 풀수 있는 기회를 너무나도 쉬이 흘러보내고 또 그래서 더욱 고독한 것이다. 때문에 김혁이 패러티한 공룡시는 이름할 수 없는 담담한 애상(哀想)을 담고 있다.
풋풋하면서도 솔직한 언어로 누구에 향한 설교나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 깊은 곳의 느낌을 곧이곧대로 말한 김혁의 수필은 그의 소설처럼 아름답고 진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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