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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겨울 화가 두시영 선생님과의 만남~!

  • 김형효
  • 조회 5763
  • 2009.11.11 01:44
사진1)출판 기념회에 두시영 선생님은 나의 시를 읽은 소감을 그림으로 대신했다.
고마운 선물, 잊을 수 없는 선물로 지금도 난 이 파일을 품고 다닌다.
사진2)지난 2006년인지 2007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예술의 전당에서의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에도 네팔로 출국하기 전에 전시회를 찾아 인사를 건넸던 듯하다. 

나는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을 본 후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아마도 일주일 내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정확하게 날짜를 정리해놓지 않았고
그럴 경황도 없이 쓸쓸하고 을씨년스런 초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하루 3시간 정도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이 전부였다.
정말 문학에 투신하고 투신한 삶이었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전에는 당시 후배가 영업소장으로 있던
교보생명의 영업 사원으로 일을 시작해서 근 1년여
초임자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좋은 실적을 쌓아나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보험대상에 나올 정도의 그런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한 것도 같으나 정확히 기억이 없다.

하지만 페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도 그때다.
상념에 잠기며 소설 속에 또 문학사에 나오는 전설(?)적인 작가들의 면면이 떠올랐다.
그 대가들의 이력에는 한결같이 폐결핵이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가의 전설(?)같은 느낌으로......,
하기는 그런 서정상태에서는 상념이 깊고 깊어져서 자책스러운 술잔도 그리웠다.
그래서 그 상념이 젖어들면서 아마 상념에 잡아 먹히면 죽고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는 것 같다.

2007년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는 표지 그림을 사용했다.
첫 번째 시집은 판화가 남궁 산 선생의 판화를 두 번째는 두시영 선생님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시집(사막에서 사랑을)은 출판사에서 자체 디자인을 했다.

마치 그때 우연한 출판 제안이 들어왔다.
사실 문학적 열정을 쏟았던 시기에 첫시집이 나오고 일년이 막 지난 상태에서 신명이 났다.
하지만 한국문단의 씨스템 안에서는 이렇다할 자랑스런 등단이 못되는 추천 등단이다.

물론 추천해주신 선생님의 명망으로 그 누구보다 당당한 작가의 길을 가리란 다짐과 호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호기로 출판사의 제안에 응하면서도 철저히 요구조건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엉뚱한 호기가 발동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출판 조건으로 책을 250권 인쇄 후 지급해 줄 것,
엽서를 인쇄해 줄 것,
그리고 인쇄는 15%를 지급해 줄 것 등이다.

어쩌면 그때의 그 호기가 지금도 남아서 자존심 강한 시인으로 살고 있는 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콧대 센 작가의 출판에 응하는 태도로
어찌된 형국으로 출판이 성사가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후 오래 동안 그 책이 출판 코너에 꽂혀 있었던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해당 출판사 사장에게도 진정 고마운 인사를 해야할 조건이었다.
그렇게 출판이 결정되고 원고를 넘겼다.

출판사에서는 편집 작업을 시작했고 나는 그 다음 날
아는 동생이 원무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강북하나의원이라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때의 기분은 꼭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서 쓸쓸함이 더했고 입원한 다음 날 평소 자주 갔던 인사동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원치료를 받고 약을 좀 받은 후 낙향을 할 생각이었다.
그 낙향이란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이른바 폐결핵 환자의 요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는 쓸쓸하게 눈이 내리는 어느날 대개의 주인공들은 세상과 작별을 했다.

나도 속으로 그런 그림을 그리며
다시는 인사동에 못 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인사동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고
쓸쓸한 발걸음에 쓸쓸한 상념의 한 덩어리인 채로 길을 걸었다.
아마도 긴 바바리 코트도 입었던 기억이 난다.
여지없는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인 겨울 나그네였다.
 
안쓰런 눈빛으로 인사동의 기억을 되살리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갤러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끔씩 인사동을 찾아 갤러리를 드나들던 버릇 그대로였다.
 
그때 지금 기억으로는 <선>갤러리인 듯하다.
화가 두시영 선생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흙내음에 반했다.
그런데 그 흙의 온화함 속에 철학적 사유와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는
조화로울 것 같지 않은 간극을 좁혀 하나로 해석해내는 작가의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황토흙에 유화를 섞어 만든 채색이 마치 구들방에 들어앉은 느낌으로 평온했다.
마치 순간 병이 다 낫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 실험적인 작품으로
전두환의 5.18을 풍자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비추어주는 설치작품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간극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신기에 가까운 조화였다.
 
그후로 선생님의 전시회가 열리면 고정출연을 시작했으며,
덕분에 그림공부도 조금은 하고 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갤러리를 나오려다가 두시영 선생과 마주쳤다.
그 중 떡시루 그림을 보았고 내게 각인되었다.
오방색이거나 무지개색으로 내리는 눈발도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는 정말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안녕이라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 저녁 병원으로 눈을 맞으면서 돌아온 나는 병실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세 한탄이 뒤섞인 한숨을 늘어지게 쉬면서
두시영 선생님의 그림 이미지를 떠올리며 시詩를 짓기 시작했다.
<꽃새벽에 눈내리고>꽃은 아름답고 새벽은 희망이고 다시 눈도 길조吉兆다.
어쩌면 스스로 나의 질병을 낫게 하려는 주문처럼 그런 시詩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외출 허가를 받았다.
 
고민없는 걸음으로 작심하듯 두시영 선생님을 찾았다.
곧 어제의 갤러리로 들어갔다.
마치 두시영 선생님은 자리에 계셨다.
그날이 이틀째 되는 날이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사정과 사연을
난생 처음 본 화가 두시영 선생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했다.
그리고서 인사에도 안맞고 도리에도 없는 맹랑한 청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여간 당돌하고 대책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 떡시루 그림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 병상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시를 지었다.
그리고는 시집이 곧 출간될 예정인데 어젯밤 쓴 시를 표제시로 쓰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그 그림을 표지 그림 이미지로 사용할 수 없겠는가?
 
사실 결론은 다 홀로 내린 후 청을 하는 무례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초면이나 다를 바 없는 화가에게......,
글을 쓰는 작가로서 예의도 없고 도리에도 안맞는 짓을 한 것이다.
그런 화가 두시영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지금도 내 삶에 한 자리 그리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시다.
 
천상의 인연처럼 소중하고 그래서 때로 변화가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사실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해석이 달리지고
모든 것들이 농익어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누구라고 변화를 탓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 긴요하고 순정한 인연의 사람이라면
그 어떤 변화조차 사랑의 눈으로 보고
그렇게 느끼고 인정할 수 있는 내 눈을 밝혀야 할 일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리운 선생님에게 그 동안의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고
또 앞으로 소중한 인연의 동산을 잘 가꾸어 가도록 노력하겠다는 고백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후 저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고
머뭇거리던 세상에 대한 도전적인 삶도 활기있게 살아내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작가는 아니라도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는 살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갖을 만큼은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는 자평을 해봅니다.
 
아래는 그때의 詩

꽃새벽에 눈 내리고
 
어머니는 죽어버린 오감으로 차오르는 육감, 알을 잉태하고 껍질로 남은 어머니가 씨앗을 생각할 때에도, 썩어 씨앗이 되고 알이 되고 정화수 깊이 빠져든 초생달이 꽃새벽 문열고 이슬되어 올 때에도, 초겨울 새벽열고 오는 이슬 눈이 되어 내리네.

아직, 아직이라 하는 사이 안으로부터 잉태되었던 꽃새벽에 눈 내리네. 그 안 깊이 빠지고 깊이 솟고 순백으로 드러눕는 그림자 생각할 때에도 눈은 내리네.

그렇게 깊이 높이 차오르는 정화수 안의 그믐달처럼......, 꽃새벽에 눈 내리네. 돌부리에 걷어 채이고 돋아 오르던 살기 안에서도 깊이깊이 차오르며 살아나는 꽃새벽에 눈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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