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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 김형효
  • 조회 8062
  • 2011.01.17 08:01

[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최종회] 루마니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항상 여행지에 가서 미흡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항상 준비한다고 준비하며 살지만 매번 닥치고 보면 미흡한 것이 삶인 듯하다. 지나온 날을 봐도 그렇고 현재를 봐도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미흡함 투성이다. 처음 여행을 준비하고 폴란드와 인접한  국경 인근의 우크라이나 르보프에서 버스표를 구입하고 출발했다.

 

가장 큰 염려는 서툰 언어에 대한 걱정이었다. 숙박할 곳, 이동할 교통편 등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예약을 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오전 중이나 밤늦지 않은 시간 도착해서 풀어나가자는 계획이었다. 어쩌면 무작정이었던 여행은 끝났다. 여행의 막바지에 루마니아에서는 지난 11일간 겪어야했던 모든 것을 겪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10일간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다시 겪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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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 오라데아 역 오라데아 역에서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저녁 기차를 타고 다음 날 아침 부카레스트 역에 도착했다.
ⓒ 김형효
icon_tag.gif루마니아 오라데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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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카레스트 역 인근의 버스정류장 콘스탄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부카레스트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걸었다.
ⓒ 김형효
icon_tag.gif부카레스트 역 인근의 버스정류장

먼저 출발지인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는 버스 편은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로 쉽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육로 교통편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이다. 필자는 당연히 수도인 부카레스트나 국경 도시에서는 버스 편이나 기차 편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라데아로 발길을 할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 국경을 향해 수체아바로 향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라데아에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수도인 부카레스트라면 인접국가인 우크라이나로 가는 버스나 기차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음날 오라데아를 둘러본 후 밤 기차로 부카레스트로 향했다. 물론 방문국가인 수도를 찾아보자는 욕심도 있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루마니아 1박 2일 뿐이다. 부카레스트에 도착했다. 우선 기차던 버스 편이던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교통편 예매가 급선무였다. 부카레스트에는 아침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기차 편을 알아보았으나 기차가 없다는 것이다. 허가된 일정을 소화하는데 규정을 따라야하는 필자로서는 다급한 일이 생긴 것이다.

 

우크라이나로 가는 버스나 기차가 어느 도시에서 출발하는지 서툰 영어와 러시아어를 무기?로 급하게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서 2년 가까이 지내온 덕분으로 운이 좋으면 러시아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과거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동유럽 국가들이라서 그런지 러시아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마침 유럽으로 가는 버스 편이 있다면서 호객행위를 하던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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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카레스트 시내의 오래된 건물 부카레스트 시내의 풍경은 허물어진 오래된 건물의 고풍스러움 뒤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곳곳이 공사중이었고 사회 기반이 미미한 상태인 것으로 여겨졌다.
ⓒ 김형효
icon_tag.gif부카레스트 시내의 오래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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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카레스트 시에서 강변북로 모습을 보다 부카레스트에서도 길이 막히자 먹을거리나 간단한 자동차 용품 등을 판매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 김형효
icon_tag.gif부카레스트 시에서 강변북로 모습을 보다

부카레스트 기차역 인근에 호객꾼들이 인접 국가로 떠나는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편의를 위한 체계적인 씨스템은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튼 호객꾼의 안내를 받아 다른 버스정류장을 알아냈다. 부카레스트 역에서 15분 정도 걸었다. 그곳에 종사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어 콘스탄짜라는 지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콘스탄짜행 버스표를 산 후 3시간 정도 남은 시간을 부카레스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여행용 가방을 끼고 아침 출근 시간대 수도 부카레스트를 둘러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주요 거리를 찾아 사진 몇 장을 찍은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급하게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부카레스트는 재건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아직은 정비되지 않은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너진 나라에 뒷모습인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영화가 없었던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오래된 건물과 잘 조성된 거리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부카레스트를 떠나는 것은 아쉽기만 했다. 커피숍을 찾아 커피를 마시고 몸을 좀 쉰 후 버스정류장 인근의 골목과 거리의 풍경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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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 시골풍경 한적하게 풀을 뜯는 말, 풍력 발전을 하는 시골마을 풍경이 평화로워 보인다.
ⓒ 김형효
icon_tag.gif루마니아 시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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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짜 가는 고속도로에 안개 안개가 자욱한 콘스탄짜로 가는 고속도로다. 깊은 상념에 잠긴 풍경이 루마니아의 슬픔처럼 느껴졌다.
ⓒ 김형효
icon_tag.gif콘스탄짜 가는 고속도로에 안개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루마니아의 흑해의 휴양도시인 콘스탄짜로 향했다. 옛 몰도바 땅이며 현재는 루마니아 땅인 콘스탄짜에 3시간 30분 후 도착했다. 고속도로는 잘 다듬어져 있었다. 가끔씩 도로변의 민가가 나타났는데 민가의 모습이 우리네 시골풍경과 많이 닮아 있었다. 맞배지붕 양식의 집에 기와가 얹어진 집들은 아마도 오스만 터키제국의 침략사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콘스탄짜로 가는 길에는 터키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슬림 사원도 많이 눈에 띠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파묻힌 해양도시인 콘스탄짜는 깊은 상념에 잠긴 도시 같았다. 그것은 보여지는 느낌일 뿐 현실은 금방 그런 사색을 멈추게 했다. 도시 분위기가 사람들의 생활의 여유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첫인상이 되는 기차역과 버스정류장에 수많은 걸인들이 관광객을 불편하게 했다. 동유럽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적극적인 구걸행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강탈이라도 할 기세처럼 거칠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제어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국가가 그만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때로는 가족단위의 구걸행위도 있었고 어린 아이들이 어우러져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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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짜 버스정류장 콘스탄짜에는 유럽 각지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같은 공간인데 통합매표를 하지않고 부스마다 개별적으로 호객을 하며 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오른쪽 문이 닫힌 곳이 우크라이나 오데사 가는 표를 팔던 곳이다.
ⓒ 김형효
icon_tag.gif콘스탄짜 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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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짜 공원의 연인 안개 자욱한 콘스탄짜 공원에서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이메일을 받아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 김형효
icon_tag.gif콘스탄짜 공원의 연인

콘스탄짜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불편을 헤치고 수많은 여행지의 다양한 매표소 중에 우크라이나, 몰도바 행 버스표를 파는 곳을 찾아냈다. 천만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도시의 분위기에 불편함을 벗어나려고 곧 우크라이나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표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화번호만 적힌 채 매표소 문이 잠겨있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표를 파는 매표소에 부탁해서 전화를 걸었다. 오후 7시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며 티켓은 5시 이후에 판매한다고 했다.

 

다시 기다리는 시간이다. 때 맞춰서 매표소로 오라는 매표소 주인 말을 듣고 기다리며 콘스탄짜 거리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매표소 주인이 약속한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매표소에 나타났다. 그녀는 몰도바인이며 현재는 루마니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유창한 러시아어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표를 끊고 짐을 맡기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시내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가까워진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 표를 끊을 때만해도 몰도바를 경유한다는 말이 없었던 매표소 주인 율랴가 버스기사에게 알아보니 몰도바 비자가 없으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환불이 이루어졌다.

 

곧 다른 도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루마니아를 찾으면서 처음 계획했던 수체아바란 도시에 버스가 있다는 것이다. 급하게 수체아바로 가는 기차 편을 알아보았다. 다행스럽게 기차가 있었고 아침에 도착한다고 했다. 수체아바에는 오전 6시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정류장을 찾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많은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 다행이 중년의 버스정류장 종사원이 다른 시민에게 묻는 나를 발견하고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다. 루마니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찾는 관광객이 많지 않다보니 정보도 부재다. 어쩌면 필자가 처음으로 수체아바를 찾아 우크라이나로 가는 버스 편을 이용한 한국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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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체아바 오래된 성당 몰도바의 옛 수도였던 수체아바의 오래된 성당이다.
ⓒ 김형효
icon_tag.gif수체아바 오래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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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도바 공국을 지킨 슈테판 대공 몰도바의 옛 수도였던 수체아바에 가장 높은 산에서 수체아바 시내를 방향을 향해 있는 슈테판 대공의 기마상~!
ⓒ 김형효
icon_tag.gif몰도바 공국을 지킨 슈테판 대공

수체아바는 과거 몰도바 공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수체아바는 1388년 몰도바의 수도로 정해졌다. 그래서 1565년 이아시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는 문화, 행정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현재의 루마니아의 모체였다는 몰도바 공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슈테판 대공이 그들을 격퇴시켰으며 그 뒤를 이은 보그단 3세와 페트루 라레슈 공 등이 다스리는 시기에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 슈테판 대공의 흔적이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산간도시처럼 정적이 흐르는 도시지만, 기품이 있는 도시라는 사실은 두 세 시간의 산책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을 떠나 낯선 것을 경험하며 새로워진다는 것은 행복한 것 같다. 이번 여행 중에서 동유럽 나라의 역사를 되새겨 보았다. 그 어떤 나라도 평화롭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그 모든 나라가 과거의 아픔에 젖어서 절망을 극복하지 못한 역사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국경이 맞닿은 동유럽 국가들이 서로를 상처내며 살아왔지만, 지금 그들은 함께 공동의 이익을 향유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민족으로 길을 내고 반목을 극복해가는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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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체아바의 재래시장 수체아바 재래시장에는 온갖 과일과 농산물들이 풍요러워 보였다. 어느 곳이나 매한가지로 활기가 넘치는 듯했다.
ⓒ 김형효
icon_tag.gif수체아바의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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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체아바 버스 정류장 수체아바에도 유럽 각지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로 가는 거의 전 노선이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우크라이나까지는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 김형효
icon_tag.gif수체아바 버스 정류장

뒷골이 시린 느낌이다. 창피함도 얹어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초라해지는 안타까움을 씻어낼 묘안은 없을까? 잠든 채 다른 민족이 나라를 이룬 다른 나라 국경을 넘으며 생각한다. 시끄럽고 소란스럽기만 한 채, 내 나라와 내 민족이 잠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 여행이다. 오늘도 한 걸음의 기억을 공유하고자 여행기를 정리했다. 여행을 통해 미흡하다는 깨달음을 안고 또 다른 걸음을 옮겨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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