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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24호선 도보순례! 구일째날...,

  • 김형효
  • 조회 4134
  • 2006.12.02 23:22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밤사이 따뜻한 물찜질을 하고 나름대로 몸상태를 좋게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제 늦은 출발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길을 보고 그 길을 갈 뿐, 길 위에 멈추지 않는 나그네가 되면 되는 것이다.
봉산면 소재지에 있는 파라다이스라는 모텔을 나섰다. 밤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주변이 호수였다.

아침 길을 걷는다.
곧 협곡같은 고갯길이다.
아침 싸늘한 날씨지만 산 길을 걷는 나그네 몸을 움추리게 하지 못한다.
길을 걸으며 곧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는 동안,
걸음에 탄력을 받으며 발바닥에 고통도 잊는다.

합천 22KM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지나 더 빨리 길을 재촉할 것인가?
가다가 쉬다가 오늘 행선지를 정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때 압곡마을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마을지명유래를 상세히 적어놓은 표지석이 마음에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고갯마루에 올랐다.
작은 상점이 있었고 고개 아래 커다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걸었다.
추운 날씨인데 아이스크림이 구미를 당기는 이유는 무얼까?
여름에도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는데 말이다.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식당이 어디있는지 물었다.
상점 아주머니는 다음 고개를 넘어서며 식당이 있다고 했다.

내리막길을 조금 걸었는데 정말로 큰 마을이다.
모양새를 갖춘 상점들이 네 개 정도 눈에 띄었다.
거기다가 약포라는 이름을 가진 약방도 있었다.
산과 마을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하게 빈집 지붕위에 그리고 길가에 낙엽이 쌓인다.
그 길을 걷는 마을의 아낙의 걸음은 고즈넉하다.
이 마을에서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농촌이 있는가 싶어
조금 발길에 힘이 돋는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 농촌마을에 약방이 있는 마을이 몇이나 될 것인가?

발걸음이 느릿느릿...,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살펴보느라 그런 것이다.
즐거운 발걸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길을 간다.
모처럼 햇볕이 강하다.
출발지에서 2시간 정도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길가에 식당이 있었다.
"합천토종흑돼지"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이다.
나는 여지껏 경험한 일 때문에 조심스럽게 식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문을 했다.
지금까지 분위기와 다르게 주문을 받아주었다.

푸짐한 메뉴를 내놓았다.
혼자라는 이유로 돼지고기 구경을 못하던 내게 푸짐한 흑돼지전골이다.
주인은 두 사람 분량은 족히 넘을만큼 푸짐하게
더구나 육수를 더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나는 길을 나서려고 게산을 하고 난 후,
조심스럽게 나의 시집을 꺼내들고 주인에게 전했다.
여행 길에 식당에서 겪은 일들도 이야기하면서 고마운 인사를 전했다.


게속되는 내리막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팔심"마을이 나타났다.
압곡마을처럼 표지석이 있었다.
다시 발길을 멈추고 마을지명유래를 살폈다.
명나라 장수가 지은 이름이란다.
묘산면을 지나는 길에도 국도24호선 길은 새로 건설되고 있었다.
신국도24호선...,
묘산면 외곽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다.
길가에 독립지사비와 효자비들이 늘어서 있다.
한참 고갯길을 올라 마령재에 올랐다.

이정표 때문에 나는 발길을 멈추었다.
합천읍과 합천이라는 이정표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알아보고 가기 위해 114안내 전화를 이용했다.
합천군청 문화관광과를 연결해서 통화를 한 후,
두 길 모두 거리상도 별 차이가 없는 합천읍 길이란 확인을 하고 길을 갔다.

멀리 보이는 산과 산들이 겹쳐져 있는 모습이 금수강산을 실감나게 했다.
홀로 흥에 겨워 "쑥대머리"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아리랑을 소리내어 부르며 길을 갔다.
갓길이 좁아 조심조심 흥을 내야했다.
참 우습고 재밌는 모습이다.
혼로 부르는 아리랑도 그렇고
"쑥대머리"도 그렇고 조심하며 걷는 폼세도 그렇다.

낙엽이 우스스 떨어진다.
춤을 추듯 살랑살랑, 팔랑팔랑, 잠자리 날 듯, 나비가 날 듯
그러다 벼락같은 센 바람이 불면 화들짝 놀란 듯 회오리치는 낙엽을 본다.
어쩌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모습도 때로 저런 모습일테지.
어쩌면 항상 저런 모습이지만, 우리의 자의식으로 이해 못하고 있을지도...,

산 고갯길에 소나무들 참 멋지다.
산이 높아 골도 계곡도 깊어서 다랑이 논도 참 많다.
농사일에 버거움을 말해주는 다랑인 논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미감(美感)이 넘치는 모습인 것을,
누군가는 보는 즐거움을,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활의 근거를 삼고 버겁다.
마을 입구 버스 승강장에 시골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억지 낭만이라도 좋구나.
나는 허수아비 그림을 사진 찍었다.

빈집이라고 해야할지, 폐가라고 해야할지,
출발때부터 오는 길마다 같은 모습의 집들이 있었다.
나는 한사코 빈집이란 표현을 쓰고자 한다.
농촌이 사라지는 모습을 인정하기 싫은 탓이다.
집 떠난 사람들이 그 집의 주인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나느 한편으로 그 빈집들을 단장해서 별장처럼 쓰면 안될까?
도시로 나간 농촌의 자식들아!
답답한 도시탈출은 어려워도 재충전의 기회를 갖을만한 좋은 터가 아닐까?

사동(巳洞)마을에서 마을 분이 말을 걸어온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합천가는 길이라 했더니 무엇 때문에 걷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농담조로 싸우지말고 살자고 걷는다 했더니, 웃는다.
잠시 후 다른 분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때 그의 부인이 아는 체를 했다.
서울에서 오던 길에 차에서 날 보았다고 했다.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왔느냐고..., 나는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
고향에 볼 일이 있어 서울에서 왔다는 사동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걸었는데, 지나던 자동차가 섰다.
아까 이야기 나누었던 분인데 합천까지 차를 타고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냥 걷겠다고 말했다.
합천 전방 6KM다.

날도 밝고 거리도 멀지 않다.
이번에는 오토바이 탄 아주머니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말을 걸어온다.
즐겁다.
관심이란 신명을 부른다.
더구나 낯선 길 위에서 사람냄새가 그윽한 곳이란 느낌이다.
가다가 힘들면 발이든 어디든 몸이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라고 당부하신다.
이번에는 몇살이야고 묻는다.
나이를 말했더니, 올해 그 나이면 이렇게 걷는 일은 좋은 일이라며
운세를 짚어보신 듯 말하며 덕담을 건네신다.
고마운 마음들..., 그래 이런 마음들이 우리를 살리고 있으리라.
누가 어디서 싸운 적이 있다 하더라도, 원망의 마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살리는 것은 우리들 마음 밑바닥을 받치고 있는 그런 순정한 마음들
그런 순정이 있는 거다.
힘이 나고 즐겁다.

바람이 날 흔들고 싶은가?
세찬 바람이 작은 풀들을 내게로 고개 수그리게 한다.
손 흔들 듯, 고개를 끄덕이듯...,
금양천을 흐르는 길을 굽어 돌았더니 합천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합천읍내에서도 한미FTA 반대의 깃발은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찬 날 시리게 시리게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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