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통신 10
태어나서 처음인 일을 연달아서 경험하게 되어 있는 날들이다. 아직도 아니 어쩌면 2년 동안 계속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런 경험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막연한 설레임이 두려움이거나 피할 일이라면 난 일찌감치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으리라. 사람을 신(神)이라 믿고 사는 나로서는 신을 피할 일은 없는 것이다. 그 신들이 때로 인간이 생각하는 신의 뜻을 위배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사에 수많은 인간이 믿고 있는 신들은 그보다 더 가혹하게 인간을 능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때로 그런 바보같은 생각도 한다. 아무튼 난 인간 앞에 겸허함을 배우고 그 신들 앞에 나의 초라함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법을 다하고 살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에 온 것이 지난 3월 4일이다. 그러니까 이제 한 달 보름이 지났다. 한 달 보름 동안 내가 만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틀 안에 갇힌 구조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대사관 사람들 그리고 행정적인 업무와 관련된 사람이거나 학원 선생들이다. 새장 속에 새처럼 지내온 것이 지난 보름의 일과였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우크라이나에 온 것을 실감하며 내가 받은 미션을 수행해야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러기 위한 사전 점검의 시간으로 OJT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리라.
지난 금요일 오후 7시3분 나는 키예프에서 니꼴라예프(우크라이나어:МИКОЛАⅰВ)행 기차에 올랐다. 원래 17일 출발예정이었으나 표를 구할 수 없어 하루 전에 출발하는 것이다. 다른 단원들보다 먼저 현지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4시간 23분을 타야하는 기차 여행에 대한 어려움이 긴장감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감금당한 사람(?)처럼 행복하게 공부하다가 얻은 자유로움인 듯도 한데 전혀 그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다. 정말 처음인 것처럼 기차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여정이다. 앞으로 2년은 약속된 날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가봐야 아는 것이다.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낯선 곳에서 2개월 배운 러시아어를 토대로 그들과 소통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던져진 주사위의 행방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내가 그 주사위의 주체로 살기로 하였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하나와 이민용 가방의 무게는 7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러나 그 짐을 놓을 곳이 없는 것이 쿠페라는 기차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내 침대를 그 짐을 싣기 위해 양보해야 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하나와 이민용 가방의 무게는 7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러나 그 짐을 놓을 곳이 없는 것이 쿠페라는 기차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내 침대를 그 짐을 싣기 위해 양보해야 했다.
짐을 잃을 가능성이 많으니 긴장하라는 주의를 하도 많이 들어서 불안이 이만저만 아니다. 4인용 침대칸의 기차 안에는 네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어린 아이다. 말이 서툰 여행자와 네 명의 우크라이나인 이런 구도는 꿈속에서도 연상해 본 적이 없는 처지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경계의 날이 무뎌진지 오래인 나는 그저 반갑다. 나는 먼저 그분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즈뜨라스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 그리고 어린 아이와는 곳 친구처럼 어울렸다. 얼마나 좋은가? 어린 아이와 함께 한 쿠페에 탈 수 있었다는 것은, 맑은 샘물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부부로 보이는 흰 머리의 아저씨는 곧 보드카를 따르더니 내게 한 잔 권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소주 한 잔 받기를 버거워하던 날들이 있었다. 술도 단련되는 것인지는 모르나 언제부턴가 마음이 열리는 순간마다 난 술잔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날선 도수의 술도 그냥저냥 버겁지만 마신다.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권하였으나 난 이제 사양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정성스럽게 인사하고 술을 잘 못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서툰 러시아 말이지만 “원하지 않습니다. 네 하추!(НЕ ХОЧУ!)”라고 하였다. 옆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가 거들어서 말한다. 술이 독하다고......, 그렇게 한 잔을 마시고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는 한결 편해졌다.
대평원을 보았다. 아득한 지평선이 그나마 몇 구름의 나무가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달래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득했다.
지친 몸은 한 잔의 보드카로 부드럽게 길들여졌다. 물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돈이 든 지갑과 중요 서류가 든 가방 등을 두루 내 발 밑에 두었다. 침대칸에 실어둔 짐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2층 침대로 올라가 새우잠을 자야하는 대형인데도 거침없이 잠을 청해도 되는 냥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시간은 12시다. 다시 깨니 2시 그리고 4시다. 길고 긴 밤이다. 서서히 머리가 아파왔다.
4인용 침대칸인 쿠페는 문을 닫으면 공기가 통할 곳이 없다. 창문은 열 수 없고 설령 문을 열어도 복도로 통할 뿐 바깥 공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함께 타고 있으니 불을 켜고 책을 볼 수도 없다. 하는 수없이 복도에 나가 의자에 앉았다. 불편한 자리지만, 그나마 시원한 느낌은 드는 곳이다. 한 쌍의 연인이 부담없이 애정행각(?)을 벌인다. 이미 익숙한 우크라이나의 풍경이다. 좋은 청춘이다. 속말을 하며 아침이 밝기를 염원한다. 하하!
기다리다 지쳐 다시 침대에 올랐다. 멍청이 뒤척이다 잠들었다 깨어보니 6시다. 다시 뒤척이다 복도로 나왔다. 멀리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이 펼쳐진다. 아득하다. 몇 컷의 사진을 찍으며 그 평원을 찬양한다. 도착 예정시간이 가까워졌는데 40분 정도 연착할 것 같다는 같은 꾸페 아저씨 말씀이다. 나는 현지의 대학 관계자인 나탈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연착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러시아어로 이야기는 했는데 확신이 없다. CAN YOU SPEAK ENGLISH? 다행이다. 쉽게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데 성공이다. 기차는 15분 정도 연착하여 도착했다. 기차에서 짐을 끌어내리듯 힘겹게 내려서는데 곧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나탈리야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니꼴라이예프 수호믈린스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 옆이 타샤, 필자 옆이 비까(빅토리아)다. 그들은 수호믈린스키 대학 학생이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나선 주인공들이다.
난생 처음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이 서 있다. 세 명의 여성인데 한 명은 나탈리아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굴까? 생전 처음인 그들은 선생이 오기도 전에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자원한 두 사람의 학생이라고 했다. 한 학생은 비까(비까는 애칭이고 원래 이름은 빅토리아다. 우크라이나나 구소련연방국가(CIS) 그리고 러시아는 모두 긴 이름 대신 애칭을 많이 부른다.), 다른 학생은 타샤라고 했다. 나는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해야하는데 그 말이 막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많이 쓰던 러시아어중 하나이다. 아주 쉬운 일상어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이 필요할 때 나오질 않았다.
짐이 커서 정신없이 쳐다보던 나탈리아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철길 건너편의 한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알고 보니 그의 남편이 함께 나왔다. 바로 그때 그 말이 떠올랐다. 오친 쁘리야뜨너!(ОЧЕНЬ ПРИЯТНО!) 얼마나 다행인가? 그의 남편을 만나기 전 그 말을 할 수 있어서, 난 곧 알렉세이에게 오친 쁘리야뜨너! 라고 유창(?)하게 인사했다. 알렉세이의 승용차에 올라 내가 머물 집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타샤네 집이다.
이곳에는 아직 한국어과가 없다. 필자가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도착한 날 오후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두 학생과 함께 타샤네 집에서 키우는 (리치)라는 개를 끌고 산책을 하였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 같은 곳이다. 그의 집으로 오는 길에 멋드러진 단독 주택을 보니 절로 편안해졌다. 오래된 아파트 7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 짐을 옮겨주고 곧 자리를 뜨면서 나탈리아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를 걸어도 된다며 먼저 핸드폰 번호는 알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집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나중에 만나자는 인사를 마치고 곧 숙소에 짐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했음을 키예프 본부에 전화로 알렸다. 곧이어 다른 단원들에게서 도착 소식을 묻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또 내가 전화를 걸어 도착 사실을 알렸다.
사진 왼쪽이 비까 그리고 오른쪽이 타샤다.
이제 시작되었다. 도착이 시작이다. 이제 무엇을 할까? 우크라이나의 지평선처럼 아득하다.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신념 안에 답이 있으리라! 하나의 주사위가 던져진 채 구르면서 무슨 사색을 그리도 많이 하겠는가? 첫 사랑처럼 반가운 사람처럼 대하며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잊지 말고 그들과 만나자. 그것이 사람의 만남이다. 그리고 희망이라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