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보다 재미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처음 연길에 왔을 때 우리 피디님이 그렇게 말씀했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멋진 파워를 가진 그녀는 내 시를 읽더니
" 이렇게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 풍진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지?"
하면서 오래동안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우고
20대들과 함께 현장을 뛰여다니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 즐거움과 그 신선함에 매료되여
시밖에 모르던 나는,
이 세상에 정말로 시보다 더 재미있는것이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김경희시인님과 함께 고 정몽호 시인님을 찾아갔을 때도
시보다는 일터에서 보고 느낀것을 더 많이 말씀 드렸고
그러는 나에게 정몽호시인님은 “그럼, 일하는게 재밌어야지…”라고 했고
김경희시인과는 시에 대하여, 철학에 대하여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정몽호 시인님이 입원하셨을 때 병문안을 갔는데
병실에는 숱한 책이 쌓여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시인님은 우리에게 북경에서 갓 부쳐온
이미지시에 관련된 새 책을 자랑하면서 기뻐하셨고
시를 빼곡히 적은 노트를 보여주면서
아프니까 시가 더 잘 써진다고 미소 지으셨다…
그때 그 순간, 마음이 뭉클해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데체 시가 무엇이길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렇듯 시를 사랑하신건지?
두만강시회때부터 직접 시를 지도해주시던 정몽호 시인님은
“왜 시를 쓰지 않느냐?”고 나무람한적이 없었지만
몸소 그 행동으로 나에게 잊을수 없는 가르침을 남겨주셨다.
하지만 고 황장석 시인님은 평소 크게 접촉한적도 없고
그저 문학행사에서 만나게 되면 인사를 드리군 하던 분인데
이분한테서 욕사발을 얻어먹을줄이야.
“김충이는 요즘 왜 시를 안쓰오?
그 좋은 재능을 썩일참이요? ”
《단풍수필회》행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황장석 시인님을 만나뵙게 되였는데
그분은 만나자마자 이렇게 나를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웨쳤다.
내가 “처음 해보는 방송일이라 시간과 정력이 모자라서
잠시 시를 못쓰고 있을뿐이라고, 이제 꼭 쓸것”이라고 구구히 변명을 하자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황장석 시인님은
취재가 끝나서 떠나올 때 또 한번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김충이 꼭 기억하라이. 김충이는 언론인인것이 아니라
시인이란 말이요.
시인이라는게 시를 써야지…”
그때는 옆에 촬영기자도 함께 있어서 조금 창피한감도 없지 않았지만
황장석 시인님이 돌아가시고, 직장에서도 성 쌓고 남은 돌 신세 격이 되고,
또 내가 시를 못쓰고 있는동안 수많은 좋은 시를 써낸 시우들을 보노라니
그제야 황장석 시인님에 대한 고마움이 샘솟았다…
내게 방송인의 즐거움을 배워준 그녀도 멋졌지만
내게 시인의 힘겨움을 가르치고 떠난
정몽호 시인님과 황장석 시인님도 아름다우셨다…
물론 지금도 나는
시 쓰는 일이 방송대본을 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고 값진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 다 내게는 소중하다.
하나는 나를 먹여 살리고
하나는 나를 맑아지게 하니깐.
내가 처음 연길에 왔을 때 우리 피디님이 그렇게 말씀했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멋진 파워를 가진 그녀는 내 시를 읽더니
" 이렇게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 풍진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지?"
하면서 오래동안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우고
20대들과 함께 현장을 뛰여다니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 즐거움과 그 신선함에 매료되여
시밖에 모르던 나는,
이 세상에 정말로 시보다 더 재미있는것이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김경희시인님과 함께 고 정몽호 시인님을 찾아갔을 때도
시보다는 일터에서 보고 느낀것을 더 많이 말씀 드렸고
그러는 나에게 정몽호시인님은 “그럼, 일하는게 재밌어야지…”라고 했고
김경희시인과는 시에 대하여, 철학에 대하여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정몽호 시인님이 입원하셨을 때 병문안을 갔는데
병실에는 숱한 책이 쌓여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시인님은 우리에게 북경에서 갓 부쳐온
이미지시에 관련된 새 책을 자랑하면서 기뻐하셨고
시를 빼곡히 적은 노트를 보여주면서
아프니까 시가 더 잘 써진다고 미소 지으셨다…
그때 그 순간, 마음이 뭉클해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데체 시가 무엇이길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렇듯 시를 사랑하신건지?
두만강시회때부터 직접 시를 지도해주시던 정몽호 시인님은
“왜 시를 쓰지 않느냐?”고 나무람한적이 없었지만
몸소 그 행동으로 나에게 잊을수 없는 가르침을 남겨주셨다.
하지만 고 황장석 시인님은 평소 크게 접촉한적도 없고
그저 문학행사에서 만나게 되면 인사를 드리군 하던 분인데
이분한테서 욕사발을 얻어먹을줄이야.
“김충이는 요즘 왜 시를 안쓰오?
그 좋은 재능을 썩일참이요? ”
《단풍수필회》행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황장석 시인님을 만나뵙게 되였는데
그분은 만나자마자 이렇게 나를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웨쳤다.
내가 “처음 해보는 방송일이라 시간과 정력이 모자라서
잠시 시를 못쓰고 있을뿐이라고, 이제 꼭 쓸것”이라고 구구히 변명을 하자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황장석 시인님은
취재가 끝나서 떠나올 때 또 한번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김충이 꼭 기억하라이. 김충이는 언론인인것이 아니라
시인이란 말이요.
시인이라는게 시를 써야지…”
그때는 옆에 촬영기자도 함께 있어서 조금 창피한감도 없지 않았지만
황장석 시인님이 돌아가시고, 직장에서도 성 쌓고 남은 돌 신세 격이 되고,
또 내가 시를 못쓰고 있는동안 수많은 좋은 시를 써낸 시우들을 보노라니
그제야 황장석 시인님에 대한 고마움이 샘솟았다…
내게 방송인의 즐거움을 배워준 그녀도 멋졌지만
내게 시인의 힘겨움을 가르치고 떠난
정몽호 시인님과 황장석 시인님도 아름다우셨다…
물론 지금도 나는
시 쓰는 일이 방송대본을 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고 값진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 다 내게는 소중하다.
하나는 나를 먹여 살리고
하나는 나를 맑아지게 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