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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의구해도 사람은 의구치 않아

  • 김형효
  • 조회 3868
  • 2005.09.05 21:25
- 연변의 민족 시인들(14) 김응룡 시인
   

 
상처의 자욱이 짙다. 우리 민족의 모든 시인들이 특히 그렇다는 생각이다. 상처가 없는 민족의 시라면 그 시에서 상처가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거짓과 허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시에 조국 잃은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고 팔레스타인의 시에 슬픔과 애환의 역사를 노래하지 않은 것을 본적이 별로 없다. 그것은 번역된 시편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혹은 원문을 받아 읽어내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필자가 접한 시들에서 보았던 아픔과 애환을 믿기로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난속에서 보여지는 상처의 흔적을 믿기 때문이다. 한많은 두만강을 노래하는 김응룡 시인의 아픔도 따지고보면 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별반 다름없는 이치에 가닿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연변문학에 소개된 그의 시편에서 그의 육중한 몸에 맞는 시의 느낌은 없다. 그저 약하고 순정한 시인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그런 시적 허약함에는 약한 자의 모습이 아닌 굽어서 사는 민족의 애환 속에 숨겨져 있는 고통의 깊이가 보인다. 필자가 만난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내면과 외면이 이질적일 수는 있겠으나, 그는 호방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물론 중국식으로 평해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셔보지 않고서 사람을 말하지 말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

그와는 짧은 두 시간을 보냈을 뿐이니, 그러나 육중한 그의 몸매는 야구감독 김응룡처럼은 아니라도 위압적인 건 사실이었다. 며칠 후 그를 만나 또한 회포를 풀어볼 생각이다.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눠볼 참이다. 연변의 시인들이여! 부디 건강하시라.


화로불

이글이글 열기 뿜는 화로불
한겨울 초가집의 사랑이였다
엣말과 웃음 동그랗게 피워 올리며
토감자 익는 냄새 구수했다

언 밤을 그렇게
언 마음을 그렇게
따뜻이 녹이며
초가의 겨울은 흘렀다

날샐녘 화로불은 꺼져
싸늘한 재로 되였다
부모님 인생의 등불도 꺼져
한 줌의 흙으로 되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화로불가엔
상금도 못잊을 사랑이야기
서리서리 감돌고있다


민들레


파란 잔디밭에
노란 얼굴 활짝 피운
어여쁜 아가씨
민들레 아가씨

비바람속에 하루하루
흰머리칼 늘더니
마침내는
하얀 우산 들고 승천한다

무엇이 애석해선가
하늘에 떠서도
다시다시 돌아보는
그 마음

아, 엄마-
날 두고 가지를 마오

선경대

하느님이 하사한
이 명산에
나의 태를 묻은 어머님
초라한 절당에서
내 명복 빌어 수십성상

세월은 흘러
그것은 아득한 옛일
이 불효자식은
이제야 거들먹거리며
고향의 명산금수 찾아왔소

궁룡송 구불구불
예와 다름 없고
감로천의 그 성수 맛
또한 의연하지만

웬지
나 서러워
홀로 서러워라

산천은 의구해도
사람은 의구치 않아
그리움이 구름처럼
가슴에 서리는데

가이드아가씨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날 이끌어 오르는
또 하나의 산정


두만강 물안개


두만강에 피여오르네
물안개 물안개
하얀 넋이
하늘로 오르네

흘러가는 물결
떠오르는 물안개
서러운 백의민족
못잊을 추억이라네

한많은 두만강
그 뽀얀 물안개속에
상금도 처량타네
물새의 울음소리


김응룡 시인
1956년생
현재 연변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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