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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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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273
  • 2023.02.07 00:41
외할머니와 운동회

김형효
내가 태어나 처음 할머니는
내 엄마의 엄마였다
앞에 외자가 붙은 외할머니가
내게는 처음 할머니였고 마지막 할머니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8킬로미터 버스 타고 다니는 일이 버거워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아마도 삼사십분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했다
할머니께서는 산비탈 언덕배기에서
돌무더기 감자 밭과 옥수수 밭을 일구셨고
가끔은 고추나 상추 그리고 무 몇개 거두는 산 밭을 일구셨다
나는 그 비탈과 그 척박함이 무엇을 뜻하는 줄 몰랐고
언제나 정성스럽게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담아내서
내게는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가끔은 쌀을 섞은 맛난 밥도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정부미라는 정부지원물품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입이 비틀어지셨고 나는 원래 할머니는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틀니도 못하고 사신 고욕이었는데
밥을 드실 때도 비틀어진 입으로 어려운 식사를 하셨다
그렇게 손자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하셨는데
나는 외할머니 돌아가신 날도 함께 못하고
장례식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내 기억에 가장 자랑스럽던
나의 어린 시절 중학교 운동회 날
외할머니께서는 도시락에 달걀도 삶아서 응원을 오셨다
그날은 내가 중학교 마라톤 선수로 선발된 영광스런날이었다
200여명 앉을 수 있는 학교운동장 응원석 외할머니
60여명이 함께 뛴 1,000미터 달리기
키도 크고 배경도 좋은 잘난 친구를 한바퀴 반이나 차이내고 1등을 하자 크게 웃으셨는데
그때 할머니 비틀어진 입이 똑바로 펴지셨다
그리고 상품으로 받은 여러 권에 대학노트를 보자기에 싸시면서 싱글벙글 웃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그날에 운동회가 너무 아쉬우나
응원석에 할머니와 내가 받은 선물은 지금 생각하면 나와 할머니 사이에 황금열쇠였다는 생각이다
그리운 할머니는
지금 내가 태어난 마을에 잠들어 계신다
그립고 그리운 할머니 꽁보리밥이지만
따뜻한 고봉밥 그 넉넉함을 제게 주고 가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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