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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에는 애절한 조국이 있고 간절한 민족의 영혼이

  • 김형효
  • 조회 3136
  • 2005.09.05 21:41
- 자기 고뇌의 무덤을 파는 시인 석화!

 
 
석화 시인에 대해서는 이미 두 세 차례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바 있다. 사실 그런 이유로 본 순서에서 제외할까 하였으나, 연변의 시 쓰는 삼총사 중 현재까지 문학외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중히 여겨 <시 쓰는 삼총사> 마지막 순서로 석화 시인을 소개하기로 하였다. 석화 시인은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룡정(구 화룡현 룡정) 출신이다.

사실 14박 15일 동안 둘러본 여정을 따라 각 지역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작품을 간략하게 감상하는 취지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석화 시인의 경우 그 순서를 벗어나 미리 소개하는 것은 화룡이나 룡정 출신의 다른 시인들을 각별히 보아야 할 부분이 있어서다.

사회주의권에서 유일하게 꺼지지 않는 등불같이 존재하고 있는 중국, 그곳에서 소수민족 조선족문학을 공부하였으면서 다시 동포로서 한민족의 문학을 고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석화 시인은 충주 석씨이다.

그가 보여주는 시에는 애절한 조국이 있고 간절한 민족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개인사적 고뇌와 삶의 힘겨움을 겪어낸 생활인의 고뇌에 이어 한민족으로서 뿌리치질 못할 민족정신까지 그의 시적 고뇌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시인의 시편을 감상하고 짧은 감상기를 곁들여 보기로 하자.


나의 장례식


나는 나를 위해 구슬픈 장송곡
목메게 부르며
나는 나의 무덤을 판다
나는 나의 안식처 나의 무덤에
드러눕는다

시커먼 구뎅이는 구슬픈 기도 읊조리고
서리찬 기운은 쓰다듬어 안아준다

그러면 내가 무져놓은 흙더미
내 몸을 묻어주고
그러면 무덤은 평평한 언덕이 된다
그러면 파묻히운 내 몸에선
심장만이 살아
아, 그러면 심장만이 살아서 싹터오른다

심장은 한그루의 나무되여
하늘 찌르며 자란다
그 나무에선 주렁주렁 새 심장들이
가득 열린다




가랑잎 하나


거칠은 물결우에
가랑잎 하나
돛도 없고 노도 없는
운명의 쪽배

물결타고 오를 때는
하늘에 닿고
파도에 삼키울 땐
천길만길 파묻히네

흐름에 맡긴 몸은
가는 길 어데
굽인돌이 소용돌이
또 몇이 있을는지

기쁨도 슬픔도
어느 물에 다 묻었나
외로운 물길우에
꿈 싣기도 지쳤구나

흘러흘러 흐르는 물은
천리일가 만리일가
가다가 멈춘곳을
네 무덤이라 이르리라




피안 - 도문을 가며 3


기실 모두가 저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옆은 안개가 가물가물 피여오르는 한줄기
강물, 먼 서쪽나라의 어느 하늘밑을 흘러
가는 요단강처럼 우리는 누구나가 다 한
줄기 강물을 갖고있다

피안 혹은 대안이라 부르는 저쪽켠의 강기
슭 아슴푸레 바라다보이는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 보고싶지만 피와 살과 뼈가 너
무 무겁다

기실 모두가 다 다시 저쪽으로 건너 갈것
이지만 지금은 그냥 그저 건너가 보고싶은
생각뿐이다

지금 저쪽 기슭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계
실 어느분도 이와 같은 시를 쓰고 있을가





우리 말 우리라는 말


맑은 물결이
조약돌사이로 굴러가는 소리와
부리 고운 산새
서로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와
얄포름한 꽃잎이
파르르 입술을 여는 소리와
아름답고 신비한 모든 소리들이 모여
하나로 울려퍼지는
우리 말

어머니의 품속에서
숨결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눈빛을 거쳐
온 세상 만물을 이름지으며



천만년을 이어온
그 빛발과 같이
또다시 천년만년을 이어갈
우리말

현애절벽이면
막아선다더냐
만경창파라면
막아낸다더냐
몇가닥 철사줄이야
또 어찌 막는다 하더냐

하나의 피줄속에
굽이쳐오면서
두만강 대동강 한강을 다 합하여
백두의 폭포수로 쾅쾅 쏟아질줄도 아는
우리 말

고개 높이 들어
저 먼 곳을 바라보며
한가슴에 응어리진
내 넋과 내 혼을 다하여
"하아 느으을---" 불러보면
끝없는 하늘처럼 아득히
푸르게 푸르게 펼쳐져가는
우리 말

우리말
우리라는 말 한마디에
그대와 나
눈빛이 먼저 밝아지고
가슴이 벌써 뜨거워지는
우리는
우리라는 말속의 우리---

아 고마워라
우리 말---
우리라는 말을 주신
하늘이여
하늘이여


"천지문학상"수상작품 (1994년)


시인은 첫 번째 시 <나의 장례식>에서는 진한 자기 고뇌의 무덤을 판다. 그 무덤파기가 삶에 깊이 있게 투영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삶에 엄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하게 자신과 싸운다. 여기 싸움에 직면한 시인은 자신을 무덤 안에 파묻어야 할 부분과 생명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할 부분으로 자신을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시 <가랑잎 하나>에서는 거친 삶의 파도를 헤치고 장엄하게 개선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보편적 인간의 기대를 그려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지친 어깨를 늘어뜨린 형국을 하고 있다. 그것이 무덤으로 귀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평온을 찾아내게 된다. 사실 그것은 평화를 찾은 것이 아니다. 찬찬히 삶을 운명적인 것으로 떠맡기며 순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그대로 멈춰설 시인이겠는가? 그것은 여전히 배우며 길을 가는 시인의 삶을 통해서 삶의 한 편린을 보여준 것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처진 어깨를 우리는 서로 감싸고 싶다. 여전히 우리가 삶을 살아야 할 의미의 한자락이 남아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힘겨운 자기 고백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리라.

세 번째 시 <피안 - 도문을 가며 3>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고향을 등지고 만주벌로 향했지만 이제는 돌아서 되돌아오지 못하면서 그리워하는 망향의 심정을 애설피 울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깊은 사색은 고향, 고국의 어느 품속에서 함께 깊어가는 사색의 시인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산산히 흩어진 민족의 정한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물이 마른 계절 같으면 성인의 무릎 정도까지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그 옅은 두만강, 도보로 5분이면 건널 수 있는 두만강을 마음대로 건너지 못하는 통한의 눈물샘이 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나 여전히 우리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있으며 그 남아있는 우리의 끈이 되는 우리의 말과 정신에 격정적인 즐거움을 표하고 있다. 그 즐겁고 환희에 찬 눈물에는 깊고 애잔한 서글픔도 두만강처럼 내내 흐르르 것이지만,



석화(石華)
1958년 7월 길림성 룡정현 출생
1982년 연변대학 졸업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근무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이사역임
"천지문학상", "지용문학상"외 10여 차례 문학상 수상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국문학과 석사과정 수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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