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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 고래치, 문어를 통하여 시인은 통일의 희망을 대신

  • 김형효
  • 조회 3598
  • 2005.09.05 21:39
- 연변의 시인 삼총사 리임원, 김인선, 석화
 
 
 
우리 시단에서도 이리저리 뭉쳐 다니며 나름의 후일담을 남기는 시인들이 있다. 이는 비단 시인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문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일반대중이나 주로 어울리는 대상들과 자신만의 보물창고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산다.

특히 문화예술가들이 서로 보물같은 추억을 간직한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거나 동인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시절에나 참으로 흥미롭다. 이 삼총사는 그저 술타령이 문학적 주사의 전부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의 시편을 보면 결코 허투른 주사는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중국 조선족으로서 연변대학을 함께 다니며 시 쓰는 삼총사로 불렸다는 옛이야기의 주인공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의 시적 기풍 또한 비슷하다. 특히 김인선 시인의 경우는 연변의 김삿갓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스승의 집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이 하면서 술잔을 비웠다고 하는데, 그 삼총사는 연길시 출신의 리임원(현 연변일보 편집국장) 시인과 김인선(현 연변일보 문화부장) 시인이다. 또 한 사람은 오마이뉴스에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 길림성 연변자치주 룡정(구 화룡현 룡정) 출신의 석화 시인이다.

사실 연길과 룡정시는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그러니 같은 대학을 다니며 문학적 끼를 주체하지 못한 그들이 젊은 시절을 음풍농월(?)하며 지새웠다는 것이 꼭 희한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억하는 그때는 그들 스스로 술병을 깔고 자고 술병을 베개 삼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어쩌면 그들이 나눈 문학적 주사가 오늘날 그들의 문학 기반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풀잎


작은 풀잎은
바람이 스쳐도 흔들리고
비가 내려도
허리 굽히고

어느 석양속을 걷는
나그네의 길처럼
고달프고 외롭다

그러나
이슬이 고요히 내려지는 새벽이면
풀잎은 보이지도 않는 가슴을
활짝 펼치고

있지도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1991년 작


꽃의 언어


꽃의 언어는
무지개보다 더욱 빛나는 것

선화야, 경아
우리가 불러줄 때
꽃은 아침에 피는 신선한 몸짓으로
그리고 밝은 모습으로 대답해주고
백일홍 방울꽃 아이꽃...
하고
이름지어주면
비에 젖지 않은이만이 듣게
구겨지지 않은 마음만이 받게
대답한다

꽃의 언어는
수정보다 더욱 순수한 것
형님, 교수님, 국장님...
하는 직함이 하나도 없이
프랑스어, 라틴어, 영어, 일본어...
계선이 없이
꽃의 언어는 숨쉬고 있다

꽃의 언어는
꽃만이 서로 통하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슬픔을 위로할 줄 알고
꽃의 언어는

한두돌이 되는 아이들만이 듣는 소리나는
말이다


1987년 작


동해바다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에 가면
유난히 크고 밝은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해가 있고
비취색 바다는 깨끗하다 못해
바다속에 있는 광어, 고래치, 문어...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라진시 웅상군 앞바다에 가면
유난히 크고 밝은 아침해가 뜨는 동해가 있고
비취색 바다는 하늘보다 맑고 청청해
수십길 바다도 거울같이 들여다보이는데
지난해 속초 앞바다에 있던
광어, 고래치, 문어...가 이곳에 와서 즐기면서
하나의 바다
하나의 식솔
하나의 보금자리라고들 한다

-조선 라진에서


바람에 길을 물어...

가자
흔들리며 가자
바람에 길을 물어

바다에서 오열하며 시작된 우리기에
작은 꿈들을 쪼각으로 모아놓고는
다시 바다로 가는 삶인 것을

가자 흔들리며 가자
농부의 가락같이 타령을 하며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연습하는 동안에도
우리 인생은 자진하고마느니

가자
흔들리며 가자
자연같이 노을빛 아름답게

새들이 석양빛에 날개죽지 가두는
섭리속에
우리는 있다
바람에 길을 묻자

1991년 작


리임원 약력
1958년 연길 출생
연변대학 사범학원 조문 졸업
<해란강 문학상>, <두만강 여울소리 시인상> 등 10여 차례 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현재 연변일보사 편집국장

리임원 시인의 시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며 살아온 40대의 시인과 동료들이 이제 연변자치주 조선족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가교역할을 하는 중견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상사와, 겨레와 민족에 대한 관조는 앞으로를 바라보는 창(窓) 역할을 할 것이다. 풀잎에 대한 관조적 애상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이제 불혹의 인생을 살아온 시인 자신이다. 그가 지천명의 세월을 기약하면서 "어느 석양속을 걷는/나그네의 길처럼/고달프고 외롭다"며 삶의 일단을 자조 섞인 감정으로 내비치고 있다.

<꽃의 언어>나 <바람의 길을 물어>도 삶의 지친 어깨를 어디엔가 뉘이고 싶은 시인의 애달픈 심정이 드러나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시인의 지친 어깨를 일으켜 세우며 또렷한 정체성을 간직한 시인은 결국 겨레가 하나로 살아가야 할 보금자리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그것도 남과 북을 오가며 호흡하고 있는 광어, 고래치, 문어를 통하여 시인의 희망을 대신한다. 그렇게 시인의 꿈은 시 <동해바다>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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