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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삶의 노래

  • 김형효
  • 조회 3506
  • 2005.09.20 08:32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입가에 잔주름이 파도처럼 퍼진다.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이마에서부터 발바닥까지 간지럼을 태우듯 스멀스멀 웃음이 난다.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 중에는 정치인도 있다.

이미 정치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솔직히 정치적인 삶이란 고욕스런 삶이다.


나는 최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치적인 사람을 만났다.

그가 살아온 삶은 항상 정치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내 눈에는 순정적인 사람, 순결한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요즘 이런 기획을 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그대로 감옥소로 만드는 비법을 말이다.

내가 볼 때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든 근속자들이 죄수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요즘 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살아온 사람을 만나는가?

그를 만나면 사람의 향기가 아름답게 퍼져온다.

누군가 내게 말하리라.

도대체 시인이란 작자가 고작 정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찬양 고무나 하는가?


나는 어젯밤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려왔다.

찬바람이 차창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을씨년스런 조국의 산하에 잔설이라도 내렸으면

그래서 사람들이 이 깊은 겨울을 찬찬히 좀더 분명하게 느꼈으면

그리고 나라의 미래와 겨레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운전대를 잡고 좌측으로 우측으로 번갈이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깊은 산골에 달빛은 슬픈 영상을 하고

불어터진 달무리가 우울하게 내 눈가를 비췄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우리의 현대사에서

슬픈 정치적인 삶을 살아온

하지만 아득하고 무난하게 살아온 정치인을 떠올렸다.


물론 내 곁에서 세상살이의 전형에 대해

나의 어리버리한 마음을 다독여주시는 금산의 시인,

길일기 형님께서 어줍은 마음을 다잡아 주고 계신 것은

깊은 절망의 오늘을 사는 내게는 한줄기 빛살같은 중얼거림이다.

아! 중얼거림, 그 아름다운 중얼거림 속에 나는 살아나고 있다.

그러면서 님을 생각한다.


나는 서울 그의 사무실에서 지친 몸을 부려두고 한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는 내 귓가에 누군가와 통화중인 님을 보았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통화중인 님의 모습이 내 온몸을 사려주었다.

그것은 경청하는 자의 아름다움,

네! 예! 네!로 반복되는 통화중인 사람의 모습 속에 그 사람의 삶이 울려왔다.


듣는 자의 모습 속에서 평화를 보았다.

나는 듣는 자였던가?

나는 나의 귀보다 작은 님의 귀를 보면서

그의 귀보다 더 큰 귀를 가진 나지만,

나는 과연 듣는 자였던가?

찰나적인 반성과 함께 그 듣는 귀의 엄숙하고 엄정한 정치를 보았다.


그렇다.

듣는 자의 귀가 존중하며 사는 자의 자세다.

그렇다.

저런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그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겠구나.

물론, 나를 기준으로 한 반성이라 객관성 결여의 함정은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내게는 중요한 정치인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이 저렇듯

열린 귀로 듣는 자의 귀로 정치를 한다면

아마도 나는 국회의사당을 그대로 감옥소로 만드는 기획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차라리 나는 대한민국 국회에 어릴적 도시락으로 준비하던

고구마라도 삶아서 보자기 가득 싸들고가서 한 자리 마련하리라.


내가 만약 님과 같은 정치인을 많이 만난다면

철조망으로 국회를 감싸는 기획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아니 다수가 그런 국회의원의 모습이라면

철조망으로 국회를 감싸는 기획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정치적인 사람의 아름다움,

정치적이라도 자신, 오로지 한 몸인 자신만을 생각하고

한 몸인 자신의 주변을 위한 치부의 손길로 치장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찬양 고무의 변을 늘어 놓으면서도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동의가 일반화 된다면

세상은 평화롭게 그런 시인의 망령을 용인할 것이다.

오늘 정치인 님이 철저히 정치적으로 살아왔음을 보면서

내가 찬양 고무의 변을 하는 것도

그가 아름다운 향기를 간직하고 살아왔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타의 삶의 기준이란 때로 애매모호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공인된 자의 삶의 이력은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기준을 제공해준다.

그렇기에 오늘 찬양 고무의 뻔뻔한 모습을 산야의 시인은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사적 감정이입이 있을 수도 있는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삶의 이력,

사람이 자신의 몸을 공동적인 가치지향을 향하여 던졌다면

분명 그것은 아름다운 인간의 삶의 전형에 포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적 역설은 어떤 면에서 특정한 것을 특별히 부각시킴으로서 해석의 오류를 낳기도 하지만,

역사속에 소외와 가까운 역사적 현실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로 그 오류 발생의 여지를 현저히 줄인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감히 님의 삶의 이력을 통해서

그를 찬양 고무할 엄두를 낸 것이다.

아무튼 그의 아름다운 삶의 이정표가 줄지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모든 역사적 현재를 평화롭게 충족시키리라는 범인의 기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정치인, 그런 정치적 이력의 소유자를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고 우리 모두가 갖는 정치적 자산이자 행복의 추구라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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